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명희 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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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희

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

7월이 환하게 열렸다. 아직도 하루하루 살얼음판 같은 일상이다. 벌써 반년째다. 코로나19, 올해 봄 대구에서 있었던 폭발적인 발생은 아니지만, 산발적인 집단 감염이 이어져 언제 다시 폭증할지 몰라 불안한 심정이다. 수도권의 발생 소식에도 광주 전남의 소식에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 이어진다. 확진자가 된 학생들의 모습이 참 애처롭다. 아파도 내색조차 잘하지 못하고 온통 난리가 난 학교와 지역사회의 이목에 얼마나 신경이 쓰이겠는가. 밥도 먹지 않고 너무 우울해 있는 환자에게는 코로나19에 걸린 것이 꼭 개인의 부주의만으로 생기는 것은 아닐 터이니 너무 죄책감 느끼지 말고 열심히 치료해보자고 다독인다. 누구라도 피해자가 될 수도 있고 모르는 순간에 가해자가 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감염이 어디서부터 시작돼 누구에게로 옮겨 갔는지 그 역학의 고리를 밝히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요즘 같은 깜깜이 환자들이 발생하는 경우에는 더욱더 그렇다. 행여나 코가 막히고 평소에 비염이 있던 환자이더라도 갑자기 냄새를 못 맡게 되고 입맛을 못 느끼면 코로나19 감염이 아닌가? 의심하고 꼭 진료를 받아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젊고 건강한 이들 중에서 병력을 자세히 물어보면 어느 순간에 미각 상실이나 후각 상실이 동반됐다던 환자들이 꽤 많았으니까 그것도 자신이 먼저 의심해 볼 수 있는 증상일 듯 싶다. 맛있는 밥을 먹으면서도 무슨 맛인지 못 느끼고 평소에 잘 느끼던 냄새도 전혀 느끼지 못한다면 이상한 기분이 먼저 들지 않겠는가. 그럴 때면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검사를 해 보는 것이 안전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나를 위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는 길이고 또 내 이웃을 지키는 행동일 터이니.

지독한 소독 냄새에도 전혀 끄떡없이 있던 한 사람, 쾌활해 보이던 한 환자가 묻는다. 냄새를 못 느끼고 맛을 못 느끼면 뇌세포가 사라져서 기억마저 없어지고 그러면 치매에 걸리는 것은 아닐까요? 코로나19로 회복만 되면 맛과 냄새는 대부분 돌아오고 치매는 다른 기전으로 생기니 미리 걱정하지 말자며 위로한다.

환자의 느닷없는 질문이 나를 돌아보게 한다. 몇 달 사이, 코로나19에 묻혀 살다 보니 정말 건망증이 심하다. 코로나 건망증이라고 부르고 싶어진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질긴 적군과 싸우느라 방어력이 다 떨어졌을까. 쳇바퀴 도는 듯한 단순한 동선으로 집과 병원을 오가는 생활을 하다 보니 기억이 가물거린다. 깜빡이는 네온처럼 잠시만 다른 일을 생각하다 보면 그만 중요한 것을 놓치고 말 것만 같아 걱정이다.

7월1일은 의료원 개원 106주년이었다. 1914년 대구 부립 전염병 관리 병사로 시작한 의료원이 100년이 지나자 본래의 업무로 복귀한 느낌이다. 대구지역 코로나 환자가 처음 발생하고부터는 전체 병상을 비워 코로나 전담 병원으로 역할을 하느라 다른 부대 사업이나 업무는 일단 다 미뤄 두게 됐다. 일반 환자들은 간간이 오기는 하지만 일반 병실은 코로나 전담으로 돼 격리 상태로 됐으니 입원할 병실도 없었다. 생글생글 웃으며 직원들에게 맛있는 차를 만들어주며 그날그날 이야기를 잘도 전하던 커피숍 주인도 몇 달을 쉬게 되었다. 지난달 중순, 조금 안정이 돼 일반 환자들도 입원하고 외래도 다시 열어 진료를 시작했다. 기다림 끝에 그도 본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병원 로비는 다시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 환자들과 직원들도 차 주문하면서 인사를 나눈다. 그는 커피를 내리고 난 찌꺼기를 하나도 버리지 않고 모아뒀다가 직원들에게 나눠주곤 한다. 시골에 텃밭이 있는 사정을 아는 그가 개원 기념일에 기념식을 대신 직원에게 커피 한잔과 케이크를 나누는 행사를 했기에 커피 찌꺼기가 갑자기 많이 있다면서 싣고 가라는 것이 아닌가.

차를 몰아 병원으로 갔다. 회진을 하고 있는데 남편이 함께 갈 곳이 있다고 해 무거운 커피 찌꺼기를 그 차에 옮겼다. 볼일을 마치고 시골로 가서 텃밭에 손질하고 주변에 찌꺼기를 뿌렸다. 부엽토 속에서 숙성되기를 기다리며 나머지 볼일도 마쳤다. 텃밭의 토마토와 감자가 유난히 잘 돼 찌꺼기의 힘을 믿으며 흐뭇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도착해서 물건을 넣으려 내 차를 찾으니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다. “내 차 어디 있는지요?” 남편이 이마를 ‘탁’ 친다. 건망증! 병원 주차장에 세워두고는 그냥 남편 차로 오고 만 것이다. 코로나가 정신을 혼미하게 하는가. 마스크를 두고 내려 다시 돌아가고 유리창을 열어 두어 비에 흠뻑 젖고, 차를 어디 둔 지도 잊어버리고.

청포도가 익어가는 칠월이다. 아무쪼록 정신 줄을 꼭 잡고서 건망증 없이 건강하게 여름을 잘 날 수 있기를.



김지혜 기자 hellowis@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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