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철환

객원논설위원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5일 단독으로 국회의장과 부의장을 선출하고 15일 다시 단독으로 법사위 등 6개 상임위 위원장을 선출했다. 18개 상임위를 단계적으로 독식하려는 살라미전술이다. 민주주의의 기본적 의사결정방법이 표결이고 표결은 통상 다수결원칙을 적용한다. 국민이 여당을 다수당으로 만들어준 탓이니 여당을 원망하지 말라면 야당은 비참한 처지가 되고 만다. 허나 곰곰이 따져보면 미심쩍은 구석이 많다.

국회의원 과반이 찬성한다고 해서 국민행복의 극대화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양적 다수가 질적인 우위까지 담보해주지 못할뿐더러 선출된 대표가 신뢰할 만큼 여론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선진 민주국가에서 대화와 토론을 통해 소수의 다양한 의견을 듣고 그 타협점을 찾아 합의를 도출하는 이유다. 마지막 한 사람의 의견도 존중해주는 모습에서 소수는 비로소 승복할 마음의 준비를 한다. 다수결에 의한 표결은 최후의 수단일 따름이다.

다수의 힘으로 소수의 의견을 묵살하면 외눈박이로 세상을 보게 되어 균형감각을 잃고 편견에 사로잡혀 결국 분열과 갈등으로 그 대가를 치른다. 다수의 전횡은 자만과 오만을 초래함으로써 오판과 실패의 길로 이어진다. 어느 누구도 항상 옳은 사고나 판단을 할 수 없다. 다수가 선택하는 길이라고 반드시 꿀이 흐르는 땅으로 가지 않는다는 사실은 역사가 잘 보여준다. 따라서 다수의 힘에 의존하여 소수를 핍박한다면 더 이상 사회발전을 이끌 수 없는 상황이 온다. 진보정당이 한때 다수당이 되었다고 하여 영원히 다수당으로 남을 수 없다는 점을 깨닫는다면 감히 소수를 배제하거나 탄압하지 못한다. 보수적인 사람들이 통상적으로 진보적인 사람들보다 수적으로 많다. 만약 진보정당이 소수당을 따돌리고 독단적으로 전횡한다면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이다.

의사결정에 임하여 다수결원리에만 의존하다보면 이성적 판단능력을 상실함으로써 소수자의 소중한 지혜를 알아보지 못할 수 있다. 역사를 돌아보면 극소수의 지혜가 역사의 수레바퀴를 바꾼 사례가 드물지 않다. 이러한 사실은 현재나 미래에도 변함없을 것이다. 범상하지 않은 장애를 가진 사람이나 성소수자와 같이 간과하기 쉬운 사람 중에 괄목할만한 천재가 출현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도 전혀 무관해보이진 않는다. 이쯤 되면 소수자의 의견을 존중하는 일은 손해만 보는 배려가 아니라 길게 보아 남는 장사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신이 소수자를 배려한 선물인지도 모른다.

정의의 관점에서 보아도 소수를 묵살하는 다수는 옳지 않다. 실체적 정의 못지않게 절차적 정의 또한 실현되어야 참다운 정의가 구현된다. 실체적 정의가 콘텐츠의 옳고 그름을 말한다면 절차적 정의는 과정의 공정성과 정당성을 뜻한다. 절차적으로 소수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은 다수결은 실체적 정의도 만족시킬 수 없을뿐더러 온전한 정의는 없다. 편의와 결과만 좇는 정치는 민주주의를 할 자격도 없다.

현 여당의 명칭은 더불어민주당이다. 야당과 더불어, 반대하는 국민까지 더불어 함께함으로써 모든 국민과 더불어 민주주의를 꽃피우자는 의미로 읽힌다. 소수의 의견을 존중할 때 진정한 민주주의가 꽃핀다는 교과서적인 지식 정도는 기본이다. 그렇다면 야당을 포함한 모든 국민과 더불어 국정을 운영해야 진정한 민주주의를 달성할 수 있다는 사실을 여당도 잘 알고 있다는 말이다. 진짜 문제는 잘 알면서 실천하지 않는 것이다. 몰라서 실천하지 않는 것보다 알면서 시도조차 않는 것이 더 나쁘다. 야당과 협치를 하라는 국민의 명령을 알면서 모른 척 하는 것을 국민은 잘 알고 있다. 잘 보고 있다가 선거 때 엄중하게 심판하는 유권자의 속성을 여당은 잘 곱씹어봐야 한다.

과반의석의 힘만 믿고 오직 다수결로 밀어붙이는 것이 합당하다면 국회가 존재할 필요가 없다. 과반의석을 확보하는 순간 국회의 문을 닫고 모든 결정을 다수당 마음대로 독단적으로 결정하면 된다. 타협할 필요도 없다. 표결의 결과가 뻔한 상황에서 예산을 써가며 굳이 회의를 할 필요가 있는가.

소수당 국회의원에게도 다양한 의견을 내고 대화와 토론을 통하여 국정에 적극 참여함으로써 나라를 바르게 이끌어갈 책임이 부여되어 있다. 다수당과 소수당이 국회에 모여 머리를 맞대고 국정을 함께 논해야 그게 정상이다. 여당이 진정 롱런하고자 한다면 지금이라도 야당을 국정동반자로 인정하고 머리를 맞대고 함께 국정을 끌고 가야 한다. 욕심이 과하면 탈이 나는 법이다. 나홀로독재당을 하자는 건가.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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