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거기에 깃들다

▲ 시인 천영애
▲ 시인 천영애
집은 내 삶의 깊은 명제와도 같다. 남이 지은 집에 거주하며 한번도 내 손으로 집을 지어보지 못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집을 나에게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집에 맞추어 산다. 사람마다 삶의 숨결이 다른데 비슷한 집에서 비슷하게 살다보면 각자의 고유한 숨결을 찾을 겨를이 없다.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습성은 이 집에서 비롯되었는지도 모른다.

영상으로 보는 제주도의 수, 풍, 석 뮤지엄은 고요 그 자체이다. 제주의 자연과 이들은 구태여 구분되지 않으며 그것이 분명한 건축물임에도 이미 자연 속으로 스며들어 자연이 되었다. 이 뮤지엄을 건축한 이타미 준은 유명한 포도 호텔과 방주 교회를 설계한 재일한국인 건축가이다.

영상에서는 이타미 준이 지은 건축물들이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바람처럼 흘러나온다. 건축이 그토록 아름답고 고요하게 자리 잡은 놀라운 풍경이다. 그리고 건축에 대해 조금이라도 생각을 해 본 사람이라면 이타미 준의 수 뮤지엄, 풍 뮤지엄, 석 뮤지엄이 왜 그 자리에 지어졌어야 하는지 의문을 가질 것이다.

건축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여기저기를 돌아보면서 깨달은 것은 잘 지은 건축물이란 또 하나의 자연이라는 것이다. 시간이 흘러 사람의 손으로 지은 건축물은 자연으로 스며 들어가 나무나 풀처럼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듯이 또 하나의 자연이 된다. 그리고 나무가 수백 년을 가듯이 그 건축물도 수백 년을 갈 것이다.

이 다큐에서는 건축의 선의 아름다운 영상이 물결치듯 흘러다니는 화면 위로 양방언의 음악이 또 하나의 건축물처럼 물결친다. 양방언이라면 중국의 차와 티벳의 말을 교환하기 위한 교역로인 차마고도를 영상화한 다큐멘터리 ‘차마고도’의 음악을 만든 재일한국인 2세이다. 그의 음악이 있어 차마고도가 더 아름다운 영상으로 만들어질 수 있었는데 다큐멘터리와 별개로 이 음악은 당시에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이 다큐의 음악 역시 양방언이 만들었는데 영상과 음악이 건축물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우리를 사유의 세계로 깊이 끌어들인다.

집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 경북 영양에 가면 서석지라는 조선시대 3대 민간정원이 있는데 현대인의 시각으로 보면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장소에 있다. 첩첩산중,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을 것 같은 곳에 아름다운 정원을 조성하고 은거하던 사람들은 집도 재산증식의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현대인들은 도저히 지을 수 없는 곳에 집을 지었다. 집은 재산증식의 수단인가, 아니면 우리의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누일 공간인가.

차 소리가 시끄럽고 밤이면 폭주족들의 소음으로 창을 닫아야 하는, 거주의 공간으로는 영 못마땅한 곳에 사는 현대인들은 그 서석지의 풍광에 감탄하지만 자신이 거기에 집을 지을 것인가라는 물음에는 고개를 흔든다. 집은 거주의 공간만이 아니라 유효한 투자수단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타미 준의 바다’를 보면 잠깐 동안이나마 사람이 거주하는 공간인 건축물이 얼마나 고요하고 적막하게 있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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