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철환

객원논설위원

법사위를 비롯한 노른자위 상임위원장을 여당이 일방적으로 가져갔다. 제1야당은 거세게 반발하는 모양새다. 원내대표가 사의를 표명하고 등원을 거부하고 있다.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의장 독단으로 상임위원을 배정한 일은 전대미문으로 의정의 새 역사를 쓴 셈이다. 내친 김에 국회 상임위원장을 독식하겠다는 말이 흘러나온다. 이에 대해 제1야당은 상임위원장 거부라는 자해적 초강수로 배수진을 쳤다. 이에 덧붙여 앞으론 남 탓일랑 하지 말고 국정에 대한 모든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최후통첩을 날렸다. 야당은 오직 국민만 보고 정책개발과 정권견제에 집중하겠다는 뜻이다.

국회 개원 때마다 국민의 비판을 감수하면서 상임위원장 쟁탈전을 벌이느라 원 구성 법정시한을 넘기기 일쑤다. 국회 원 구성안이 힘겹게 타결된 이후에는 각 당에서 배정받은 자당 몫 상임위원장을 두고 같은 당 동료 의원들 간 제2라운드 상임위원장 쟁탈전이 벌어진다. 그만큼 국회 상임위원장 자리가 중요하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상임위원장이 어떤 권한과 영향력을 갖고 있기에 여야 따질 것 없이 서로 차지하려고 혈안이 되는 걸까.

우리 국회는 상임위원회 중심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국회에 발의된 모든 법안은 해당 상임위에서 실질적으로 협의·토론되고 조정·타협되어 가결되거나 부결된다. 해당 상임위를 통과한 여러 법안은 본회의에 상정되지만 보통 해당 상임위의 심의를 존중하여 형식적 절차를 거쳐 통과된다. 그런 까닭에 우리 국회에선 상임위원장을 ‘국회의원의 꽃’이라 부른다. 그 중 법사위는 각 상임위를 통과한 법안이 본회의로 가는 길목이다. 그런 까닭에 법사위를 상원이라 부르며 여야가 서로 차지하려고 눈독을 들인다. 하지만 상원이 없는 상황을 감안하여 여당의 독주를 견제하도록 법사위 위원장을 제1야당 몫으로 주는 것이 관례다. 이번에 이 관례마저 허무하게 깨졌다.

상임위원장은 회의를 진행하고 여러 위원들의 의견을 조율한다. 회의를 소집하거나 폐회하는 권한을 갖는다. 회의진행 전반에서 재량권이 주어지고 가부동수일 경우 캐스팅보트를 갖는다. 통상적인 각종 회의체의 의장이 갖는 회의진행 권한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게 보면 국회 상임위원장의 권한은 원활한 회의진행과 관련한 일상적 것일 뿐이다. 따라서 정상적 상황에서 회의가 진행된다면 위원장을 어느 당의 어떤 의원이 맡든 그 결론이 달라지지 않는다. 그렇지만 법안상정을 독단적으로 하고 회의진행도 편파적으로 할 작정이라면 사정은 달라진다. 정상적 상황에선 위원장은 단지 진행자일 뿐이지만 회의가 파행되는 최악의 상황에 처하면 위원장이 고유한 회의진행 권한을 악용할 여지가 다분하다. 결국 정치가 후진적일수록 위원장의 부정적 역할이 커지고 선진적일수록 위원장의 권한은 상식적이 된다. 이렇게 볼 때, 여당의 상임위원장 싹쓸이 욕심은 야당을 패싱하고 국회를 독선적으로 운영하겠다는 저의로 읽힌다.

상임위원장은 의원회관 사무실과 별도로 넓은 상임위원장실이 주어지고 매달 쏠쏠한 특별활동비가 지급된다. 그 밖에 여러 가지 부수적인 특혜가 주어진다. 상임위원장의 명예가 지역구 유권자에게 어필될 뿐 아니라 예산배정에 예우를 받게 되는 것도 ‘프린지 베네핏’이다. 하지만 이러한 부수적인 특전은 잿밥일 뿐이다. 염불보다 잿밥이 현실이긴 하다. 잿밥은 상임위원장 쟁탈전을 더욱 치열하게 하는 불쏘시게다.

여당은 전체 의석의 5분의 3을 확보한 상태다. 정상적으로 원 구성하고 상임위를 가동해도 하고 싶은 건 다 할 수 있다. 발의된 법안을 상임위에서 실질적으로 심의하지만 사실 개의하기 전에 뒷방에서 협의·조율하여 사전에 결론을 낸다. 공식 회의는 법적인 요건 충족을 위한 절차적 요식행위일 뿐이다. 행여나 여야합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라도 여당이 5분의 3 의석을 확보했기 때문에 패스트트랙에 실어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따라서 원하는 법안통과가 목적이라면 상임위원장을 독점할 필요가 없다. 그럼에도 독식하겠다는 뜻은 국회를 민주적으로 운영하지 않고 독선적으로 끌고 가겠다는 속내를 은연중에 드러낸 신호다. 모든 완장을 독차지함으로써 야당을 물 먹이고 잿밥도 깡그리 챙기겠다는 의미다. 다수의 힘만 믿고 염불보다 잿밥에만 관심을 두고 있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거대여당의 상임위원장 독식은 그야말로 등롱망촉이다. 여당에게 몰표를 준 국민의 뜻은 여당이 갑질하고 잿밥을 모조리 다 챙기라는 말이 아니다.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수틀리면 전복시킬 수도 있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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