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진

수성구립용학도서관 관장

‘그 때 그 시절’

코로나19 사태로 문을 닫은 채 대출서비스와 온라인 프로그램을 제공했던 용학도서관이 지난달 사회적 거리두기 방침을 준수한 채 부분적으로 도서관을 개방하면서 로비에서 이용자들에게 제공하고 있는 향토자료 전시회의 명칭이다. 이용자들이 도서관에 들어오면서 가장 먼저 접하는 공간에 향토자료를 전시한 이유는 코로나19로 불안해진 지역주민들이 심리적 안정을 찾았으면 해서다. 이와 함께 향토자료가 갖는 특성이 지역공동체 강화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감회를 소개하자면 2018년 말 마련한 향토자료 전시회에서 감동적인 장면을 목격했다. 그 해 향토자료 수집사업의 성과물인 사진과 구술채록집 등으로 ‘도서관, 우리 마을의 기억을 담다’라는 제목의 전시회를 열었다. 본인이 간직하고 있던 1960년대 초반 흑백사진 여러 장을 제공하고, 수성못과 주변 마을의 기억을 더듬어 구술채록에도 참여한 김수자씨가 옛 친구 손정미씨와 함께 어느 날 도서관을 찾았다.

두 분은 김씨가 향토자료로 제공한 빛바랜 흑백사진의 주인공들이었다. 이날 두 분은 여중생 시절 수성못에 소풍을 갔다가 교복 차림으로 다정하게 찍은 흑백사진을 배경 삼아 60여년 만에 기념사진을 다시 촬영했다.

용학도서관이 수성못 관련 향토자료로 수집한 흑백사진은 1967년 앞산으로 이전하기 전 수성못 주변에 있던 충혼탑과 함께 1960년 총공사비 1억2천800만 원을 들여 건립한 수성관광호텔의 옛 모습 등이 있다. 또한 눈 내린 수성못의 고즈넉한 풍경과 눈사람을 만들어 호들갑을 떠는 여고생들의 모습, 1960년대 중반 꽁꽁 언 수성못에서 빙상대회가 열리고 있는 장면도 있다. 빙상대회와 관련해 구술해준 신동균씨는 “광복이 되고나서 수성못에서 스케이트 대회도 열렸다. 시내 영선못의 얼음이 시원찮으면, 수성못으로 와서 스케이트 대회를 열고 그랬다”고 회상했다. 일제강점기 ㄱ자 건물로 건축됐던 ‘녹수장’이 대구의 명소 ‘호반레스토랑’으로 변해가는 과정도 향토자료에 등장한다. 녹수장이 친구집이어서 아름다운 정원에서 숨바꼭질하던 김수자씨의 구술도 기록으로 남아 있다.

향토자료는 말 그대로 향토(鄕土)와 관련된 각종 정보자료를 뜻한다. 주제는 해당 지역의 역사·문화·사회·경제·인물 등 망라적이며, 형태별로는 책·사진·영상 등 아날로그와 디지털매체를 아우른다. 향토는 자신이 태어난 곳, 조상들이 생활한 곳, 소년시절을 보낸 곳 등 생활공동체로서의 의식을 갖는 지역사회다. 그 지역적 범위는 반드시 고정돼 있는 것이 아니다. 마을이나 읍·면·동 단위가 될 수도 있고, 기초자치단체 또는 광역자치단체 등을 가리키는 경우도 있다. 향토가 사람들의 인격 형성에 미치는 영향력은 매우 크기 때문에 세계 각국에서 국민교육의 기반으로 향토에 입각한 교육에 주력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향토자료는 지역정체성을 정립하는 기초자료란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지역공동체를 복원하고 강화하는데 필수적인 지적문화 정보자료다. 지역주민으로서는 향토자료를 통해 지역문화를 향유하고, 자긍심을 고취하며, 애향심을 갖게 된다. 이 때문에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공공도서관은 향토자료를 수집하고, 기록하고, 보존하고, 공유하고, 활용하는데 애쓰고 있다. 하루하루 사라져 가는 향토의 각종 정보자료를 수집해 기록함으로써 지역의 지적문화유산을 계승하자는 것이다.

향토자료를 전담하는 기관도 적지 않다. 충북의 옥산향토자료전시관과 증평향토자료전시관, 경남의 창원향토자료전시관, 경기의 부천향토문화관, 부천향토역사관, 용인향토사료관 등이 운영되고 있다. 민속자료까지 덧붙여 챙기는 곳도 있다. 충북의 보은향토민속자료전시관, 진천향토민속자료전시관, 영동향토민속자료전시관, 음성향토민속자료전시관, 괴산향토민속자료전시관 등이 그 곳이다. 이같은 현상은 지방자치시대가 본격화되면서 향토문화를 지방자치의 기반으로 삼아야 한다는 시각이 확산된 것으로 풀이된다.

향토자료를 활용해 지역 콘텐츠로 만들어 아날로그 기록물인 책을 발간하고, 이를 디지털 아카이빙(archiving)하는 것이 추세다. 수성문화원은 향토문화연구소를 운영하면서 ‘대구의 뿌리, 수성’이란 제목의 단행본을 펴낸 것을 비롯해 향토사료집을 잇따라 펴내고 있다. 달성문화재단도 수년째 ‘대구의 뿌리, 달성 산책’이란 제목으로 기획시리즈 20여 권을 간행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서울시 중구문화원이 향토사자료집 시리즈를 발간하면서 밝힌 취지를 소개한다.

“향토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건을 재조명하고, 향토 출신 인물의 발자취를 더듬어 가면서 지역주민의 참다운 일체감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김지혜 기자 hellowis@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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