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세월을 젖소만을 바라보고 온 낙농인생 ||유가공품 생산으로 우유의 새로운 활로를 찾

▲ 김원태 대표가 젖소를 만지면서 건강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젖소와의 교감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한다.
▲ 김원태 대표가 젖소를 만지면서 건강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젖소와의 교감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한다.
예전에 우유만큼 귀한 음식은 드물었다. 쌀가루에 우유를 넣고 끓인 타락죽(駝酪粥)은 임금님 수라상에 올랐다. 조선시대에는 ‘타락색’이라는 관청까지 두고 궁궐에 우유를 공급했다.

‘타락색’에서 유래한 타락산(駝酪山)은 도성 안 동쪽에 있다고 동국여지승람에 나온다. 서울 창신동에 있는 낙산(124m)이 바로 그 곳이다.

이처럼 귀한 대접을 받던 우유가 외면을 받고 있어 농가는 울상이다. 출산율 저하에 따른 우유 소비가 계속 줄어들기 때문이다. 2005년 35.1㎏이던 1인당 연간 소비량이 2017년에는 33.1㎏으로 줄었다.

▲ 김원태 대표가 생후 100일 정도 된 송아지들에게 우유를 먹이고 있다.
▲ 김원태 대표가 생후 100일 정도 된 송아지들에게 우유를 먹이고 있다.
올해는 코로나19로 학교급식이 중단되면서 직격탄을 맞았다. 관계기관에서는 ‘우유마시는 날’을 지정하고 ‘우유 한잔 더 마시기 운동’을 전개하고, 농가는 가공과 체험을 통한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40년째 꿋꿋하게 젖소만을 바라보고 외길을 걸어가는 낙농가가 있다. 성주에서 ‘중목장’을 운영하는 김원태(69) 대표가 주인공이다. 김 대표는 70마리의 젖소를 사육하고 우유가공품을 만들어 연간 3억8천만여 원의 매출을 올린다.

◆40년 외골 인생

김 대표는 농촌에서 나고 자랐다. 앞으로도 농촌에서 살아가겠다는 농부다. 40년간 젖소만을 바라보고 왔다. 평생 축사를 떠나본 적이 없는 외골수다. 젖소는 곧 그의 인생이었다.

▲ 김원태 대표에게 젖소는 가족이고 친구다.
▲ 김원태 대표에게 젖소는 가족이고 친구다.
청년시절 목장에서 일한 것이 젖소와의 첫 만남이었다. 일은 힘들었지만 젖소를 돌보는 일이 즐거웠다. 자신의 목장을 가지겠다는 꿈을 항상 가슴 속에 품고 있었으나 자금이 없었다. 첫 시작이 젖소가 아닌 한우로 시작한 것도 자금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1975년 한우 사육을 시작했으나 쉬운 일이 아니었다. 송아지를 구입해 키우는 시간이 너무 길었고 사료 값이 상승하면서 어려움을 겪자 젖소로 전환했다. 1980년 2월 젖소 6마리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낙농업을 시작했다. 일은 힘들고 한시도 자리를 비울 수가 없었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일했다.

▲ 직접 가공한 요거트의 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 직접 가공한 요거트의 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많은 수익은 아니지만 15일마다 우유 대금을 손에 쥘 때는 힘이 저절로 났다. 한우와 달리 자금회전이 빠른 것이 농장 운영에 큰 도움이 됐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이제는 70마리로 늘어났다. 규모를 더 확장할 기회는 많았지만 규모보다는 내실화에 우선했다. 다른 목장과 비교할 때 유사비(우유 생산에 필요한 사료비 비율)가 높고 경제 수명이 늘어난 것은 이런 노력의 결과와 무관하지 않다.

◆경영컨설팅은 미래에 대한 투자

김 대표의 목장 운영에는 눈에 띄는 색다른 방식이 있다. 경영컨설팅이다. 2015년 12월 첫 컨설팅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55회를 진행했다. 매월 한 차례씩 정기적으로 진행한다. 앞으로도 계속될 진행형이다.

▲ 가공한 요거트를 작은 병에 나눠 담고 있는 모습. 수작업으로 진행해 일손이 많이 든다.
▲ 가공한 요거트를 작은 병에 나눠 담고 있는 모습. 수작업으로 진행해 일손이 많이 든다.
시작은 있었으나 끝은 없다. 1회에 60만 원이란 만만찮은 비용을 지불한다. 주위에서는 매월 컨설팅을 받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개의치 않는다. 외관상 방문 컨설팅은 월 1회지만 전화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이메일을 통해서도 진행한다. 경영비 절감과 유사비 향상, 질병 관리 등 목장 운영 전반에 대한 컨설팅을 받는다.

▲ 김원태 대표가 젖소들에게 건초를 주고 있는 모습.
▲ 김원태 대표가 젖소들에게 건초를 주고 있는 모습.
최근에는 사회 변화에 따른 농식품 소비 트렌드와 인적 네트워크, 인문학까지 영역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목장 운영은 종합경영이기 때문에 먼 장래를 생각하면 반드시 필요한 투자이기 때문이다.

다른 농장이나 외국 운영 사례를 살펴보는 것도 빠지지 않는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유사비가 30%로 높고, 도태산차(젖소를 도태시킬 때까지 송아지를 낳는 회수)도 3.8산으로 높다. 일반농가의 유사비가 50% 정도이고 도태산차가 2.9산인 점과 비교하면 차이가 크다.

▲ 김원태 대표가 젖소들에게 건초를 공급하면서 철제 칸막이를 두드린다.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멀리 있던 젖소들이 몰려온다.
▲ 김원태 대표가 젖소들에게 건초를 공급하면서 철제 칸막이를 두드린다.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멀리 있던 젖소들이 몰려온다.
통상적으로 도태산차가 1산이 늘어나면 우유 추가 생산량에 대한 수입이 340만 원가량 늘어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같은 결과를 보면 컨설팅은 낭비가 아닌 투자라는 것이 증명되는 셈이다.

◆건강한 우유가 답

“목장의 최고 과제는 좋은 우유입니다.”

좋은 우유를 마셔야 사람도 건강해 진다는 것이 김 대표의 지론이다. 좋은 우유는 어떤 우유인가 하는 질문에 “건강한 소에서 방금 착유한 우유다”고 대답했다. 현재 우유 유통시스템에 따라 목장에서는 우유를 직접 판매를 하지 않기 때문에 결국은 건강한 소가 답이다.

▲ 배합사료를 먹고 있는 모습.
▲ 배합사료를 먹고 있는 모습.
이에 따라 소의 건강을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지만 가장 중요시 하는 것은 관찰이다. 새벽 착유를 시작하면서부터 하루 종일 소의 상태를 살핀다. 착유량과 배변 상태를 보고 건강상태를 판단한다. 착유량과 배변은 건강과 직결돼 있다. 소의 움직임과 쉬는 모습도 중요하다. 편안한 자세로 앉아 되새김질을 한다는 것은 건강하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 목장 주변을 아름답게 가꾼 모습. 2013년 깨끗한 목장가꾸기운동에서 장려상을 받았다.
▲ 목장 주변을 아름답게 가꾼 모습. 2013년 깨끗한 목장가꾸기운동에서 장려상을 받았다.
또 다른 것은 사료다. 균형 잡힌 사료를 통해 건강을 유지시키고 좋은 우유를 생산하게 하는 것이다. ‘고영양 사료를 많이 급여하면 일시적으로 착유량을 늘일 수 있지만 길게 보면 결코 바람직한 사양관리 방식이 아니다’는 것이 김 대표의 지론이다. 균형 잡힌 사료는 경영비 절감과 경제 수명도 연장된다. 일거양득이다.

◆부자간의 빅딜

김 대표가 독학으로 축산을 공부하고 몸으로 기술을 익혔다면 아들(36·영탁)은 체계적으로 축산을 공부했다. 혼자 힘으로 배우는 것의 어려움을 알기에 체계적인 공부를 위해 농수산대학 진학을 권했다.

▲ 김영보 경북농업기술원 강소농전문위원(왼편)이 중목장에서 처리한 폐수의 정화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 김영보 경북농업기술원 강소농전문위원(왼편)이 중목장에서 처리한 폐수의 정화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아들도 흔쾌히 받아 들였다. 대학에서는 식량작물을 전공하면서 부전공으로 축산을 공부하고, 실습도 목장에서 했다. 농대를 졸업하면 술술 풀릴 줄만 알았으나 현실은 달랐다. 2009년에 합류한 아들은 기술과 열정을 가졌지만 중노동과 휴일도 없이 이어지는 목장 일에 지쳐갔다.

▲ 김원태 대표가 완전혼합사료(TMR) 배합기에 농후사료를 넣고 있다.
▲ 김원태 대표가 완전혼합사료(TMR) 배합기에 농후사료를 넣고 있다.
부자간의 생각 차이도 컸다. 현재 시설과 규모를 유지하면서 내실을 다지자는 아버지와 낡은 시설과 장비를 개선해 노동력을 줄이자는 아들의 생각에는 큰 간극이 있었다. 이들 부자의 생각은 대척점에 서 있었다. 그 간극을 좁히는데 3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긴 줄다리기 끝에 아버지가 아들의 의견을 수용했다. 농지를 매각해 자동급이기와 CC-TV, 건강체크기, 완전혼합사료(TMR) 배합기, 자동정화시설 등을 도입했다. 대신에 아버지가 원하던 유가공도 함께 하기로 했다. 부자간에 빅딜은 성사됐고, 서로 만족하는 결과를 얻었다.

▲ 젖소들의 사료급여와 착유량, 건강상태를 종합적으로 관리하는 전산시스템에 대해 설명을 하는 모습.
▲ 젖소들의 사료급여와 착유량, 건강상태를 종합적으로 관리하는 전산시스템에 대해 설명을 하는 모습.
한 달에 대략 250ℓ의 우유를 가공해 요거트와 치즈를 만든다. 우유 소비 감소에 대응하고 부가가치도 높인다. 아직은 소량이지만 입소문을 타면서 판매량이 늘어나고 있다.

◆낙농은 중노동, 이젠 옛말

낙농은 중노동이라고 말한다. 예전에는 휴일도 없이 일했다. 부모님이 돌아가셔도 착유는 해야 한다고 했다. 유교적 관점에서 보면 상주가 빈소를 비우는 것은 큰 불효일 것이다. 김 대표도 1988년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똑같은 일을 겪었다.

▲ 젖소들에게 공급하는 건초 모습.
▲ 젖소들에게 공급하는 건초 모습.
지금은 시설 자동화가 이루어지면서 노동력도 크게 줄어들었다. 사료는 자동으로 공급되고 개체별로 양까지 조절한다. 착유는 물론 건강상태나 발정 여부도 자동으로 체크한다. 자동화가 진행되는 만큼 여유는 늘어난다. 집안일이나 여행으로 목장을 비울 때에는 낙농조합에서 ‘헬퍼(도우미)’를 보내준다. 휴일 없는 직업이라는 말은 옛말처럼 되어가고 있다. 김 대표도 주말에는 아들과 교대로 일한다. 휴일이 있는 목장을 실천한다.

◆ 가족 협업으로 6차 산업화

‘가족협업 목장을 만들고 싶다’는 것이 김 대표의 꿈이다. 현재 목장운영에 참여하고 있는 아들과 조경 관련 일을 하고 있는 딸을 합류시켜 함께 일하는 것이다. 그때가 되면 자신은 목장 경영에서 손을 뗄 계획이다.

아들은 목장경영, 딸은 가공과 체험을 하는 것이다. 목장 운영의 전문화와 가공과 체험을 통한 6차 산업화로 나가는 계획이다. 이 같은 생각에는 우유는 오리진(Origin·건강의 근원)이라는 점과 목장에는 무궁무진한 스토리가 담겨져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바로 실행될 계획은 아니지만 지금부터 준비하면 아들, 딸 모두가 억대 연봉을 보장받는 직장이 될 것이란 확신에 차 있는 모습이 당당해 보였다.



글·사진 홍상철 대구일보 객원편집위원

경북도농업기술원 강소농 민간전문위원



김종엽 기자 kimjy@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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