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희

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

전 세계를 강타한 바이러스가 좀체 종식되지 않고 있다. 지역 발생이 좀 뜸하다 싶으면 다른 곳에서 불쑥 나타나 신경을 곤두서게 만드니, 정말 이 코로나19가 끝은 있을 것인가. 음압 병동에 입원해 있는 환자들을 보러 들어갈 때면 내내 그런 생각이 머리에서 맴돈다. 사회적 동물이라는 사람은 서로 만나서 교류해가며 살아야 하는데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해야 하는 것이 당면한 현실이다. 다들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나름으로 적응하려 노력하며 하루하루를 그런대로 버텨내고 있다. 이 바이러스와의 대전이 언제 끝날지 모르지만, 우리는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생활의 활력소, 웃음이 그리워진다.

상상도 못했던 세상을 맞이했지만, 그 나름으로 적응해가며 급변하고 있는 현실에서도 실망하지 않고 낙천적으로 생활하기로 마음먹었다는 지인, 그가 보내준 긴 문자가 힘겨운 날에 작은 위안이 된다.

미국에서 있었던 이야기라고 한다. 40년간 결혼생활을 한 부부가 있었는데 부인은 40년이 지난 지금 남편이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고 싶었다. 그래서 남편에게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한 번 묘사해 보라고 졸랐다. 남편은 그런 부인을 한참이나 바라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ABCDEFGH & IJK” “아니 그게 도대체 무슨 뜻이에요?” 부인이 물었다. 남편은 Adorable(사랑스럽고) Beautiful(아름다우며) Charming(매력적이고) Delightful(애교 있으며) Elegant(우아하고) Fashionable(멋있으며) Gorgeous(대단하고) Happy(함께 있으면 행복하다)라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부인은 남편의 사랑을 새롭게 확인한 것 같아서 무척 기뻤다. 그러다가 마지막에 있는 IJK 에 대해서는 아무 설명도 없는 것을 알고 그건 또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남편은 슬쩍 웃음을 띠더니 “I'm Just Kidding!”(나 정말은 농담한 거야!) 라고 말했다. 그러자 부인의 눈꼬리가 올라가는가 싶더니 입에서 느닷없는 한국말이 튀어나왔다.

“가, 나, 다, 라, 마, 바” 남편이 뜻을 묻자 "(가)엾은 (남)편 (돌)았네. (라)면이라도 얻어먹으려면 (말)조심해요. (바)보 같으니라고!”

우리가 어떻게든 이 시기를 살아내기 위해서는 나름으로 포스트 코로나를 잘 대비해야 하는데, 아직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어찌하면 잘 대응할지에 대해 판단이 서지 않고 자료도 미흡한 것이 현실이다. 학생들은 온라인 강의를 병행해서 수업을 듣고, 직장인들도 아프면 집에서 쉬고 또 더러는 재택근무를 해야 하기도 한다. 물건을 사는 것도 온라인을 통한 쇼핑을 즐기는 것이 늘어나는 요즈음, 포스트 코로나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스스로 잘해야 하지 않을까.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세상에서 사람과 사람이 자주 대면하지 않는 세상이 돼가다 보니 요즘 부쩍 SNS를 통한 소통이 늘어간다. 그중에는 하루의 피로를 날려주는 상큼한 웃음을 주는 것도 있다. 또 그동안 알지 못했던 세상의 소식을 전하는 이는 더없이 반갑다.

며칠 전 타계한 작곡가, 엔니오 모리꼬네의 이야기가 잔잔한 감동을 일게 한다. 지난 5일 향년 92세로 그가 세상을 떠났다. 최근 낙상 사고로 골절상을 입고 로마의 한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 오다 숨을 거둔 그는 1928년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500여 편이 넘은 영화 음악을 작곡했다. ‘황야의 무법자’ ‘시네마 천국’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등의 주제곡을 만든 모리꼬네, 그는 영화 음악의 거장으로 전 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2007년 제79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야 평생공로상을 받았고, 2016년 제88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아카데미 음악상을 받았다. 눈길을 끄는 것은 바로 그의 부고였다. ‘나, 엔니오 모리꼬네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나의 부고를 늘 가깝게 지냈던 친구들과 한동안 만나지 못했던 모든 이들에게 전합니다. 내가 이런 식으로 작별 인사를 하는 것은 내 장례식을 가족장으로 치르기로 했기 때문입니다.//…중략…// 마지막으로 그러나 누구보다 소중한 아내 마리아에게, 지금까지 우리 부부를 하나로 묶어주었으나 이제는 포기해야만 하는 특별한 사랑을 다시 전합니다. 당신에 대한 작별 인사가 가장 마음이 아픕니다.’

안타깝지 않은 죽음이 어디 있으랴. 아무리 명예와 장수를 누렸다고 해도 죽음은 언제나 슬프고 힘들 터이다. 모리꼬네는 음악을 “삶이란 감옥에 갇혀 힘들어하는 모든 사람을 위해 건네는 위로 주 한잔 같은 것”이라고 하지 않던가. 날마다 나름의 위로 주를 찾아 마시며 담담하게 너그러운 마음으로 하루를 살아야 하지 않으랴. 주변 사람을 늘 칭찬해 가면서.



김지혜 기자 hellowis@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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