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오를 대물림해서야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헷갈린다. 북한이 당 중앙 군사위 예비회의에서 대남 군사행동을 보류키로 했다는 보도했다. 하루 전까지 대남 전단 살포 예고에 이어 대남 확성기 방송을 준비해 우리의 잠자던 안보 불감증을 일깨운 북한이었다. 귀싸대기를 얻어맞은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SNS로 실시간 세계 곳곳의 뉴스를 공유하는 세상에서 냉전시대의 유물인 삐라와 확성기 선전이라니, 그런대도 우리를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그들이 갖고 있는 그런 적개심과 증오심을 확인한 때문이었다. 다행히 군사행동은 보류라지만 여전히 긴장을 늦출 수가 없게 만든다.

잠시 잊고 있었다. 70년 전 이 땅에서 벌어졌던 동족상잔의 비극을. 아직도 그 전쟁에 참전했던 1세대들이 그 손자와 증손자 세대와 함께 살고 있는 이 땅에서 그날의 비극과 상처는 대물림되고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날마다 눈만 뜨면 주먹을 불끈 내지르며 ‘쳐부수자 공산당’을 외쳐야 하루 일과를 시작하던 때가 있었다. 그들은 형제자매가 아니었다. 세상에 그런 원수가 없었다. 거기엔 분단에 기생해서 성장하는 세력의 음모도 관여했다. 주변 국가들의 이해도 큰 변수가 됐다. 최근 존 볼턴 전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회고록 파문도 그 증거 중 하나다.

반공이 아닌 통일이 국시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현역 국회의원으로 회기 중 체포 구속된 고 유성환 전 의원은 6·25 참전용사였다. 그의 통일 국시 논쟁이 35년 전에는 엄청난 파장을 만들었는데 이제 다시 35년이 지났다. 이제 우리는 그 분단 상태에서 서로를 적대시하며 분단 상황에 기대어 정권을 지탱하던 시기는 지났다고 생각했는데 또다시 확성기와 전단이 등장한 것이다, 마치 우리의 인내심을 시험하고 있는 듯하다.

2년 전인 2018년 4월27일. 남북 정상은 판문점에서 적대행위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그 해 9월, 남과 북은 군사적 긴장과 충돌의 근원이 되는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하기로 했다. 현실은 이런 합의 자체를 한갓 종이쪽지로 만들어 버릴 위기에 처한 것이다.

물론 북한이 주장하는 원인이야 남쪽에서 쏘아올린 대북전단을 두고 말하지만 그 실체는 다른 곳에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북한은 먼저 개성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 일련의 행위들은 더 이상 대화를 통한 협상이나 평화로운 일상은 상상하지 말라는 경고로 들렸다. 군사행동을 보류하기까지 그들의 언어가 그랬다.

이런 남북간 긴장은 지난 2년간의 남북 화해 분위기가 여름밤 꿈처럼 아득하게 느껴진다. 김연철 전 통일부장관이 퇴임하면서 그랬다. “증오로는 증오를 이길 수 없다.” 우리에게는 많은 상처가 있다. 그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 기다리고 더 인내해야 한다. 그의 말에서 현실적인 남북간 관계 정립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느끼게 해 준다.

한민족이지만 북한과 남한의 어법이 다르고 더구나 북과 미국은 말조차 통하지 않아 통역을 통해야만 하는데 그 뉘앙스와 어휘가 갖는 상징성까지 포함하면 협상의 어려움은 짐작하고도 남겠다. 거기엔 국가의 이익과 정치인들의 이해관계까지 첨예하게 맞물려 있다. 미국의 대통령선거와 정당, 우리나라 정치 일본 정치 또 이들 나라끼리의 국제이해관계까지 얽혀 있다.

여러 차례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을 갖고서도 북한으로서는 그들이 바라는 바를 얻지 못했다. 이래저래 교착상태에서 판문점에서 펼쳐진 남북 정상의 군사분계선 월경 쇼는 쇼로 끝났다. 지금 상태로는 그렇다.

결국 모든 문제는 우리가 스스로 풀어가야 하는 순간을 맞고 있다. 일체의 적대 행위는 없을 것이라는 선언에서 나아가 이 땅에 전쟁 종식을 선언하고자 했던 문재인 정권의 행보를 국민들은 주시한다.

남북관계, 치유할 상처가 많다. 전쟁을 겪은 사람들이 살아있는데 어찌 상처가 그리 쉽게 지워지겠나. 그들은 전쟁의 무서움을, 그 트라우마를 지우지 못한다. 덧나지 않도록 치유해야 한다. 그렇다고 증오를 대물림하는 것은 치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비록 상흔이 남더라도 곪거나 재발하지 않도록 속은 깨끗이 나아야 한다. 상흔쯤은 옷으로 가리면 된다.

언론인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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