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헌경 변호사
▲ 박헌경 변호사
토요일 오후에 경주 조각가 선배가 홀로 살고 있는 불국사 아랫 동네에 가서 1박2일을 보냈다. 경주로 들어가는 길은 언제나 나를 편안히 안아주는 엄마의 품같은 아늑함이 있다. 통일전과 화랑교육원, 선덕여왕릉을 지나가면 신라 천년의 숨결이 느껴지고 어느 낯선 여행지를 찾아온 것 같은 신선한 생동감이 넘친다. 드넓은 서라벌 들판에는 모내기가 끝난 벼들이 눈이 시리도록 푸르게 자라고 있고 줄지어 늘어선 단층 기와집들은 여기가 천년 고도라는 것을 피부로 느끼게 한다. 낯선 곳을 찾아 떠난다는 것은 익숙함을 벗어나는 창조적 자유다.

선배집에 도착하니 선배가 집 밖에 나와서 기다린다. 경주 시내 ‘삽짝거리’라는 식당을 예약해 놓았으니 거기로 택시를 타고 가자고 한다. 코로나19로 식당들이 장사도 잘 안되는데 팔아주러 가야 된다고 한다. 식당에서 무승 괴짜스님과 판소리꾼을 만나 술을 곁들여 떠들썩하게 저녁을 먹었다. 술은 취하면 실수도 하게 되지만 한편 벽을 허물어뜨려 빨리 친하게 하고 나의 자존심을 버리게 하고 나를 낮추게도 한다. 저녁 식사를 끝내고 라이브 카페에서 ‘신라의 달밤’, ‘황성옛터’를 쏟아내고 밤늦게 선배의 집 다실에 돌아왔다. 선배가 미리 이불을 깔아놓았으니 혼자 다실에서 자라고 한다.

다실에는 책들이 수북이 쌓여있고 ‘空’이라 쓰여진 커다란 액자가 벽에 걸려있다. 책 속에서 ‘경주에 가거든’이라는 춘원 이광수의 경주 자전거 여행기가 있어서 읽었다. 일제 강점기 차편도 잘 없는 시절에 춘원은 자전거를 타고 경주 유적지를 돌아다니며 기행문을 남겼다. 춘원의 글은 언제 읽어도 맛깔이 난다. 춘원은 일제 강점기 육당 최남선, 벽초 홍명희와 더불어 조선 3대 천재로 불렸다. 1919년 3·1 운동 당시 춘원은 일본에서, 육당은 조선에서 각자 독립선언문을 기초했고 반일민족운동을 해왔으나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이 일어나면서 친일을 함으로써 반민족행위자로 비판을 받고 있다. 그래서 반일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춘원과 육당의 글은 읽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춘원과 육당이 친일행위를 하면서 지은 글들은 읽지 말아야겠으나 그들이 반일민족운동을 하면서 지었던 글까지 읽지 않는다는 것은 이제 와서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춘원은 조선의 문학에서, 육당은 민족 역사학에서 뚜렷한 발자취를 남겼다. 일제시대 만주에서 항일독립운동을 하다가 몇 번이고 옥고를 치루었고 북한의 보건사회부 위생국장을 지내고 6·25전쟁 때 북한 치하의 서울에서 서울대병원장까지 지낸 유채룡이라는 사람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이광수, 최남선 같은 친일파 작품 이를테면 흙, 무정은 훌륭한 책인데 그것까지 어떻게 버려요. 다만 조선인 학병동원 연설을 하고 창씨개명을 하고 민족을 배신한 게 죄지요. 그 전에 감옥에 갇혀서 조선 문학을 썼어요. 최남선도 친일을 했지만 그가 개척해놓은 국사는 재산이에요. 책을 불태워 재산을 다 버릴 수는 없어요. 친일은 말로 했지 책에 친일 흔적은 없어요. 최남선의 책을 다 버리면 우리 국사는 알맹이가 없어요. 문학을 하는 사람은 친일파, 자유주의자, 공산주주의자의 저술도 광범위하게 읽어야 해요. 문학은 인간학입니다. 소설은 인간공부이기 때문에 다방면으로 공부해야 합니다. 푸시킨, 톨스토이만 읽지 말고 친일 문학도 어느 정도 용서해서 걸러내야 합니다.”

작금의 우리나라 현실에서 친일파니 종북좌파니 하면서 좌우 이념대립이 심하고 한쪽으로만 너무 치우쳐 다른 쪽을 지나치게 매도하는 현실을 감안할 때 공산주의자이지만 유채룡의 말은 상당히 울림이 있다. 임꺽정이라는 대하소설을 남기고 월북한 벽초 홍명희는 친일을 하지 않았으나 북한에서 박헌영과 더불어 부수상을 지냈다. 벽초는 소설로서 많은 후학들에게 영감을 주었지만 대한민국 입장에서 볼 때는 남침해 민족끼리 내전을 일으키고 무고한 많은 시민들을 죽인 책임자라 할 수 있다.

춘원의 기행문을 읽고 나서 나도 시간이 되면 자전거를 타고 경주 유적지를 돌아보리라 다짐해본다. 책의 향기에 파묻혀 나도 모르게 잠들었다. 일어나 서라벌 공기를 들이마시니 너무 깨끗하고 맑아 숙취가 전혀 없다. 대숲에서 새들이 재잘거리고 도자기를 굽는 가마터에 고양이가 혼자 어슬렁 거린다. 안채에서 혼자 자고 있는 선배를 깨워 보이차를 얻어 대구로 향했다.



김지혜 기자 hellowis@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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