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말

백점례

틀니를 걷어내자 우물이 드러났다/ 뉘 하나 빠질 듯이 깊숙이 파인 채로

고인 말 퍼내고 싶어/ 움찔거리는 파장으로

거친 껍질 부수고 깬 굴곡의 팔십 평생/ 모 닳다 모지라져 뿌리까지 뽑힌 자리

끝내 다 못 전한 말을/ 우물우물 삼킨다

-『나뭇잎 물음표』(고요아침, 2018)

...................................................................................................................

백점례는 충남 부여 출신으로 2011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으로 등단했고, 시조집『버선 한 척』『나뭇잎 물음표』가 있다. 그만의 길, 그만의 시조 쓰기에 전념한 결과물이 유달리 빛나기 때문에 시조문단의 주목 대상이다. 그의 몇몇 작품은 시조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제시한다. 시조의 존재 가치를 잘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의 말’은 무겁다. 어찌할 수 없는 아픔이 곡진하게 배어 있기 때문이다. 틀니를 걷어내자 우물이 드러났다, 라는 첫 구절은 아픔의 요약이다. 틀니가 빠져나온 자리를 두고 우물이라고 규정한 것은 놀라운 의미 부여다. 하늘이 준 영감에서 비롯된 표현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겠다. 실제로 어떤 이가 신이 내린 구절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은 일이 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미칠 수 없기 때문이다. 흔히 신의 한 수라는 말을 하는데 창작자인 시인은 명작을 쓰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역량으로는 부족하다. 어느 지점에서 하늘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만큼 간절할 때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눈이 번쩍 뜨이는 섭리가 개입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곳은 뉘 하나 빠질 듯이 깊숙이 파인 채로 고인 말 퍼내고 싶어 움찔거리는 파장으로 우물이 드러났다는 사실을 명징하게 환기하고 있다. 그것은 곧 거친 껍질을 부수고 깬 굴곡의 팔십 평생이어서 모 닳다 모지라져 뿌리까지 뽑힌 자리이기도 하다. 그래서 끝내 다 못 전한 말을 우물우물 삼킨다. 여기서 다시 우물이 우물우물과 수미상관처럼 유기적 체계로 미묘하게 결합되어서 이 작품의 밀도를 한층 높이고 있다.

그는 또 ‘경칩 무렵’이라는 시에서 생명의 환희와 약동으로 충만한 세계를 보여준다. 비 그치고 밟는 흙이 밥처럼 부드럽다, 에서 흙을 밥으로 본다. 사람과 자연에 대한 애정 어린 눈길이 포착한 구절이다. 진정 자연을 사랑하고 인간을 존중하는 이만이 이러한 사유가 가능할 것이다. 시적 인간이 곧 생태적 인간인 사실이 이 대목에서 여실히 느껴진다. 그래서 속이 환히 보이는 가난한 터전으로 햇살이 벌써 밭고랑을 치고 있는 정경이 눈에 밝게 들어온다. 지난날 엉킨 덤불도 풀씨의 울이 되고 바람과 살얼음도 깍지 풀어 넘는 길이기에 떡잎이 기지개를 켜고 발바닥이 간지러워진다. 미세한 시각과 치밀한 시선이 아름다운 시를 빚은 것이다.

가끔 돌아가신 부모님을 생각할 때가 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아버지와 어머니가 그립다. 효심이 깊어서가 아니라 세월 탓이다. 진자리 마른자리 다 갈아 뉘시며 자녀를 위해 헌신하신 부모님의 고마움을 무슨 말로 형용할 수 있을까. 살아계실 때 함께 하는 시간을 많이 가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틀니를 걷어내자 우물이 드러난 것을 발견한 것도 아버지를 잘 모시고 살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아버지 역시 딸에게 모든 것을 다 말씀하시지는 않는다. 혹여 힘들어할까봐 당신의 어려움에 대해 일일이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다. 발견한 그 우물은 웅숭깊어 뉘 하나 빠질 듯이 깊숙이 파인 곳이어서 인생의 깊이를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이러한 진정성 있는 관조는 시조를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 될 것이다. ‘아버지의 말’을 나직이 음미하며 마음을 가다듬는 아침이다. 이정환(시조 시인)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저작권자 © 대구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