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꽃이 필 때/박권숙

일제히 꽃피우고 일제히 말라 죽는//

대나무의 외골수가 다다른 생의 벼랑//

세상의 모든 직선은 마지막 닻을 내린다//

허공의 발자국이 발을 잃어버린 자리//

육십 년 혹은 백년 단 한 번 허락된 꿈//

그래도 꽃나무라는 허명 앞에 불을 켠다

박권숙은 부산 출생으로 1991년 중앙일보 지상시조백일장 연말장원으로 등단했다. 시조집으로 ‘모든 틈은 꽃핀다’, ‘뜨거운 묘비’ 등이 있다.

시조문단에는 특이한 이력을 가진 시인이 많고, 늦은 나이에 등단해 시조 창작에 자신의 인생을 걸고 활동하는 시인들도 적지 않다. 뒤늦게나마 시조의 가치성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결코 늦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들이 펴낸 시조집이 그것을 잘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시조쓰기에 자신의 전 생애를 의탁하는 일은 값지다. 몸으로 체험하지 않은 이들은 모른다. 우리말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언어가 얼마나 신비로운지 알 수 없다. 그러나 한 편이라도 써보게 되면 알게 된다. ‘대꽃이 필 때’를 쓴 시인은 일찍 시조에 입문해 그간에 빛 부신 시편들을 다수 생산하여 적지 않은 독자층이 있다. 그의 작품을 찾아 읽는 후학들이 많다. 그만큼 문학적 성취가 높기 때문이다.

‘대꽃이 필 때’는 강렬하고 견고하면서 결연하다. 일제히 꽃피우고 일제히 말라 죽는에서 보듯 일제히, 라는 시어의 되풀이로 금세 독자의 시선을 집중시킨다. 대나무의 외골수가 다다른 생의 벼랑을 예시하고 난 뒤 세상의 모든 직선은 마지막 닻을 내린다라고 전율을 일게 하는 생생한 목소리를 들려준다. 허공의 발자국이 발을 잃어버린 자리라는 둘째 수 초장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대목이다. 육십 년 혹은 백년 단 한 번 허락된 꿈이 대꽃이어서 그래도 꽃나무라는 허명 앞에 불을 켤 수 있는 점을 각인시킨다.

‘대꽃이 필 때’는 집착이 아니라 집념과 인고의 결집이자 결정체다. 모든 힘든 상황을 꿋꿋한 의지와 불꽃같은 염원으로 완전무장하고 꽃 피울 그날을 위해 간구의 세월을 견디는 인종을 밀도 있게 육화하고 있다. 독자에게 새로운 꿈과 의지를 불러일으키게 하고 있는 ‘대꽃이 필 때’는 치유의 시편이자 용기를 심어주는 절절한 가편이다. 그가 일평생 시조를 신앙하다시피하며 개인적으로 갖은 고초를 극복하고 지금까지 어떻게 승리하는 삶을 영위해 왔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그러므로 시인의 자화상이 오롯이 투영되어 있다고 보아도 좋겠다.

실로 그는 꽃피우고. 말라 죽기를 마다하지 않는 대나무의 외골수가 다다른 생의 벼랑 앞에서 한시도 자세를 흩트리지 않았던 것이다. 세상의 모든 직선이 마지막 닻을 내리는 상황을 두 눈으로 직시하면서 동시에 허공의 발자국이 발을 잃어버린 자리라는 허벽의 정조 앞에서 결코 무너질 수 없는 자존의 견고한 뼈대를 세우는 일 혹은 신앙과 같은 시조 쓰기에 부단히 매진해온 것이다. 자신의 존재를, 살아가야할 까닭을 이만큼 더 잘 알릴 방법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대꽃이 필 때’는 그간 꾸준히 이룩해온 박권숙 시조시학을 대표할 만한 역작이다. 또한 두 수의 시조가 완벽한 정형미학을 구현하는데 최적의 그릇임을 다시 한 번 천명한 가품이다. 이만큼 명징하고 이만큼 치밀하고 이만큼 울림이 크고 깊은 세계를 축조하는 일은 쉽지 않다.

시조가 지향해야 할 한 방향을 잘 제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정환(시조시인)



김지혜 기자 hellowis@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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