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시욱 에녹원장
▲ 김시욱 에녹원장
김시욱

에녹원장

일상이 지치기 일쑤다. 계속되는 코로나 확산과 인천국제 공항 정규직화 문제, 검찰개혁을 명분으로 한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의 대립 그 어느 하나 시야가 보이지 않는다. 언론에서는 연일 부동산 문제와 청와대 참모 및 정치권 인사들의 다주택 소유를 조명하고 있다. 30℃를 웃도는 무더위 속, 숨 막히는 마스크를 쓴 국민들의 모습이 지쳐가는 현실의 대한민국이 아닐까 싶다. 그 어느 하나 속 시원하게 해결되는 게 없는 듯하다.

‘정치란 무엇인가?’라는 원론적 의문이 일어난다. 대학시절 정치학 개론서의 좁은 의미와 넓은 의미의 정치로 구분하는 화석화된 지식이 아니다. 국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목표로 한 상호간의 이해를 조정하고 사회 질서를 바로잡는 활동이라는 말도 너무 추상적이다. 국가라는 공동체 속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대립은 필연적 산물이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는 홉스의 말에서 나타나듯 인간은 ‘자연 상태’ 속에서 생존하려는 ‘자기보존욕구’만 남게 된다. 전쟁을 자연 상태의 가장 대표적인 모습으로 본 홉스의 관점에서 인간은 현실이라는 밀림 속에서 싸우고 있는 것이다. 오직 ‘살아야 한다’는 명제 속에서 타인이 아닌 나 자신을 우선시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전쟁상태를 극복하기 위해 개인 상호간의 계약에 의해 절대적인 주권을 갖는 리바이어던(국가)이 성립한 것이다.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냉혹한 세계에서 약자를 보호하고 평등을 기초로 한 이해관계를 도모하고자 국가에게 주권을 위임한 것이다. 그것은 곧 정치라는 행위를 통해 실현돼야 하는 것임은 분명하다. 힘센 강자를 위한 것이 아닌 약자의 보호와 인간다운 삶을 위한 보호막이 국가이어야 함은 마땅하다.

최근 일련의 시사적 문제에 접할 때면 국가라는 의미가 어느새 사라진 듯하다. 정치는 오직 정권획득을 목적으로 하는 여야와 당리당략적 접근만이 난무하다. ‘국민의 뜻’임을 내세우지만 실상 그 국민은 가상의 국민이자 팬덤화 된 극단적 지지층일 뿐이다. 국가의 존재와 의미를 부정하는 소수 지지계층의 계급화 된 정치체제로의 전환처럼 보인다. 각자의 생각이 우선되며 기존의 법제도나 정치제도를 부정하는 ‘국민 감정법’이 진리로서 받아들이는 현실이다. 총 인구 5천만 명을 넘어선 현재, 수 천 명에도 이르지 못하는 설문 대상자를 기준으로 매주 발표되는 여론조사는 국가 중요정책 및 당대표, 그리고 대통령 후보자마저 쥐락펴락하는 것 같다. 청와대 국민 청원게시판의 현주소 역시 다르지 않다. ‘국민이 물으면 정부가 답한다’라는 슬로건아래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미국식 청원 시스템 도입으로 시작된 처음의 모습은 나쁘지 않았다. 대의제 민주주의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간다는 취지도 좋았다. 하지만 최근 국민과의 소통 전략은 오히려 제왕적 대통령제 혹은 행정부의 우위적 권력 집중을 도모하는 고도의 전략의 한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사소한 개인적 사건으로부터 사법부의 재판결과 그리고 독립적 입법기관인 국회의원의 처벌까지도 청원에 올라오고 있다. 한 달 동안 20만 명 이상의 동의가 있을 경우 정부관계장의 답변이 있다는 조건을 두고 있지만 ‘참여민주주의의 실현의 장’이란 거창한 명분은 어느새 진영논리와 삼권분립의 기본적 틀을 깬 역기능으로 작용하고 있다. 마치 제왕적 대통령제 아래 청와대와 행정부에게 모든 판단을 요구하는 현상으로 나아가고 있다.

분명 무엇이 잘못인가 돌이켜 보아야 할 시점임이 분명하다. 국가란 단순히 행정부만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의 삼권분립은 국민의 주권을 위임받은 국가에 대한 명령이자 국민을 위한 정치의 필수불가결한 제도인 것이다. 그럼에도 사법부에 대한 불신과 입법부인 국회 무용론이 대세처럼 흘러가고 있다. 개별 사건마다 판사의 개인 정보가 노출되고 비난의 여론몰이가 반복된다. 적폐청산의 일환으로 들고 있는 검찰 개혁과 사법부 개혁이 오히려 법치주의 자체의 존립과 가치를 부정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흐름들이 ‘국민 감정법’으로 왜곡되고 있지는 않은지 고민해야 하는 이유이다.

홉스의 삶은 태어나면서부터 혼란과 혁명으로 얼룩져 있었다고 한다. 그의 눈에 비친 세상은 강자의 위선과 조작이 판치는 정글과 같은 곳이었고 도덕 윤리는 허울에 지나지 않았다. 살아남으려는 욕구가 그에게 국가의 필요성을 역설하게 한 것이리라. 현실의 불확실성 속에서 분노와 사회적 박탈감을 느끼는 우리에게 더더욱 필요한 것은 국가의 중요성과 준법정신임을 명심해야 한다.



김지혜 기자 hellowis@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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