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교육 이대로는 안 된다

발행일 2020-07-22 14:02:06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윤일현

지성교육문화센터이사장

코로나19로 학생들이 자가 학습을 할 때 자주 상담 전화를 받았다. 어느 어머니가 이렇게 대화를 시작했다. “코로나로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고, 자율학습도 없으니 너무너무 좋습니다.” 나는 그 말의 저의가 궁금했다. “그게 무슨 말씀인지요?” “코로나19가 없었다면 학교에 계속 나가야 했겠지요. 어차피 우리 아이를 비롯한 최상위권 학생들은 학교에서 배우는 것이 별로 없지 않습니까? 학원에서 선행학습을 통해 필요한 것은 이미 배웠으니 수업 시간에는 눈치껏 자지 않았습니까? 수업 시간에 불안한 마음과 불편한 자세로 자는 것보다는 집에서 편안히 실컷 자는 게 더 낫다는 것이지요. 우리 아이와 비슷한 수준의 학생들은 학교 안 가는 게 더 좋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한테도 한번 물어보세요. 나와 같은 말을 할 것입니다. 학교는 수시를 위한 학생부 관리와 대학 진학에 필요한 졸업장을 받기 위해 가는 것 아닌가요?” 나는 말이 나오지 않았고, 아무 말도 하기 싫었다.

며칠 후 아는 어머니와 통화했다. “선생님, 요즘 우리 아이가 몇 시에 자고 몇 시에 일어나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까? 아시면 기절하실 거예요.” 너무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난다는 뜻이었다. “새벽 2시쯤 자서, 아침 11시 전후에 일어납니까?” 어머니는 깔깔 웃으며 “점심 먹을 시간에라도 일어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우리 아이는 새벽 4시에 자서 오후 4시에 일어납니다. 밤낮이 완전히 바뀐 것이지요. 아무리 말해도 안 되니 이제 아빠도 모든 것을 포기했습니다.” 코로나로 학생들이 자가 학습을 하던 지난 5월 초 한 학부모와 주고받은 통화 내용이다.

나는 이 통화 사실을 토대로 방송을 한 적이 있다. “코로나19는 학력 격차를 더욱 심화시킬 것이다. 집안 형편이 좋고, 공부할 의지가 있는 학생은 자가 학습에도 불구하고 부모의 도움과 철저한 관리로 자기 페이스를 유지할 수 있다. 학교에 나가 선생님의 지도를 받아야 기본을 유지할 수 있는 중위권 학생 상당수는 교사가 이끌어 주지 않으면 아예 책을 놓아버리기 때문에 하위권으로 전락할 위험성이 있다.” 이런 우려를 뒷받침해주는 조사가 나왔다. 서울의 한 고교 교사가 중간고사 결과를 보며 ‘중간에 있던 애들이 다 어디로 갔는지. 아찔하다’며 충격을 받은 내용이 신문에 보도됐다. 학급의 점수 분포가 상 하위권만 있고 모래시계처럼 중위권은 잘록하게 줄었다고 했다. 이 교사는 코로나19를 고려하여 문제도 쉽게 냈다고 했다. 고교 교사를 상대로 설문조사를 해보니 응답자 80% 이상이 ‘격차가 심각하다’고 진단했으며, 그중 20%는 ‘매우 심각하다’고 응답했다. 중간층이 없으면 교실 붕괴는 가속화된다. 교사는 일반적으로 중위권을 바라보며 수업을 진행하면서 상위권에는 심화한 질문을, 중하위권에는 이해를 돕기 위한 확인 질문을 한다. 그렇게 해야 상위권은 수업 내용을 이미 알고 있어도 기본 개념을 다지기 위해 수업에 참여하고, 중하위권은 조금이라도 이해해 보려고 수업에 관심을 가진다. 상하만 있고 중위권이 없는 교실은 정말 수업 진행이 어렵다. 상위권에 초점을 맞추면 하위권은 완전히 포기할 것이고, 하위권에 맞춰 수업하면 상위권은 너무 쉽다고 아예 칠판을 바라보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학생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는 정확한 학력 진단이 필요하다. 성적 경쟁을 부추기기 위해서가 아니다. 학생 수준에 맞는 수업 방법을 찾기 위해서는 주기적으로 평가를 해야 한다. 학력 양극화와 함께 특정 과목에 대한 기피와 쏠림 현상도 심각하다. 수학 포기 학생이 늘어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이해가 어렵거나 학습량이 많은 물리, 화학, 경제, 세계사 같은 과목은 소수의 학생만 선택한다. 물리를 선택하지 않은 공대생, 경제를 선택하지 않은 경제학과 신입생이 많다는 말이다. 현재와 같은 상태가 지속된다면 국가 경쟁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기초 학력에 문제가 있는 학생들의 학습 의욕 고취를 위한 특단의 대책과 함께 가정 형편이나 코로나19 같은 요인 때문에 발생하는 학력 격차를 해소할 방안도 시급하게 마련해야 한다. 국가 백년대계와 국가 경쟁력 차원에서 현 상황을 바라보는 안목이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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