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일반

촉수어 고백/ 양시연  



촉수어, 촉수어란 그 말 처음 듣는 순간/ 인터넷 검색 창을 두들겨도 소용없고/ 퇴근길 발길들마저 고기 떼로 보이네// 손으로 보고 듣고, 손으로 말을 하는/ 막냇동생 그 또래 손말 하는 농맹인 현 씨/ 삼십년 농인이었는데 이제는 눈조차 멀어// 그래, 이쯤은 돼야 사랑이라 할 수 있겠네/ 눈멀기 전 눈 맞췄던 그 이름 뱉지 못해/ 가슴 속 사라진 사랑 가슴에 붙여 사네// 누군들 이름 하나 숨겨놓지 않았을까/ 마침내 내 손바닥에 그려내는 첫사랑/ 오늘은 찬찬히 꺼내 촉수어로 고백하네

「정음시조2」 (작가, 2020)

양시연 시인은 제주 출신으로 2019년 ‘문학청춘’ 신인상 시조 당선으로 등단했다. 여성상담 일을 하면서 무엇인가 자꾸 말하려는 이를 만났는데 도저히 그 말과 몸짓을 알아듣지를 못해 수어(手語) 공부를 하면서 손말의 뜻을 알아낸 경험을 가진 시인이다. 특히 그는 작품에서 수어를 손말, 이라고 처음으로 썼다. 굉장히 정감이 가는 새롭게 창조된 어휘다. 그래서 스스로 손말을 두고 하늘의 언어, 라고 명명했다.

‘촉수어 고백’은 최근 정음시조문학상 운영위원회에서 발간한 「정음시조2」에 수록된 작품이다. 수어에서 발전한 말이 촉수어다. 그래서 화자는 촉수어란 그 말을 처음 듣는 순간 인터넷 검색 창을 두들겨도 소용없고 퇴근길 발길들마저 고기 떼로 보일 정도였다고 노래한다. 동음이어를 연상케 하기 때문에 퇴근길 발길들이 고기 떼로 보일만하다.

손으로 보고 듣고, 손으로 말을 하는 막냇동생 그 또래쯤 되는 손말 하는 농맹인 현씨는 삼십년 농인이었는데 이제는 눈조차 멀어버렸다. 삼십년 동안 말을 못하면서 살아온 것도 힘들었는데 눈마저 보이지 않으니 얼마나 답답한 일일까? 그래서 그래 이쯤은 돼야 사랑이라 할 수 있겠다고 말하면서 눈이 멀기 전 눈 맞췄던 그 이름을 뱉지 못해서 가슴 속 사라진 사랑을 가슴에 붙이고 사는 것이라고 노래한다. 농맹인 현씨가 눈으로 본 모든 것을 이젠 볼 수 없지만 또렷이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얼마나 다시 보고 싶은 정경일까? 그 애타는 마음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일이다. 삼중고의 삶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화자는 더 나아가서 이 세상에서 살고 있는 모든 이들이 이름 하나 가슴속에 숨겨놓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마침내 손바닥에 그려내는 첫사랑을 찬찬히 꺼내 촉수어로 고백한다. 그렇듯 촉수어는 고기 떼를 연상케 하지만 물론 고기는 아니다. 안타깝지만 손으로 내 뜻을 표현하면서 손으로 끊임없이 접촉하는 중에 의사소통을 이루는 길이다.

‘촉수어 고백’에는 따뜻한 인간애가 전편에 잘 녹아 있다. 시대를 받아들이는 감각이 돋보인다. 글을 쓰는 일은 늘 독자를 전제로 한다. 자신이 쓴 글을 먼저 자신이 감동해야 마땅하다. 그때 지면으로 활자화해도 좋을 것이다. 일반인들은 쉽지만 의미 있는 시를 선호한다. 국민 애송시 윤동주의 ‘서시’가 그 표본이 될 것이다. 어려우면서 의미 있는 시보다 훨씬 좋기 때문이다. 쉽긴 하지만 별다른 감흥이 없거나 새로운 느낌을 전혀 주지 못한다면 실패한 시다.

‘촉수어 고백’은 좋은 시다. 한 번 읽고 나서 돌아서서 다시 읽고 싶은 마음이 든다. 연행 사이 감정의 결을 따라 음미하노라면 행복감을 느낀다. 마음에 다함없는 잔물결을 일으킨다. 촉수어가 좋고 촉수어 고백, 이라는 말이 무장 좋다. 사람을 지극정성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오롯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정환(시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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