정명희

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

어렵게 개학을 한 고3인 아이가 중간고사 시험을 쳤다며 땀을 뻘뻘 흘리며 들어선다. 챙겨주지 못해 고깃집에 들러 쇠고기 한 근을 받았다. 느닷없이 주인이 “이제 재난지원금은 모두 다 써 버렸나 봐요. 손님이 이젠 통 오지 않아요.”라며 말을 건넨다. 재난지원금으로 그동안 고깃집이 성황을 이루었던가.

“요즘은 시장보다는 성형외과가 한창 성황이라던데….맞아요?“ 금시 초문이라고 답하니 그가 믿거나 말거나 하는 표정이다. 코로나로 인해 늘 마스크를 하고 다녀야 하니 얼굴에 손을 대는 성형외과가 때아닌 호황이라는 것, 재난지원금으로도 성형을 할 수 있다는 소문이 있다고 들었다는 것, 딸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었더니 그의 딸도 반색해대며 호기심을 나타내더라고 했다. 그가 살짝 전한다. “딸내미가 제 얼굴이 바로 재난(?)이라서 재난 지원금으로 처리 가능할 것이라고.” 추측 끝에 답을 하더라는 것이 아닌가. 재난 지원금의 참뜻은 그것이 아닐 터인데 하면서 웃고 말았지만, 재난을 당한 국민들이 조금이라도 더 생활에 도움이 되도록 돕겠다는 지원금일진대, 평소에 얼굴이 못마땅해 재난처럼 생각했다면 그것을 해결하는 것도 어쩌면 삶의 활력이 되지 않으랴 싶었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쓸 수야 있겠지만, 세상에 재난을 당한 사람들의 긴급한 필요에 요긴하게 쓰라고 준 돈이 그렇게도 풀릴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해외에서 입국하여 지루한 자가 격리 생활을 하던 아이는 재난 지원금 대상이 아니라고 나와서 못 받으니 오히려 그것의 쓸모가 무엇인지 궁금해하였다. 자신이 쓰지 않고 기부하는 사람들도 있고 하니, 주면 주는 대로 못 받으면 못 받은 대로 이 재난을 슬기롭게 잘 이겨나가야 하지 않겠는가.

코로나-19가 쉽사리 수그러들지 않을 것 같아 걱정이다. 수도권에서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n’차 감염으로 방역에 비상이다. 9월까지 짜인 선별진료소 당직 표를 보니 가슴이 답답하다. 날마다 11시와 2시에는 중앙방역대책 본부와 질병관리 본부의 브리핑에 온통 신경이 다 가 있다. 처음 코로나 환자가 입원하여 며칠이 지나자, 물품과 일손이 부족해 간호사들의 얼굴이 말이 아니었다. 위로를 건넬 수밖에 없었다.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수학적 모델에 의하면 4월 말이면 수그러들 양상이고 늦어도 5월에는 끝이 날 듯하다고. 가능성을 전해 주었다. 그러자 반색하며 생기가 돌았던 그 얼굴들은 이젠 우울함으로 찌들어있다. 코로나19가 발생한 지도 벌써 4달이 지나가니 코로나로 우울함에 시달리는 코로나 블루 환자들이 늘어간다. 사람과 왕래도 없이 가만히 은둔에 가까운 생활이 여러 달이다 보니 자연히 우울감이 찾아 들지 않으랴.

과거엔 별로 심각하지 않았던 감염병으로도 목숨을 잃곤 하였다. 급성 감염병은 치료제를 발견하고 백신을 주사하여 치료하는 개념이 도입되었다면 현재는 만성형 질환이 많아졌다. 급성 감염성 질환은 완치의 개념이 있지만, 만성형 질환은 완치보다는 관리 개념이다. 급성 감염병이 치료되면 완치이니 그 상황이 종료된다. 그러나 만성형 질환은 완치가 어려워 계속해서 꾸준히 관리로 상태를 유지하는 수밖에는 없다. 관리를 잘하지 않으면 증상이 심해지고 잘하면 증상이 정상적으로 유지되기 때문에 질병과 삶이 평생 함께하는 동반자처럼 더불어서 살아가야 한다. 관리는 365일 24시간해야 한다. 의사가 환자 옆에서 24시간 365일 관리를 해 줄 수 없기에 치료의 주체는 의료 전문가에서 환자로 바뀌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환자 중심 의료이다.

현재 코로나19가 이어지고 특별한 치료 약이나 백신이 아직 개발되지 않았기 때문에 코로나 이전 상태로 돌아가기는 힘들지 모른다. 그러니 BC(Before Corona)상태로 돌아갈 수 있는 완치보다는 만성형 질병의 관리 AC( After Corona) 개념을 도입해서 코로나와 환자가 동반자 WC( With Corona)나 가족처럼 함께 살아갈 마음을 먹어야 할 것 같다.

몇 달 전 영국에서 공부하다 귀국한 지인의 아이가 전해준 이튼 칼리지의 교훈이 문득 떠오른다. ‘남의 약점을 이용하지 마라, 비굴한 사람이 되지 마라, 약자를 깔보지 마라, 항상 상대방을 배려하라, 잘난 체하지 마라, 공적인 일에는 용기 있게 나서라.‘

80여 일 가까운 격리 생활을 마치고 나오며 그가 늘 마음에 새기고 있었다는 세 마디가 있었다. 바로 ‘약자를 위해’, ‘시민을 위해’, ‘나라를 위해’였다. 지루한 생활에도 마음을 다잡고 끝까지 이겨낸 그에게 정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코로나19와 싸우더라도 지치지 말고 사랑하는 이를 위해 더불어 살아가기를 그리하여 쾌적한 여름을 잘 나기를.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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