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소농 현장을 가다 (67) 칠곡 피플 앤 팜

발행일 2020-07-29 14:00:00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당도 높이고 수익도 쑥쑥, 초보 농부의 유쾌한 반란

자두 재배로 부농을 꿈꾸는 귀농 3년차 청년농부

중국 황실에 올리던 과일 중 보배라는 자두의 달콤새콤한 맛

박일상·김지희 공동대표가 아들과 함께 자두가 가득 담긴 하트형 바구니를 들고 있다.
자두만큼 칭찬을 받은 과일이 얼마나 있을까. 자두에 대한 칭찬은 ‘천자문’에 나온다. 남북조시대 양무제의 명을 받은 ‘주흥사’는 하룻밤 사이에 천자문을 짓고 검은 머리가 백발이 됐다.

천자문은 사언절구의 한시로 250구절로 구성돼 있다. 그 내용 중에 15번째 구절에 ‘과진이내(果珍李柰)’란 말이 나온다. ‘과일 중에서는 자두와 능금이 보배다’라는 말이다. 중국에서 자두는 황제에게 올리는 과일이었고, 조선에서는 왕실을 상징하는 과일이었다.

박일상·김지희 공동대표가 수북이 쌓인 자두상자를 배경으로 자두 바구니를 들고 있는 모습.
조선 최고의 미식가로 불리는 허균의 ‘도문대작’에도 울진과 삼척에서 많이 나고, 크고 물기가 많다고 기록되어 있다. ‘오얏나무 아래에서 갓끈을 고쳐 매지 말라’고 하는 속담에 나오는 ‘오얏’이 바로 자두다. 이 같은 말들을 헤아려 볼 때 자두는 예전부터 상당히 인기가 있었던 과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과일이 귀하던 초여름에 나오는 새콤한 맛이 입맛을 돋우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온 가족이 잘 익어가고 있는 자두를 살펴보고 있다.
과일 중의 보배라는 자두를 재배하는 청년 강소농을 만나본다. 칠곡에서 ‘피플 앤 팜’을 운영하는 박일상(42)·김지희(39) 공동대표다. 부부는 자두 1만3천㎡와 고구마 5천200㎡를 재배해 연간 1억 원의 조수익을 올리는 억대농부다.

◆2년간의 고민 끝에 귀농 단행

농촌에서 자란 박 대표에게 농사일이 낯설지는 않았다. 어릴 적부터 들판과 과수원은 놀이터였다. 그곳에는 언제나 까맣게 그을린 아버지가 있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대구에서 공장 자동화 설비를 설계하는 일을 했다.

부부가 과수원에서 한창 익어가는 자두를 살펴보고 있다.
아내인 김 대표는 기계 설비를 제작하는 회사에서 일했다. 박 대표가 설계한 기계 설비를 김 대표가 만들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를 인연으로 두 사람은 가정을 이루었다. 10여 년의 도시 생활을 거치면서 농사일이 조금씩 멀어질 즈음에 농촌이 다시 가까이 다가왔다. 2016년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부부를 고향으로 이끌었다. 어머니 혼자 힘으로는 농장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2년 동안 도시와 농촌을 오가면서 고민을 했다. ‘5도, 2촌’. 5일은 도시에서 일하고, 2일은 농촌에서 어머니의 농사일을 도왔다. 이런 어정쩡한 생활을 하다가는 둘 다 망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귀농을 결정했다. 김 대표도 흔쾌히 동의한 것이 큰 힘이 됐다.

김지희 공동대표가 자두를 수확하고 있다. 같은 나무라도 수확시기가 다르기 때문에 매일 익어가는 상태를 확인하고 선별해서 수확한다.
또 농사지을 과수원과 농기계, 주택이 있기 때문에 귀농 조건은 좋았다. 농사 기술은 배우면 된다는 생각과 한번 시작하면 적극적으로 매달리는 긍정적인 성격이 조기 정착에 도움을 주었다. 귀농 3년차의 박 대표는 초보 농부 딱지를 떼어내고 농사꾼으로 변신하는 중이었다.

◆1년 만에 익힌 전정기술

농사일은 쉬운 것이 없다. 토양관리와 재배기술, 판매까지 모두가 어렵다. 그 중에서도 농민들이 어렵게 생각하는 것이 과수 ‘전정 작업’이다. 중노동이라서 어려운 것도 아니고, 기술이 까다롭고 어려워서 그런 것도 아니다. 혹시나 잘못해서 나무 수형을 망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때문이다.

김지희 공동대표가 나무에서 딴 자두를 흐뭇한 표정으로 살펴보고 있다.
또 자식 같은 나무에 선뜻 가위를 들이대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손이 오므라든다고 한다. 특히 열매가 달려있는 여름 전정은 더하다. 어쩌면 의사가 자기 가족의 수술을 하지 못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많은 농가에서는 전정 작업만큼은 전문가에게 맡기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박 대표는 달랐다. 전문가에게 전정 기술을 배우고 바로 실습에 나섰다. 나무 몇 그루 망치더라도 자기 나무는 직접 가꾸겠다는 생각에서다. 자두 주산지인 김천지역 농장을 수시로 견학했다. 견학을 가면 전정 기술에 집중했다. 나무만 쳐다본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박일상 공동대표가 익어가는 자두의 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주지를 어떻게 세우고 결과지(열매를 맺는 가지)는 어떻게 배치하는지 묻고 또 물었다. 심지어 가지를 자르는 면의 각도까지 살폈다. 이런 노력 덕분에 1년 만에 전정 기술을 익히고 직접 전정을 한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오랫동안 자두 농사를 지은 농가에서도 어렵다는 일을 단기간에 익혔다. 그러나 전정에 대한 완전한 기술을 익힌 것은 아니라면서 선배들의 현장기술과 교재를 통한 공부를 계속하고 있다.

박일상 공동대표가 익어가는 자두의 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현재는 여름 전정 작업에 대한 전문가의 컨설팅을 받고 있다. 덕분에 연간 500만여 원의 경비를 절약할 수 있었다. 수입을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경비를 줄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 박 대표의 생각이다.

◆아버지의 영농 일기

아버지는 평생 과수농사를 지었다. 사과와 복숭아를 재배하다가 자두로 바꿨다. 자두농사만 30년이 넘는다. 주변에서 자두농사는 최고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크기도 크고 당도와 색깔이 탁월했다. 공판장에 나가면 상인들이 먼저 가져가려고 경쟁을 벌였다.

박일상·김지희 공동대표가 익어가는 자두의 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비결은 시비와 병해충 방제에 있었다. 아미노산과 양파 액비 등 자신만의 천연비료와 약제를 만들어 뿌렸다. 아미노산 액비는 포항에서 구입한 생선이나 공짜로 얻은 생선 부산물을 큰 통에 담그고 숙성을 시킨 후 액비로 사용했다. 젓갈을 담듯이 1년 이상을 삭히고 숙성을 시켰다. 양파 액비는 천연살충제로 사용했다.

박일상·김지희 공동 대표가 김영권 강소농민간전문위원으로부터 자두의 수확 적기에 대한 컨설팅을 받고 있다.
아버지는 이런 내용을 고스란히 영농 일지에 담아두었다. 영농일지에는 그날의 날씨에서부터 작업 내용, 농약이나 비료를 뿌린 양이 기록되어 있다. 인부들에 대한 노임을 지급한 내용도 있다.

수확과 판매에 대한 내용은 당연히 담겼다. 지금 그 일지를 박 대표는 교과서처럼 활용한다. 틈이 날 때마다 들쳐보고 현재 자신이 하는 일과 비교하고, 교육에서 배운 내용과도 비교해 본다. 이런 비교를 통해 좀 더 좋은 영농방법을 찾는다. 이제는 박 대표도 자신의 영농일지를 기록한다. 아버지의 영농일지를 통해 기록의 중요성을 알았기 때문이다.

◆친환경에 한발 가까이

박 대표는 아직은 관행농법으로 자두를 재배한다. 점차 친환경 재배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아직은 초기라 친환경 인증을 받지는 않았지만 친환경 재배로 나가고 있다. 그래서 스스로 ‘저 농약 친환경 전환농업’이라고 부른다.

잘 익은 자두 모습.
그 1단계가 초생재배다. 제초제를 뿌리지 않는다. 여름 장마철에 접어들면 풀은 하루가 다르게 자란다. 연간 4회에 걸쳐 승용예취기로 풀을 벤다. 풀과의 전쟁을 치르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땀을 흘린다. 토양오염을 방지하고 토양공극을 좋게 하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 땅에서 자란 풀을 다시 땅으로 되돌려주는 것이다.

방금 수확한 자두 모습.
화학비료 대신 직접 만든 아미노산 액비를 뿌리고, 상품성이 없는 열과로 액즙을 만들어 뿌림으로써 당도를 높인다. 저 농약을 위해서 양파 액비를 천연살충제로 활용한다. 과수원 주변에 옥수수를 천적유지 식물로 심어서 병해충 발생을 줄인다. 옥수수에 있는 조명나방은 자두 속에서 부화해 과육을 갉아먹는 심신나방의 피해를 줄여주는 천적 역할을 한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품질이 좋아져 공판장에서 높은 가격을 받는다.

잘 익은 자두 모습.
지난 6월초 1천㎡(300평)에서 조생종인 ‘대석’ 자두를 수확해 1천200만 원의 조수익을 올리는 성과를 거뒀다. 지난해에는 5㎏ 들이 한 상자에 6만 원으로 김천지역 공판장 최고시세를 기록하기도 했다. 다들 초보 농부의 반란이라고 했다.

◆가공과 체험을 통해 소비자와 만나는 6차 산업 농장 조성

박 대표가 1차 농산물의 생산과 관리에 주력하고 있다면 김 대표는 다른 방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가공을 통해 소득을 더욱 높이는 일이다.

우선 자두 즙과 건조 자두를 만드는 것이다. 가공품을 통해 소득이 연중 고루 발생하는 소득 안정화를 기하는 것이다. 농장카페를 만들어 소비자와 만남의 공간을 만든다는 계획도 세웠다.

한창 자라고 있는 풋자두 모습.
농장카페는 마을 주민들이 생산한 농산물을 도시 소비자들에게 판매하는 로컬 푸드 역할도 함께 할 것이라고 한다. 또 농장을 소비자들에게 개방해 치유와 힐링을 겸할 수 있는 있는 휴식공간으로 제공하겠다는 계획이다.

“우리 농장 이름이 ‘피플 앤 팜’으로 지은 것은 농장이 여러 사람이 모여서 소통하면서 정이 있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면서 “도시 소비자와 농민의 만남의 광장을 만들겠다”고 박 대표는 말한다. 이보다 더 큰 꿈은 초등학생인 아들이 농촌에 뜻이 있다면 농업 관련 공부를 체계적으로 시켜 4대를 이어가는 농장을 만드는 것이라고 밝혔다.

글·사진 홍상철 대구일보 객원편집위원

경북도농업기술원 강소농 민간전문위원

김종엽 기자 kimjy@idaegu.com
<저작권자ⓒ 대구·경북 대표지역언론 대구일보 .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댓글 (0)
※ 댓글 작성시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책임을 담아 댓글 환경에 동참에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