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철환

객원논설위원

요즘 트로트 열풍이 예사롭지 않다. 트로트는 통상 뽕짝으로 불렸으나 비하하는 말이라는 이유로 사계에선 잘 쓰지 않는다. 1970년대에 나훈아와 남진이란 불세출의 두 스타가 치열하게 경쟁하는 과정에서 트로트는 대중가요의 대세로 자리 잡았다. 4분의 4박자에 강약을 넣고 독특한 꺾기 창법이 특징이다. 일본 엔카에 뿌리를 둔 음악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그 영향을 부정할 순 없지만 우리 민족의 정서를 담은 독자적인 음악 양식으로 보는 입장에 동조한다. 트로트는 전통음악이나 발라드와 접목해 진화를 거듭했다. ‘시대에 뒤떨어진 저급한 가요’, ‘한 물 간 노래’라는 혹평도 있었지만 TV 프로그램 ‘미스터트롯’을 통해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고 오뚝이처럼 일어섰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시험할 기회다.

젊은 피를 적극 받아들인 점이 눈에 띈다. 같은 악보의 노래라도 쫀득쫀득하고 탄력 있는 목을 타고 나오는 노래는 싱싱하고 생명력이 있다. 그 얼굴에 그 얼굴인 좁고 얕은 가수 층과 타성에 젖은 고루한 창법은 지루함과 싫증을 준다. 낯설고 귀 선 음악에 소외된 채 귀 막고 입을 다물고 있던 차에 다채로운 얼굴과 신선한 목소리가 귀를 열고 노래를 흥얼거리게 했다. 개방적인 세대답게 기존음악을 새롭게 해석하고 다른 장르도 과감하게 수용하는 모습을 보고 모두 싱그러운 트로트에 시선을 빼앗겼다. 새 피를 수혈하고 선택의 폭을 넓힌 데다 독창적인 창법을 선보인 게 주효한 셈이다.

다양한 캐릭터를 망라한 심사단을 구성해 공정하고 객관적인 평가를 이끌어냈다는 점도 시청자에게 신뢰를 주었다. 심사위원 각자의 고민스런 심사과정과 그 결과를 투명하게 지켜봄으로써 시청자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모두 함께 동시에 들으면서 각자 평가한 내용을 마스터의 점수와 비교해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유사한 결론에 도달한 경우엔 당연히 즐겁고, 시행착오를 통한 학습도 나쁘지 않다. 음악을 즐기면서 그 디테일을 알아가는 것도 소소한 기쁨이다. 진정성 있는 평가라는 확인에서 자연스레 신뢰가 쌓인다.

노래는 귀로 듣고 감상하는 속성과 직접 입으로 부르는 속성을 더불어 가진다. 듣고 감상하는 속성은 모든 음악이 가지는 기본적이고 보편적인 측면이다. 반면 직접 노래를 부르는 속성은 대중음악에 필요한 특성이다. 바꿔 말하면 대중음악은 보통사람이 가사를 따라 부르는 것이 가능해야 좋다. 최근 대중음악은 듣는 측면과 부르는 측면이 분리돼 왔다. 대중가요가 보통사람이 부를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지 오래다. 스마트폰과 이어폰의 영향이다. 가수는 전적으로 부르는 데 치중하고 대중은 듣는 것으로 만족했다. 떼 지어 나와 한 소절씩 부르거나 파트를 나눠 부를 뿐 전 소절을 완창하는 모습이 외려 낯설게 된 상황이다.

트로트는 따라 부르기 쉬운 노래라는 점이 최대의 무기다. K팝이나 랩 등과 같은 노래와 달리 음악적 소양이 충분하지 않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혼자 쉽게 부를 수 있고 흥얼거릴 수 있다. 스포츠를 비롯한 모든 예체능 분야에서 보통사람이 참여할 수 있는 콘텐츠가 새삼 각광을 받고 있다. 이러한 추세가 대중음악에도 예외일 수 없다. 소통과 참여가 포기할 수 없는 가치로 자리 잡고 있다. 트로트는 고급스럽고 우아한 면이 부족하지만 누구나 쉽게 접근 가능한 친근함이 있다.

올해 미스터트롯은 그야말로 대박을 터트렸다. 옥에도 티가 있듯이 미스터트롯에도 시정해야 할 점은 있다. 평가의 공정성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 톱7에서 문제가 불거졌다. 마스터 채점이 끝나고 홈페이지에서의 인기도와 전화 콜 점수를 반영하는 단계에서 터무니없는 실책이 발생했다. 마스터가 전문가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홈페이지 인기도와 전화 콜의 가중치를 신중히 배정해야 했다. 전자는 제대로 신경 썼지만 후자는 방심했다. 마스터 점수 차가 수십 점인 상황에서 전화 콜에 의한 점수 차를 수백 점이 되도록 방기한 실책은 결정적이다. 마스터들이 채점한 점수를 일거에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그럴 거면 애써 심사를 할 필요가 없다. 공정한 평가는 경연의 생명이다. 이러한 실책은 다시 되풀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런 치명적 실책에도 미스터트롯의 인기가 유지되는 것은 톱7의 빼어난 실력 때문이다. 비록 버스 떠난 후 손 들기지만 어떤 식으로든 그 잘못에 대한 진상을 밝혀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스터트롯은 신분상승의 등용문 역할을 훌륭히 수행했다. 신분상승의 사다리를 놓아 젊은 흙수저의 숨통을 확 터주었다. 이 점에서 미스터트롯은 칭찬받을 만하다.



김지혜 기자 hellowis@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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