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기꾼들만 있는 세상

발행일 2020-06-24 15:10:16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이사대우

지난 6월17일 발표된 정책당국의 부동산시장 안정화 대책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 지 시장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번 대책은 풍선효과로 정책을 무력화해 온 원인으로 지목되는 갭 투자자와 같은 투기세력을 원천 봉쇄하여 부동산시장을 안정화시키겠다는 것인데 벌써부터 시장이 들썩이고 있는 것이다.

3년 전 지금의 주무 장관 스스로가 취임식에서 ‘돈’이 아니라 ‘집’이니 투기세력이 돈벌이를 위해 주택시장을 어지럽히지 못하도록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막겠다고 일갈했으니 풍선효과가 극심한 지금 가차없이 새로운 규제가 나온 것은 당연한 귀결인 것 같다. 또 21번째 대책이라고 하니 기필코 부동산시장을 안정화시키고야 말겠다는 정책당국의 강한 의지도 뼛속까지 고스란히 전달되는 느낌이다.

다만 이번에야 말로 부동산시장이 안정화 프로세스에 진입할 것이라는 기대를 해도 될지 의문의 여지는 남는다.

정책의 성패는 시장의 신뢰와 기대 즉 심리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정책당국이 추진하고자 하는 정책들이 성공하려면 그것들이 바람직하고 적절하다는 시장의 신뢰를 바탕으로 이번에야 말로 정책효과가 제대로 나타날 것이라는 기대가 형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당연히 시장과도 적절한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져야 하고 그 결과가 전부는 아니더라도 필요하고 바람직한 부분이 있다면 일부라도 정책에 반영되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정책당국과 시장과의 대화는 같은 지향점을 향해 서로 다른 궤적을 그리며 달리는 것 같아서 이번 대책의 효과에 대해서도 불안감을 가질 수 밖에 없는 것이 또한 사실이다.

즉 지금까지도 여전히 시장은 수요자가 원하는 적절한 곳에 충분할 만큼 공급해 주길 원하고 있지만 정책당국은 전반적인 투기수요 억제를 주요 대책으로 시장에 제시하고 있다. 신도시 건설 등 일부 반영된 것도 있긴 하나 전반적으로는 시장과 정책당국간 커뮤니케이션이 적절히 이루어지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다.

여기에다 경기부양을 위한 인위적인 건설경기 활성화는 없다는 정책당국의 변함없는 입장은 일관성은 있지만 경기 대응 측면에서는 물론이고 공급은 없다는 잘못된 신호를 시장에 주었을 뿐이다. 그러다 보니 간혹 발표되는 인프라 및 지역 개발 이슈에 시장이 요동치기도 했다.

이외에도 시장과 정책당국 간 상반된 커뮤니케이션 사례는 많겠지만 여하튼 그 결과가 바로 21번에 이르는 정책당국의 규제로 시장의 기대가 정책당국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형성되었을 뿐 아니라 정책 신뢰도도 크게 훼손되어 왔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이렇게 밖에 할 수 없었던 정책당국의 입장도 이해는 간다. 경기침체에 대한 부담 때문에 국내 부동산시장 전체에 충격을 가하기 보다는 국지적인 불안정성에 적극 대응함으로써 시장 전반의 조속한 안정화를 꾀하겠다는 핀셋규제는 나름 정당성이 있어 보였고, 초기에는 시장의 기대도 그렇게 형성되었다.

임대주택 활성화나 신도시 건설, 교통 인프라 확충 등 시장이 말하는 공급 부문에 대한 보완책도 충분히 고려했다. 끊임없이 풍선효과를 불러와 정책효과를 물거품으로 만든 투기세력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세무조사마저도 주저하지 않고 끊임없이 대응해 왔다. 이뿐이 아니다. 틈만 나면 투기와의 전쟁을 끝내 부동산시장 안정화에 전력을 다하겠다고도 했고 넘쳐나는 유동성이 투기 자본화되지 않도록 예방하겠다고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은 정책당국의 모든 시장안정화 노력을 수요 억제와 공급 차단으로만 본다고 말이다.

논쟁이 지나치면 진실은 사라진다던 고대 로마의 시인 푸블릴리우스 시루스의 말처럼 수많은 대책이 나오고 시간이 지났지만 이제는 과연 문제의 본질이 무엇이었는지 가물가물하다.

한가지만큼은 분명히 해두고 싶다. 부동산시장 불안정은 오롯이 투기세력 때문인지 말이다. 그리고 그 투기세력에는 집을 넓혀가려거나 새집을 사려는 사람들, 교육이나 직장 등의 이유로 이사하려는 사람들도 포함되는지 말이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온통 투기꾼들만 있는 세상인지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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