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불편러가 세상을 바꾼다

발행일 2020-07-21 11:06:43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박운석

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

소비를 통해 자신의 정치적, 사회적 신념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것을 ‘미닝아웃(meaning out)’이라고 한다. 신념을 의미하는 ‘미닝(meaning)’과 ‘커밍아웃(coming out)’을 결합한 신조어다. 가격이 비싸더라도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특정상품을 구입하거나 공유함으로써 자신의 신념을 나타내는 것을 말한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국어원은 지난 6월 말 '미닝 아웃' 대신 쉬운 우리말인 ‘소신 소비’를 사용할 것을 권장했다.)

이들은 공정무역으로 들여온 원료를 사용하는 제품을 통해 인권문제를 고민하고, 비건 상품을 통해 동물복지를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착한 소비자이자 가치 소비자다.

때로는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 등 SNS 속 해시태그를 통해 자신의 신념을 드러내기도 한다. 세월호를 추모하는 #remember0416, 일본 불매운동인 #nojapan, 최근의 코로나19 의료진에 대한 감사메시지인 #덕분에챌린지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소신 소비의 중심은 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한 밀레니얼세대이다. 이들은 관행으로 굳어져 과거엔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던 것에 대해 더 이상 침묵하지 않는다. 가끔 지나치게 예민한 모습으로 비춰지더라도 정의롭게 나서서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며 세상을 바꾸려고 노력한다.

어떤 면에서 보면 이들은 ‘화이트 불편러’(white+불편+~er)이기도 하다. 화이트 불편러는 원래 ‘프로 불편러’에서 나온 말이다. ‘프로 불편러’는 유난스럽게 불편한 사람이다. 별것 아닌 아주 사소한 사안임에도 트집을 잡아 논쟁을 부추기는 사람을 이야기한다. 이들은 사회 통념상 합리적이며, 문제될 게 없어 허용되는 현상을 두고 억지로 과대해석하거나 소모적인 논쟁을 부추긴다.

이 불편러에 좋은 것, 옳은 것, 선한 것이라는 의미를 덧붙인 게 화이트 불편러이다. 이들은 사회의 부조리를 보면 침묵하지 않는다. 먼저 나서서 정의로운 주장을 내세우며 공감을 이끌어내고 여론을 형성해나간다. 불합리한 관례 혹은 악습에 대해 아주 적극적으로 문제제기를 하며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사람들이다.

화이트 불편러들은 다양한 방면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거나 갑질논란이 일었던 기업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에도 나선다. 이들은 누군가가 불편해하는 걸 보면 공감해주며 불의나 옳지 않은 것에 대한 문제제기와 함께 자신부터 행동에 나서며 실천해 나간다. 합리적으로 이의를 제기하고 잘못된 것에 대해선 제대로 비판할 줄도 안다.

요즘은 화이트 불편러를 빙자한 프로 불편러가 늘어나고 있어 마음이 편치 않다. 화이트 불편러가 ‘정의로운 예민함’으로 불편을 이야기한다면 프로 불편러는 ‘개인적인 예민함’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아서다.

일부에서는 다 똑같은 불편러로 치부하기도 한다. 나와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프로 불편러로 매도하는 경우다.

문제는 잘못된 관행이나 관습 때문에 불거지는 현상에 의외로 둔감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이들은 명백히 드러나는 문제에 ‘정의로운 예민함’으로 지적을 해도 “관행이었다”는 한마디로 어물쩍 넘어가려 한다. 나아가 문제를 지적하는 사람들을 향해 “왜 그렇게 예민하게 반응하느냐”며 오히려 “너 프로불편러 아니냐?”며 매도해버리기도 한다.

그렇다고 침묵할 수는 없다. 화이트 불편러가 많아야 세상이 바뀌는 법이다. 개인적인 불합리보다 사회적 불합리와 부조리라면 더욱 그렇다. 문제가 보이면 공감해주고 같이 캠페인을 벌이며 문제해결을 위해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도록 여론을 형성해 나가야 할 일이다.

더군다나 나의 작은 움직임으로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다면 해볼 만한 것 아닐까.

그렇다고 세상 일에 침묵하며 단지 투덜거리기만 하는 사람들에게 공감을 강요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들에게 묻고 싶다. 사회의 부조리에 내 일이 아니라며 외면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당신은 투덜이입니까? 화이트 불편러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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