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일반

(문향만리)말/권기호

말/ 권기호

젊은 한 때/ 서투른 열기로/ 사랑이란 말을 써본 일이 있었다/ 그녀 앞에서/ 그것은 후두에 걸려 오래 허둥대다가/ 뱉어진 것은/ 겨우 식은 납덩이같은 것이었다/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피가 돌지 않는 언어를 들고/ 나는 발부리에 멍이 들도록/ 산을 헤매었다/ 그때부터였던가/ 논리나 형이상학 같은 것은/ 유리구체로 된 세계 위에/ 지식인들이 하염없이 쌓고 있는/ 바빌론의 돌무덤이라 생각되었다/ 인류애나 정의는/ 정치인들이 자판기에서 판매하는/ 비석 위에 새겨놓은 공허한 의문부호라 생각되었다/ 말하지 않지만/ 밤하늘의 은하는/ 가슴의 뜻을/ 지상의 꽃으로 뿌릴 줄 안다/ 지구 중심의 열기들은/ 여름하늘 구름으로 올려놓을 줄 안다// 없는 형상을/ 굳이 형상의 옷으로 드러내야하는/ 슬픈 본질이 시인에게는 있다/ 이 슬픔은 때로 광기로 윤색된다/ 반 고흐의 하늘이나/ 명왕성 저쪽으로 사라지는/ 자코메티의 군상 같은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 광기 역시/ 찻잔속의 우레에 지나지 않는다/ 에른스트 피셔는 베토벤작품, 31번을/ 근대자본주의가 뿜어낸/ 고독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다른 비평가는 그것이/ 계급적인 것이 아니라 삶을 관조할 줄 아는 자만이/ 느낄 수 있는 그 무엇이라는 것이다/ 형상의 덮개 위에/ 색깔을 덧칠하는/ 이런 작업 때문에/ 시인은 더욱 슬퍼지는 것이다

시인의 마을 (대구은행, 2009)

구약성서 창세기에 의하면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도구는 오직 말씀이었다.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다. 하나님은 ‘가라사대’로써 모든 삼라만상을 만드셨다. 그런 연원을 곰곰이 곱씹어 본다면 말은 존재의 근원이라는 결론이 저절로 나온다. 인간도 조물주를 본받아 말로써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만들고 성취해 간다. 사고의 샘물은 말로 솟아나오고 그 말의 기록이 문자이다. 시 또한 문자의 영적 기록의 한 범주다. 지나온 사실에 대한 문자의 집적은 다름 아닌 역사이기도 하다.

청춘남녀들의 입에 가장 자주 오르내리는 말은 사랑이다. 젊은 시절, 사랑이라는 말 한 마디 해보지 않은 사람은 드물 터다. 그렇긴 하지만 사랑이란 말이 마음처럼 그렇게 쉽게 나오진 않는다. 비록 진정 사랑한다고 말한다 하더라도 빨간 하트를 열정적으로 표현하고 상대방에게 그렇게 전달하는 것은 더욱 더 어렵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 서면 누구나 괜스레 작아지고 떨려서 당황한다. 불타는 마음을 있는 그대로 말하지 못하고 방금 식은 납덩이같이 하얗게 질려 가라앉고 만다. 마음이 담기지 않은 죽은 언어로 이리저리 꿰맞춰 말해봤자 말짱 황이다. ‘이게 아닌데’, 하고 후회해봐야 버스 지난 뒤 손드는 꼴이다. 사랑 앞에 거창한 학문은 속 보이는 허망한 무덤이고 인류애나 정의는 믿을 수 없는 공허한 정치구호다.

밤하늘의 은하수는 별들을 수놓아 아름다운 마음을 표현하고 지구는 물을 증발시키고 구름을 띄워 뜨거운 열정을 보여준다. 시인은 무에서 유를 찾아내는 창조적 존재다. 그 본질은 가끔 광기로 표출된다.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하늘과 자코메티의 걸어가는 사람이 그것이다. 그 광기도 제한적이고 일시적이다. 베토벤의 피아노협주곡 제31번에 대한 에른스트 피셔와 다른 비평가의 피가 돌지 않는 고답적인 덧칠은 초월한 삶에 대한 고뇌에 찬 깊은 성찰을 무색하게 한다. 원작의 고유한 색깔이 가려지고 훼손되는 모습이 시인의 슬픈 운명을 보는 듯하다. 시의 창조적 순수성이 학자의 현학적인 윤색으로 왜곡되고 있는 현실은 개탄스럽다.

오철환(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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