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품이 넘치는 설백 자연으로 빚은 그릇

▲ 2009년 복원된 청송백자 전수관 전경.
▲ 2009년 복원된 청송백자 전수관 전경.
청송군은 전 세계가 생태학적, 역사적 또는 문학적으로 가치가 있다고 인정해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2017년), 국제슬로시티(2011년)로 지정됐다.

그 장대한 시간이 만들어낸 거대한 보물창고 청송(靑松)에서 500여 년을 민초들의 생활 속에 함께해 온 청송백자(靑松白磁)가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우아한 품격에 실용성을 더한 청송백자는 흙을 사용하는 타 지역 백자와는 달리 청송군에서만 채굴한 ‘도석(陶石)’이라는 흰 돌을 빻아 빚는 독특한 제작방식으로 인해 설백색을 띠며 그릇의 두께가 얇고 가벼운 것이 특징이다.

장인의 혼을 담아 빚어진 청송백자는 500년 역사의 숨결과 함께 절제된 선과 담백하고 고풍스러운 색으로 가장 한국적인 도자기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 조선후기에 제작된 이중투각향로.
▲ 조선후기에 제작된 이중투각향로.
▲ 조선후기에 제작된 청송백자 초문항아리
▲ 조선후기에 제작된 청송백자 초문항아리
◆500년 전통 맥이어 가

간략한 초문(草紋)이 있거나 문양이 없는 경우가 많은 청송백자는 표면이 다소 거칠면서도 반점이 섞인 설백색(雪白色)을 띠고 있다. 주로 사발, 접시, 주병이나 제기(祭器) 등 소형 그릇들이 생산돼 왔다.

특히 백자의 원료인 도석은 그 품질이 우수하기로 국내외적으로 정평이 나 있다. 1913년 조선 총독부 산하 중앙요업시험소가 전국에 산재한 도자 원료 실태조사를 진행하면서 가장 우선적으로 조사에 착수한 곳이 바로 청송 도석으로 알려져 있다.

청송백자는 그릇에 칠해진 유약도 주로 잿물을 사용하는 타 지역과는 달리 ‘회돌’과 ‘보래’라는 광물성 유약을 사용한다. 백자를 구웠던 가마도 경사가 40도에 달하는 사면(斜面)에 축조해 열효율을 극대화할 만큼 발달된 형태를 갖추고 있다.

청송백자는 조선후기 4대 지방요(地方窯)로 꼽히는 전통도자이다. 대표적인 생활자기로 1950년대까지 서민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산업화와 도시화에 따른 양은그릇 등 값싼 식기들에 밀려 1958년 마지막 가마의 불이 꺼진 이후 50여 년간 명맥이 끊어지는 아픔을 겪게 된다.

2009년 7월 청송군은 청송백자의 마지막 사기대장이었던 고만경 옹(1930~2018년)의 고증과 백자의 복원, 그리고 가마터 조사 등의 준비과정을 통해 청송백자 전수관을 개관하면서 가마터에 다시 불을 지펴 500년 전통의 청송백자 맥을 이어가고 있다.

▲ 가마에서 구워낸 청송백자 생활도자기들.
▲ 가마에서 구워낸 청송백자 생활도자기들.
◆ ‘느림의 미학’이 깃든 청송백자

청송백자는 16세기부터 현재까지 500여 년의 역사를 지닌 조선후기 대표적인 생활도자기다.

황해도 해주백자, 함경도 회령자기, 강원도 양구백자와 함께 조선시대 4대 지방요로 손꼽히는 전통공예품으로 경상도 지역에서는 문경사기와 양대 산맥을 이루며 활발하게 생산돼 왔다.

청송지역의 가마터 지표조사 결과 16세기부터는 백자 제작이 이루어진 것이 확인되고 있다.

1423~1432년에 기록된 ‘세종실록 지리지 경상도 안동대도호부 청송군조’에 청송군이 백토의 산지임을 기록하고 있어 16세기 이전에 이미 백자가 제작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청송지역에서 확인된 가마터는 총 48기다. 가마터는 청송 도석의 출토지인 법수광산을 중심으로 반경 10㎞ 이내에 위치한다. 백자 가마터의 운영 시기는 16~20세기로 폭넓은 편인데 주로 17세기와 20세기에 운영된 가마터가 많다.

청송백자는 질 좋은 도석을 바탕으로 1920~1930년대에는 일본 각지로도 활발하게 판매됐다. 특히 동경의 삼월상점(현재의 미스코시백화점)으로도 수출될 정도로 유명세를 떨쳤다.

이후 1958년을 끝으로 중단되기도 했던 청송백자는 마지막 사기대장 고만경 옹의 손에서 전통적인 제작방식에 따라 복원돼 과거의 영광이 다시 재현됐다.

장인의 혼과 느림의 미학이 깃든 청송백자는 대한민국 어느 지역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청송의 소중한 향토문화유산이다.

◆전통생활자기 산실 청송백자 전수관

주왕산 남녘, 해발 717m 무포산 아래 법수골에는 새하얀 도석으로 백자를 빚는 청송백자 전수관(관장 윤한성 수석전수자)이 있다.

백자 복원사업으로 500년 역사의 숨결을 간직한 청송백자 전수관은 청송백자의 전통공방(사기움), 전통 가마(사기굴), 주막 등을 옛 모습 그대로 재현해 놓은 곳이다.

움집형의 원형구조로 이루어진 전통공방은 원료 분쇄에서 성형과 유약작업까지 모든 공정이 사기움 안에서 이루어지는 청송지역만의 독특한 구조다.

도석에 의해 특화된 형태의 전통 가마와 가마에서 구워진 그릇을 서로 가져가기 위해 상인들이 며칠씩 묵으며 기다리던 주막은 번성하던 청송백자의 세월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사기움 건너 도석 광산의 채굴 흔적과 기계들은 옛 모습 그대로 있으며 광산 사무실은 옛 모습대로 복원돼 관광객들에게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 외국 관광객들이 청송백자 전수관을 찾아 자기 제작 체험을 하고 있다.
▲ 외국 관광객들이 청송백자 전수관을 찾아 자기 제작 체험을 하고 있다.
또 소멸위기에 처해있던 백자 제작기술 등을 청송백자 보유자인 고만경 옹을 중심으로 2007년부터 다시 재현사업을 추진해 왔다. 지금은 전수자들에 의해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

2009년 청송군향토문화유산(무형유산) 제1호로 지정된 고만경 옹은 청송사기의 제작기술 전승을 위해 사기 제작에서 가장 중요한 기술을 가진 사기대장이었다.

74년간 백자 인생의 외길을 걸어오며 마지막 투혼을 불태운 고만경 옹은 2018년 5월 향년 89세의 나이로 별세하면서 청송백자의 영원한 사기대장으로 모두의 기억 속에 남게 됐다.

▲ 청송백자 500년의 맥을 이어 자기를 빚는 생전의 사기대장 고만경 옹.
▲ 청송백자 500년의 맥을 이어 자기를 빚는 생전의 사기대장 고만경 옹.
◆청송백자가 완성되기까지

청송백자의 제작과정은 남다르다. 제작과정은 원료 준비단계와 성형단계, 그리고 소성단계 등 크게 3단계로 분류할 수 있다.

먼저 원료 준비단계는 도토채취 및 분쇄작업과 수비 작업, 질 건조와 질 밟기, 꼬막밀기로 나눠진다. 성형단계는 사발 짓기와 굽깎기·그림 넣기·유약처리·건조와 보관으로, 소성단계는 사발 쌓기와 소성·사발 따기로 구분된다.

도토채취 및 분쇄작업은 도자기 원료인 도석을 크고 무거운 대형 디딜방아를 이용해 빻는 작업이다.

수비 작업은 질 그러기라고도 한다. 빻은 도석가루를 다시 물에 풀어 앙금을 앉혀서 정제하는 작업이다. 질 건조와 질 밟기는 도토가 성형할 때까지 완전 건조한 상태로 보관하며 이는 도토성분의 변질을 막아 우수한 도자기를 생산키 위함이다.

수비 작업에서 가라앉은 앙금을 질이라 하며, 질은 밀가루와 비슷한 순백색이다. 질 밟기는 건조된 질을 성형작업에 용이하도록 질의 점토를 높이고 질 내부의 공기를 빼기 위한 작업이다.

질 밟기가 끝나면 2단계인 성형단계인데 첫 단계가 사발 짓기로 이 작업은 전통재래식 발 물레를 이용해 직접 그릇의 모양이 만들어지고 있다.

그릇이 만들어 지면 사기대장은 곧바로 굽깎기 작업에 돌입한다. 굽깎기는 만들어진 그릇의 굽을 만드는 작업이다. 적당하게 건조된 그릇을 물레 위에 얹어 놓고 굽 칼을 이용해 굽을 깎는다.

청송백자는 사기대장이 직접 굽깎기를 담당하는 특수성이 있다. 그 다음 작업이 그림 넣기 순서다. 건조된 그릇의 표면에 그림이나 글씨를 쓰는 작업이 마무리되면 유약처리를 하게 된다.

유약은 광물질을 사용하며 지역에서 산출되는 회돌과 보래를 빻아서 각각 2대8 비율로 섞어서 사용한다. 이후 그릇의 변화를 적게 하기 위해 완전히 건조시킨다.

건조된 그릇은 마지막 작업인 소성단계를 거친다. 소성을 위해 사기 굴에 그릇을 쌓는 작업과 도자기의 강도를 높이기 위한 사기 굴에 불을 지피고 굽는 소성이 완료되면 사발 따기로 모든 공정이 완료돼 유백색의 단아한 도자기가 완성된다.

▲ 청송백자 전수관 가마터에서 자기를 굽기 위해 불을 지피고 있다.
▲ 청송백자 전수관 가마터에서 자기를 굽기 위해 불을 지피고 있다.
◆청송백자 현재와 미래

청송백자는 지난 10여 년 동안 청송백자만이 지닌 본연의 전통적 가치회복과 실용도자기로서의 전통의 현대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결과 청송백자 원형질을 복원하는 성과를 일구어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은 조선후기 4대 지방요로서의 청송백자가 지닌 본연의 심미적 가치회복은 물론 발전을 위한 ‘조선 4대 지방요 공동학술연구’, ‘청송·양구백자 교류전’, ‘조선 4대 지방요 국제포럼 및 국제심포지엄’, ‘청송·양구백자 세계화 사업’ 등으로 전개됐다.

이와 함께 향후 조선 4대 지방요 중의 하나인 북한의 해주백자와 회령자기까지 연대한 전통문화를 매개로 한 남북 문화예술교류의 초석이 되고 있다.

최근 청송백자는 전통적 디자인을 기본으로 현대 실생활에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청송백자만의 제품개발과 실생활에 접목할 수 있는 스타일링 제안으로 전통생활도자기로서의 명품 브랜드라는 입지를 굳혀가고 있다.

▲ 현대식 디자인으로 제작된 청송백자 생활도자기.
▲ 현대식 디자인으로 제작된 청송백자 생활도자기.
▲ 현대식 디자인으로 제작된 청송백자 생활도자기.
▲ 현대식 디자인으로 제작된 청송백자 생활도자기.
2018 서울 리빙디자인페어에서는 1인 가구 싱글세대 비중이 높아짐에 따라 이들이 추구하는 독특한 라이프 스타일과 트렌드를 반영한 1인 반상기 세트를 한정 작품으로 선보여 큰 인기를 얻었다.

앞서 2017년 헝가리 스프링페스티벌 한국의 날 초청행사와 헝가리 한국문화원에서 열린 한국의 맛과 멋을 알리는 전시회에 청송백자가 초청돼 호평을 받기도 했다.

이를 바탕으로 유럽 등 해외 홍보마케팅에도 적극 나서고 있어 머지않아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명품도자기로 인정받는 청송백자로 발전해 나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특히 지난 1월 수공예로 특별이 제작된 청송백자 ‘달 항아리’가 공예미술계 최초로 현대홈쇼핑을 통해 런칭돼 역사적 예술적 가치를 대내외에 알리며 150점(점당 200만~300만 원)이 완판 되면서 ‘자연이 빚은 그릇’이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 지난 1월 공예미술계 최초로 현대홈쇼핑을 통해 런칭돼 150점을 완판한 청송백자 달항아리.
▲ 지난 1월 공예미술계 최초로 현대홈쇼핑을 통해 런칭돼 150점을 완판한 청송백자 달항아리.
생활자기는 말 그대로 생활음식을 담아내는 그릇이다. 따라서 청송백자가 단순한 전통 생활자기로서 뿐만 아니라 음식을 더욱 맛깔나게 하고, 눈으로 보는 즐거움과 입맛을 돋우는 데에도 제격인 생활자기로 더욱 발전해 나갈 것으로 기대해 본다.



임경성 기자 ds5ykc@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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