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진

수성구립용학도서관 관장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산을 찾거나 텃밭을 가꾸는 시민들이 늘고 있다. 지역사회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한 방역수칙으로 등장한 사회적 거리두기 또는 생활 속 거리두기가 3개월 이상 지속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외부활동을 자제하면서 ‘집콕’이란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집에만 머물다보니 부족해진 운동량을 보충하는 동시에, 코로나19로 인한 우울증이란 뜻의 ‘코로나 블루’를 극복하거나 예방하기 위한 방책으로 자연친화적 환경이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관광공사가 코로나19 발생 이후 빅데이터를 활용해 국민의 관광행동 변화를 분석한 결과에서도 이같은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결과를 정리하면 ‘집 근처의 자연친화적 공간에서 가족과 함께 안전한 야외활동’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예약했던 여름휴가철 해외여행을 일찌감치 취소한 것은 물론, 수도권을 중심으로 코로나19가 다시 확산되는 탓에 장거리 국내여행도 포기해야 하는 현실을 생각하면 설득력 있는 내용이다.

데이터 기반 도서관 운영에 수년째 집중하고 있는 용학도서관이 최근 직무역량 강화 차원에서 실시한 빅데이터 분석기법 워크숍에서도 같은 맥락의 결과가 도출됐다. 업무영역별로 직원들을 세 그룹으로 나눠 코로나19 발생 이후 대구시민들이 인터넷 포털사이트와 SNS 등에서 언급한 소셜 데이터를 수집해 분석한 결과, ‘코로나 블루를 극복하기 위해 가족과 함께 독서와 숲을 통한 인문학적 힐링’을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함께 산업, 의학, 교육 등 사회 전반적으로 ‘포스트 코로나’란 키워드도 도출됐다.



다행스럽게도 이런 시점에 용학도서관의 분관인 무학숲도서관이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도서관협회가 주관하는 ‘2020 특화도서관 육성 지원사업’에 선정됐다. ‘특화도서관 육성 지원사업’은 지역 특성과 수요에 맞춰 지역주민에게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공도서관을 선정해 지원하는 공모사업이다. 올해는 전국에서 68개관이 신청해 15개관이 선정됐으며, 대구지역에서는 무학숲도서관이 유일하다. 지난해 4월 개관한 무학숲도서관은 숲을 배경으로 한 자연친화적 도서관이란 특징을 가지고 있다. 도서관 명칭을 정할 때도 대구지방경찰청 뒷산인 무학산 일대에 조성된 무학산공원에 자리한 도서관이란 특성을 나타내기 위해 ‘숲’이란 키워드를 채택했다. 지난 1년여 동안 생태·환경을 주제로 관련 도서를 집중적으로 수집하고, 이와 관련된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함으로써 숲 속에서 힐링과 독서를 함께할 수 있는 가족 중심 도서관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무학숲도서관은 이번 특화도서관 선정을 통해 개관과 함께 진행하고 있는 곤충사육체험과 도시농업을 강화할 계획이다. 특히 도시농업에서는 가족텃밭체험 이외에도, ‘도서관에 벼가 자라요’란 이름으로 벼농사체험을 새롭게 시도한다. 벼농사체험은 공개모집을 통해 선정된 열 가족이 참여하는데, 지난 주말 시작된 모심기는 생활방역지침을 준수하기 위해 소규모로 나눠 진행된다. 친환경농법인 우렁이농법으로 벼를 기르는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부모와 자녀들은 우리의 주식인 쌀이 어떻게 생산되는지 생생하게 체험하게 된다.

이와 함께 무학산 유아숲체험원 운영기관인 영남숲아카데미협동조합과 함께 무학산가족숲축제, 주말가족숲체험, 생태공예체험 등 도심에서 생활하는 시민들이 숲과 교감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다. 특히 숲 속에서 책을 읽으면서 사색할 수 있는 비품을 빌려주는 ‘자연과 함께하는 북&피크닉’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추진할 계획이다. 한편 생활 속 거리두기를 감안해 모든 프로그램의 진행상황은 유튜브,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 비대면 온라인서비스로 제공된다.

코로나19 사태로 디지털 기반 언택트 문화의 확산이 가속화되는 반면, 다른 한 편에서는 심리적 안정감과 운동효과를 얻기 위해 숲과 텃밭 등 자연친화적인 아날로그 문화가 더욱 부각되고 있다. 이같은 현상은 이미 21세기 들면서 디지털 기기에 아날로그 감성을 융합시킨 사조를 의미하는 ‘디지로그(DigiLog)’란 신조어가 등장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진공관 앰프의 음색과 함께 턴테이블의 손맛을 느낄 수 있는 LP판을 즐기는 레트로 문화가 요즘 부쩍 확산되는 추세와도 무관하지 않다. 양 극단에 치우치지 않으려는 인간의 균형감각이 자율적으로 작동한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지혜의 보고’를 자처해온 도서관도 마땅히 세상의 이치에 어긋나지 않아야겠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저작권자 © 대구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