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

최인훈

~격동의 시대를 산 지식인의 갈등~

…이명준은 내성적인 철학과 대학생이다. 부친은 월북한 남로당원이다. 서울에서 은행 지점장을 하는 부친 친구 집에서 얹혀산다. 서울은 개인주의가 난잡하게 창궐한다. 소통하는 ‘광장’은 없고 ‘밀실’만 존재한다. 어느 날, 부친이 대남방송을 담당하는 사실이 밝혀져 경찰서로 소환된다. 취조실에서 일제 잔재가 청산되지 않은 민낯을 본다. 부친이 고위 공산당원이라는 이유로 모욕과 폭행을 당한다. 친구의 소개로 만난 윤애와 사귄다. 인천에 사는 윤애의 집에 기거하다가 북으로 가는 밀항선을 탄다.

북쪽엔 공동체를 위한 ‘광장’은 있지만 진정한 ‘광장’은 없다. 명준은 아버지의 백그라운드로 언론사에 근무한다. 표현의 자유는 없고 퇴색한 구호와 전체주의적 지시만 있다. 그러한 상황에 실망한 나머지 건설 현장에 자원한다. 막노동을 하다가 낙상하여 오른쪽 허벅지 뼈에 금이 갔다. 명준은 입원한 병실에서 간호 봉사를 온 발레리나 은혜를 만난다. 은혜와 몸을 섞는다. 6.25가 터지자, 명준은 인민군 장교로 참전한다. 포로로 잡혀온 친구 태식과 그의 아내가 된 윤애를 대면한다. 태식을 고문하고 윤애를 강간하려고 시도한다. 종국엔 태식과 윤애를 풀어주고 ‘악마도 되지 못한’ 자신을 비웃는다.

그 후 명준은 낙동강 전선에서 간호병으로 온 은혜와 재회한다. 그곳의 한적한 동굴에서 수시로 둘만의 시간을 가진다. 은혜는 그의 딸을 가진 것 같다고 고백한다. 결전의 날, 은혜는 전사하고 만다. 전쟁포로가 된 명준은 석방 후 중립국을 선택한다. 남쪽으로 가면 빨갱이 취급받으며 감시당할 것 같고, 북쪽으로 가면 남로당계인 부친이 숙청당한 후 자신도 무사할 수 없을 것 같다. 어느 곳으로 간다 해도 기다릴 사람 하나 없는 주변인이다.

명준은 중립국으로 가는 타고르 호에 오른다. 승선한 석방포로들과 반목하고 갈등하며 정신적 공황상태를 겪는다. 중립국에서도 행복을 찾을 것 같지 않다. 명준은 감시자로 여겨 총으로 쏴버리려고 했던 갑판 위 두 마리 갈매기의 모습에서 은혜와 자신의 딸을 발견한다. 마침내 갈매기가 나는 바다에서 그가 찾던 푸른 광장을 발견한다. 명준은 바다로 몸을 던진다.…

작가는 일제 말기에 태어나 나라 없는 설움을 맛본다. 사춘기에 해방공간의 극심한 혼란을 겪고, 십대 중반에 민족상잔의 전쟁을 겪는다. 말 그대로 격동의 시대를 몸으로 부딪친 것. 제국주의가 풍미하던 때를 살았고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시대를 주어진 환경으로 받아들였다. 이데올로기 담론이 작가의 머릿속에서 한시도 떠날 수 없는 구조다. 작가의 대표작 ‘광장’의 주제가 이념과 체제에 천착하는 것은 필연이다.

남쪽은 탐욕과 음모가 횡행하고, 편법과 반칙이 넘치며, 아부와 허세가 판친다. 자유민주주의엔 이기심이 범람하는 타락한 ‘밀실’만 있을 뿐, 사회정의가 구현되는 푸른 ‘광장’은 없다. ‘타락할 수 있는 자유와 게으를 수 있는 자유’가 추악한 악취를 풍기는 ‘실존하지 않는 사람들의 광장 아닌 광장’만 있다. 북쪽은 진실이 왜곡된 ‘잿빛 광장’만 존재한다. 가족이나 남녀 간의 사랑 등 사생활과 개인의 자유가 적대적으로 통제되고 공동체와 사회주의이념만을 앞세운다. ‘잿빛 광장’엔 개성과 창의는 없고 ‘공산당 교시’만 내세우며 복종과 충성만을 강요한다. 어느 쪽도 선택 밖에 있다. 무엇이든 포용하는 바다가 애타게 갈구하던 푸른 광장임을 새삼 깨닫는다. 최후선택은 결국 바다다. 오철환(문인)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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