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운석

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

1990년 미국 스탠포드대학의 엘리자베스 뉴턴은 심리학 박사 논문을 준비하면서 ‘두드리는 자와 듣는 자’라는 재미있는 실험을 했다. 크리스마스 캐럴과 같은 누구나 알고 있는 노래를 들은 후 펜이나 손으로 박자를 맞추며 탁자를 두드리면 듣는 사람이 이 노래의 제목을 알아맞히는 방식이었다.

탁자를 두드리는 사람은 듣는 사람이 최소한 50% 이상은 맞출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듣는 사람들은 실제로 2.5% 가량만 노래 제목을 알아맞혔다. 두드리는 사람은 탁자를 두드리는 박자 외에 머릿속으로는 멜로디까지 생각한다. 상대에게 멜로디는 전달되지 않는다는 것을 전혀 생각하지 못한다. 그러면서 ‘이렇게 쉬운 노래 제목을 왜 맞추지 못하나’ 의아해한다.

무슨 내용이든 알고 있으면 다른 사람들은 이것을 모를 수도 있다는 것조차 상상하지 못하는가 보다. 오히려 ‘이렇게 쉬운 걸 왜 모른다는 걸까’ 의아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알고 보면 나만의 고정관념이다. 내가 알고 있으면 남들도 당연히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처럼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을 다른 사람도 알 것이라는 고정관념에 매몰되어 나타나는 인식의 왜곡현상을 ‘지식의 저주(the curse of knowledge)’라고 한다. 때로는 ‘전문가의 저주’라고도 한다.

가끔 TV 예능프로그램에서 몸짓을 보고 단어나 동물 알아맞히기를 하는 게임을 한다. 두 사람이 짝을 이루어 한 사람은 진행자가 들고 있는 단어나 동물을 손짓, 몸짓으로 설명하고 다른 사람은 이를 알아맞히는 게임이다. 이때 설명하는 사람의 몸짓을 보면 재미있다. 자기가 아는 방식으로 표현해내기 때문이다. 때로는 상대는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는데도 불구하고 열심히 자기만의 방식으로 설명을 하기도 한다. 이러고도 상대방이 정답을 말하지 못하면 너무 답답해한다. 왜 이렇게 쉬운 걸 모르느냐는 투다. TV를 통해 이를 보는 시청자들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시청자도 이미 답을 알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손짓몸짓으로 설명하는 사람의 의도를 충분히 알아서다.

부모들이 어린 아이들을 대할 때도 가끔 이런 오류를 범한다. “몇 살인데 아직도 이걸 못해?” “몇 번을 얘기했는데도…” 이 역시 자기 기준으로 아이를 봐서 그렇다.

직장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들도 마찬가지다. 일에 미숙한 부하직원들을 보면 용납하지 못하는 상사들이 대표적이다. “입사 몇 년차인데 이것도 못해?” “일처리를 이렇게 하고도 월급 받을 수 있나?” 자기 자신도 수년간의 경험을 통해 업무처리에 정통해졌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는 아랫사람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인다.

상대성이론을 발표한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물리학 이론 분야에선 세계적으로 초일류 학자였다. 하지만 그가 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했을 땐 명성에 비해 강의는 형편없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물리학 이론에 대해 학생들이 자신과 같은 기초지식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고정관념 때문이었다.

이런 지식의 저주는 소통을 방해한다. 아는 것이 힘이 아니라 오히려 독이 되는 경우다. 특히 리더가 소통을 강조하려 할 때 자주 나타난다. 자기 기준에 맞춰 메시지를 전달하려다보니 모르는 사람들의 처지를 전혀 헤아리지 못한다.

가는귀가 먹어서 상대방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을 사오정이라고 놀린다. 하지만 자기의 얄팍한 지식에 파묻혀 상대방이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말만 하는 사람이 진짜 사오정 아닐까.

현대사회는 협업과 융합이 중요하다. 이 시대의 진정한 소통법은 ‘듣는 사람’ 입장에서 박자 뿐만 아니라 멜로디까지 전해주는 진정함이다. 그래야 진정한 협업이 이루어진다.

요즘 ‘자신만의 박자’로 탁자를 두드리며 ‘지식의 저주’에 빠진 사람들(특히 정치인들)을 자주 본다. 박자뿐만 아니라 멜로디까지 전달해야 듣는 사람(국민)도 박자를 맞출 수 있음을 명심할 일이다. 나아가 한 번쯤 나는 전문가처럼 말하고 있지는 않은가 되돌아 볼 일이다. 혹시 ‘듣는 사람’의 입장을 헤아리지 않고 나만의 멜로디에 취해 열심히 탁자를 ‘두드리기만 하는 사람’은 아닌가.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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