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천영애의 영화산책…전수일 감독 ‘히말라야, 바람이 머무는 곳’

가끔 생을 탕진하고 싶다면 히말라야로 가라

시인 천영애
열심히 사는 것도 좋겠지만 가끔은 생을 탕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이 영화를 보면서 다음 생에는 돈 많은 부모를 만나고 건강한 남자로 태어나 부모의 돈을 야금야금 탕진하면서, 더불어 내 생도 야금야금 탕진하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얼마나 어이없는 생각인가. 정작 영화는 열심히 직장 생활을 하다가 퇴출당한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도시에서 열심히 직장 생활을 하다가 퇴출당한 남자의 심정은 잘 모르겠다. 그 직장에 전 생애를 걸었을까, 그런 생각은 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하고 저녁이면 퇴근하는 그 생활에 전 생애를 걸었으니 절망도 컸으리라. 그런 일에 전 생애를 걸지 않고 살아 온 나로서는 그 절망의 크기를 가늠하기 힘들다. 그래서 그런 생각을 했다. 돈 많은 부모의 돈을 쓸 수 있고, 건강한 몸이 있으면 천천히 생을 탕진하는 것도 좋지 않겠는가라고.

열심히! 라는 말에 중독되어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가끔 생각한다. 열심히 살지 않고는 목숨을 부지할 별다른 도리도 없지만 그래도 우리는 마치 사회 전체가 이 ‘열심히’의 마법에 빠져 있었던 것은 아닐까. 열심히 살지 않는 것을 죄악시하는 이 분위기에서라면 휴식이라는 말은 낯설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또 휴식이 필요하다.

직장에서 퇴출당한 남자는 히말라야로 간다. 왜 뜬금없이 히말라야인가? 라고 묻지 말자. 그냥 이 도시에서 나가고 싶었을 것이다. 히말라야에서 남자는 극한의 상황에서 병이 들어 물러난다. 우리는 도시에서 지금까지 극한의 삶을 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돌이켜 보는 대목이다. 먹고 살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가는 그 상황이 어쩌면 히말라야에서 쓰러지는 그것과 묘하게 오버랩된다.

그 극한의 상황에서 물러난 남자는 어느 낯선 가정집에서 휴식을 취하며 천천히 안정을 찾아간다. 저 난데없는 가정은 또 뭔가라고 생각했지만 인간은 어차피 익숙한 것, 즉 여자가 있고 아이가 있고 늙은이가 있는 그런 가정에서 편할 수밖에 없다. 원초적인 편안함이라고 할까. 히말라야까지 가서 가정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안정을 찾아가는 상황이 좀 우습긴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또 어디서 안정을 찾겠는가.

때때로 인간은 자신을 완전히 비워야 살 수 있을 때가 있다. 꽉 채워 놓으면 좋을 것 같지만 채움에 견디지 못하고 질식당할 상황이 있다. 그럴 때는 비워야 한다. 사람이든 직장이든 돈이든, 완전히 비우고 자기 자신만 오롯이 남을 때 다시 살아갈 힘이 충전되는 것이다. 남자는 히말라야에서 자신을 완전히 버리고서야 다시 살아난다. 비어 있으니 다시 채우는 것도 쉬우리라.

쉰이 넘고 보니 사는 게 때로는 참 시시해질 때가 있다. 아무리 발버둥 쳐봐야 내 의지대로 되는 것이 없다는 절망감이 몰고 오는 시시함이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다. 기왕 그럴 거라면 태어날 때부터 천천히 생을 탕진이나 해볼까. 영화를 보면서 자꾸 그런 생각을 했다.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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