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적이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극단적 선택에 전 국민이 무거운 마음으로 주말을 보냈다. 안타까운 사태지만 모두 냉정해져야 한다. 왜 이런 일이 생겼나 돌아봐야 한다. 더 이상 되풀이 되면 안되기 때문이다.

그는 명망있는 인권 변호사였다. 참여연대 설립을 주도하는 등 한국 시민운동을 궤도에 올렸다. 현직 서울시장인 동시에 유력 대선 주자인 그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사실에 모두 놀랐다. 곧 이어 그 선택의 이유에 물음표가 달렸다.

그는 지난 2017년부터 비서실 여직원을 성추행한 혐의로 지난 8일 경찰에 고소됐다. 극단적 선택을 하기 하루 전이다.

---‘박 전 시장 사건’ 진실규명 요구 목소리

박 전 시장이 사망함에 따라 고소 사건은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될 예정이다. 사법 절차로 진상을 규명할 가능성은 일단 사라졌다. 하지만 일부 정치권과 보수진영을 중심으로 진상규명 요구가 이어지는 상황이다.

전 여비서의 고소만으로 성추행 행위가 있었는지 여부를 단정지을 수 없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박 전 시장이 고소당한 직후 “모든 분에게 죄송하다”는 글을 남긴 뒤 극단적 선택을 함으로써 연관관계가 있을 것이라는 심증은 굳어질 수밖에 없다.

박 전 시장이 죽음에 이르게 된 원인은 국민적 관심사다. 대통령 후보로까지 거론된 공인이기 때문이다.

현 단계에서는 경찰이 고소장을 공개할 수도 없다. 다만 법조계 일부에서는 지금까지 이야기되고 있는 고소 증거들을 조목조목 모아 시민·사회단체 등 제3자가 고발을 하면 새로운 수사를 할 수도 있다고 한다.

어떤 방식으로든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서는 전 여비서의 동의가 필수적이다. 문제를 제기한 당사자가 자신의 피해와 국민적 의혹을 끝까지 풀려고 할 것이냐, 아니면 박 전 시장의 극단적 선택 이후 심적 부담 때문에 마음을 바꿀 것이냐에 달린 것으로 보인다. 당사자가 마음을 추스를 때까지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사건 발생과 장례 등의 과정에서 분열 양상을 보이는 여론도 문제다. 자칫하면 ‘조국 사태’에서 경험한 국론 양분 사태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 네티즌들이 성추행을 당했다고 고소한 사람을 찾아내겠다고 나선 것은 정말 어이없다. 박 전 시장의 극단적 선택은 고소인도 전혀 예상 못한 난감한 일일 것이다. 미투 사건에서 어렵게 행동에 나선 피해자들이 신상털기 등으로 2차 피해를 입어서는 결코 안된다. 치유하기 힘든 상처를 입은 피해자들을 절망의 심연으로 몰아 넣지 말아야 한다.

정의당 한 국회의원은 피해 여성에게 “당신이 혼자가 아님을 알았으면 좋겠다”는 격려의 글을 남겼다는 이유로 악성 댓글 공격을 받았다. “지금은 고인을 애도하는 것이 먼저”라는 것이 공격의 취지였다고 한다. 그러나 고인을 애도하는 것에 우선해 피해를 주장하는 여성을 보호하고 위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서울시가 장례를 ‘서울시장(葬)‘으로 치르는 것도 논란에 휩싸였다. 애도와는 별개의 문제다.

지난 10일 청와대 국민청원에 ‘박 전 시장 5일장, 서울특별시장으로 하는 것에 반대한다’는 청원이 올라왔다. 글을 올린 사람은 “성추행 의혹으로 자살에 이른 유력 정치인의 화려한 5일장을 국민이 지켜봐야 하나요.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은 건가요. 조용히 가족장으로 치르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라고 주장했다. 게시 이틀만인 12일 현재 ‘동의한다’는 버튼을 누른 사람이 50만 명을 훌쩍 넘어섰다.

---선출직 잇단 추문…성인지 감수성 바닥

논란은 충분히 예견할 수 있는 일이었다. 논란을 불러일으킨 자체가 문제다. 장례를 ‘서울시장’으로 결정한 것은 사려깊지 못했다.

한 사람의 마지막 가는 길을 앞에 두고 여론이 갈라지는 것은 정말 안타깝다. 그러나 장례가 끝나면 사실관계는 밝혀야 한다는 것이 다수 국민의 뜻일 것이다. 철저히 팩트에 바탕을 두고 풀어 나가면 된다.

최근 몇년 새 여권 시도지사 사이에서 잇따라 터져나오는 성추문은 우리사회의 성인지 감수성이 여전히 바닥권이라는 사실의 한 단면이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말은 하기조차 민망하다. 무엇이 문제인지 원점에서 돌아봐야 한다.

지국현 논설실장



지국현 기자 jkh8760@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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