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도 수술할 수 있나요?

발행일 2020-07-29 11:03:35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이동은

리즈성형외과 원장

후덥지근하고 지루한 장마가 지속되던 어느날 어머니와 아들이 함께 찾아왔다. 몇 년 전 얼굴에 외상을 입어 수술하고 난 이후부터 얼굴에 자신감이 없어 고민을 계속해 왔다고 한다.

인터넷 상담란에 올라온 이러한 사연에 내가 답변한 내용을 보고 믿음이 생겨 어쩌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으로 찾아왔다니, 코로나19로 우리 주변의 생활이 비접촉, 언택트(un-tact)한 관계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는 점을 실감했다.

일단 문제를 파악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현재 상태를 자세히 파악했다.

외상을 입으면서 눈을 둘러싼 뼈들이 골절되면서 눈이 안쪽으로 말려 들어가면서 좌우 눈의 높이가 달라진 것이다. 눈 주위는 외상성 변형이 생긴 것이다. 좌우 얼굴 모습도 살짝 비대칭이라 할 수 있는 상태였다. 얼굴 모양이 좌우가 다르다 보니, 코와 인중, 입술이 한쪽으로 쏠려 있는 것이 보였다.

정확하게 여러 방향의 사진을 촬영해 환자와 어머니 두 사람과 함께 사진을 보고 얼굴 전체의 상태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뿐이 아니었다. 눈 주변 얼굴 뼈의 골절이 수술로 교정이 됐음에도 아직도 어딘지 모르는 곳에 있는 결함이 남아 있다는 생각에 자신감이 줄어들었다는 것이었다. 다친 사실로 인해 마음의 병이 생긴 셈이다. 이것을 흔히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라고 부른다.

그는 좌우가 틀어지고 비틀린 얼굴 전체를 안면 윤곽 수술로 바로 잡아 다치기 전 예전의 모습으로 되돌아가는 것만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이라고 믿었다.

젊은 나이에 활동이 많다 보면 부상을 입는 일이 적지 않다. 다만 이런 일들이 정신적인 장애를 부른다면 그것 역시 불행한 일이 되는 셈이다. 팔다리의 부상보다 얼굴의 부상은 외모에 관심이 많은 시기에 예민한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성형외과 의사가 능력이 많아서 마음의 상처까지 치유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나은 것은 없겠지만, 내가 가진 재주로 그곳까지 갈 수는 없는 일, 이 환자의 치유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최대한의 범위를 생각해 봤다.

첫 단계는 키도 크고 얼굴이 시원시원하게 잘생긴 그에게 자신감을 심어주는 일이었다. 외상을 입어 변형된 부분에만 문제가 있는 것일 뿐, 누구나 좌우가 조금씩 다른 얼굴을 가지고 있고 현재의 모습만으로도 아무 문제가 없다는 점을 여러 차례 설명해 주고 굳이 위험 부담을 해 가면서까지 큰 수술을 할 필요는 없다는 믿음을 심어주려 노력했다.

그 다음, 솔직하게 어디까지 가능하기를 원하는지 환자와 어머니와 함께 오랫동안 대화를 나눴다. 사람의 마음 속을 들여다볼 수는 없겠지만 현재의 상태에서 부담이 크지 않는 수술로 가능한 한 최대한의 범위까지 비대칭인 얼굴의 모습을 같아질 수 있도록 교정해 주기로 약속했다.

골절의 후유증으로 인해 안으로 들어가 작아진 눈은 쌍꺼풀 수술로 최대한 크게 만들고 눈의 안쪽 부분을 터서 좌우 폭을 늘렸다. 반대쪽 눈은 가능한 한 작은 쌍꺼풀을 만들어 좌우의 균형을 맞췄다.

한쪽으로 쏠려 있는 입술 역시 반대쪽으로 당겨 교정해 주면서 상대적으로 짧은 길이도 함께 늘렸다.

수술 다음날 얼굴의 균형이 어느 정도 잡힌 것을 보고 그의 마음도 함께 치유됐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수술 결과는 어디까지나 의사와 환자가 생각하는 교감의 정도가 비슷하게 이루어져야 좋은 결과를 보여줄 수 있다. 의사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관점에서 만족스러워야 하기 때문이다.

붓기와 멍이 어느 정도 빠지고 난 모습은 비록 다친 후유증이 살짝 남아 있는 것이 보였지만 눈만 놓고 보면 좌우의 모습이 거의 균형이 맞는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다.

특히 입술을 당겨 교정해 준 결과 반대편으로 쏠려 있던 얼굴이 가운데로 자리를 잡으면서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얼굴 전체의 모습이 반듯해진 것을 알 수 있었다.

얼굴에 드리워졌던 그늘이 활짝 걷힌 그에게 시치미를 뚝 떼고 결과에 만족하는지 넌지시 물어보았다.

수술한 것에 매우 만족한다는 그는 수술 전 상담을 통해 가능한 부분과 불가능한 것을 구분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마음의 부담을 덜 수 있었다고 한다. 말 한마디가 자신을 구한 셈이다. 자신의 장점을 볼 수 있게 되면서 자신의 단점을 이해하고 너그럽게 바라볼 수 있게 됐다고 한다.

비접촉, 언택트 트렌드가 빠른 속도로 진행하면서 사회 구성원들의 거리는 점점 멀어져 가고 있는 것을 느낀다. 그럴수록 서로의 마음을 가깝게 이어주고 치유해 주는 말 한마디, 글 한 줄의 의미를 소중하게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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