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욱

에녹원장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해 온 것들이 산산이 부서져 내리는 요즘이다. 누가 어느 자리에 있어야 하는지, 무엇을 하는 것이 옳은지에 판단이 서지 않는다. 구태의연하게 진리와 진실을 구별하지 않더라도 진실이란 단어가 남용되는 현실이다. 어쩌면 테러 수준의 남발이 이루어지는 듯하다.

흔히 진실을 대신해 사실(fact)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구별하기 쉽지 않은 단어들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엄밀히 두 단어는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교차적인 부분 외에 구분되는 한계선이 존재한다. 단순 개념적 문제를 벗어나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속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쉽게 이해시키기 위해 어떤 사람은 반대적 개념으로 접근하기도 한다. 다시 말해 ‘진실’의 반대되는 ‘거짓’과 ‘사실’에 대립되는 ‘사실이 아닌 것’은 엄격히 다른 개념이라는 입장이다. ‘사실이 아닌 것’들의 예로 의견, 주장, 추측 등을 들고 있다.

형사소송법의 기본 원칙 중 ‘실체적 진실’의 발견과 그 적용은 진실과 사실의 구별에 있어서 더 큰 의미를 가진다. 법정에서 검사와 변호사가 주고받는 공방은 진실이 아니라 단편적 사실을 근거로 하는 주장이다. 부분적으로는 진실에 가깝지만 한편으로는 개인적인 의견일 수 있다. 지난 시절 ‘실체적 진실발견’이란 미명하에 인권이 유린된 적이 적지 않았다. 그만큼 사실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는 방증이 아닐 수 없다. 사건 당사자인 피고의 유일한 자백의 경우 보강증거 없이 유죄인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법정은 사건과 관련된 증거와 사실들에 대한 검증을 통해 보다 ‘실체적 진실’에 가까운 쪽에 유리한 판결을 내리는 것이다.

언론의 기사들 또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절대적 근거나 계량 가능한 사실이 아니라면 그것은 단순히 기자나 언론의 의견이나 언론보도 방향일 뿐 사실이 될 수 없으며 진실은 더더욱 아니다. 최근 방송사나 신문사들의 ‘팩트 체크’라는 코너가 생기는 이유도 사실을 근거로 하는 진실 보도에 대한 반성이 아닐까 싶다.

최근 서울시장의 성추행 사건과 경기도지사 대법원 판결, 그리고 검·언유착 조사 등등 크고 작은 사건들이 연일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 더불어 진영논리의 공방 속에서 개별 사안마다 근거 없는 확신으로 사실(fact)과 진실이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여야 국회의원을 비롯하여 수많은 오피니언들이 토론과 언론 인터뷰에 응하고 SNS를 통해 양분된 지지자들의 지원 댓글은 총성 없는 전쟁을 방불케 한다. 토론자의 의견이나 주장이 사실이나 진실이 아님에도 전문가라는 프레임 속에서 공감을 얻게 되고 단편적인 사실에 의한 침소봉대는 진실로서 받아들여지고 있는 현실이다. 비전문가인 경우 사실적 근거가 부족한 상태에서 자기 의견이 진실에 가깝다며 강변하기도 한다. 진리, 정의, 공정이라는 단어를 앞세워 국민의 판단을 흐리게 하고 있다. 결국, 실제적 사건인 사실을 어느 집단이나 특정 개인이 옹호하고자 하는 방향으로 의도적으로 왜곡함으로써 진실을 더 깊이 은폐시키고 있는 것이다. ‘사실이 아닌 것들’이 사실로서 받아들여지고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풍토가 조성됨으로써 ‘거짓된 진실’만이 현실을 지배한다.

우리가 ‘알권리’로 요구하는 것은 ‘거짓 없는 사실’인 진실이다. 단편적인 사실도 사실 아닌 것들인 주장이나 의견도 아니다. 분명코 존재하는 사건의 실체가 국민이 요구하는 진실인 것이다.

우스갯소리로 ‘돈과 힘이 진실’이란 말이 있다. 이는 곧 권력과 금력에 의해 왜곡된 진실이 현실을 지배하는 모습을 나타내는 말과 다름없다. 정치와 돈이라는 극단적 밀월관계는 늘 집권 세력이 되는 순간 언론통제와 언론개혁을 단행하고자 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가 아닌가 싶다. 최종심인 대법원의 결정, 검언유착의 녹취록, 그리고 성추행에 대한 기자회견과 정당 및 사회지도층의 반응을 보면서 과연 진실은 무엇인가 되묻고 싶다. 혹여 우리 사회에 진실이란 이름으로 거짓된 사실들이 자리하는 것은 아닌지 두렵기조차 하다.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법언이 있다. 실체적 진실을 밝혀야 하는 검사의 사실들이 합리적으로 의심할만한 정도의 증명이 없으면 무죄를 선고하는 ‘무죄추정 원칙’을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거짓 없는 사실’인 진실을 보증하는 것임이 아님을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그것이 결코 진실과 정의의 승리가 아님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거짓된 사실들의 저 편에 진실이 숨겨지고 있는 건 아닌지 고민해야 할 일이다.





김지혜 기자 hellowis@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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