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교황 비오12세를 살린 신비의 물질 로얄제리로 부자농부를 꿈꾼다||효능이 뛰어난 생

▲ 로열제리를 채취하는 모습. 작은 나무 숟가락 위에 희게 보이는 것이 왕대 하나에서 채취한 로열제리다.
▲ 로열제리를 채취하는 모습. 작은 나무 숟가락 위에 희게 보이는 것이 왕대 하나에서 채취한 로열제리다.
꿀벌은 유충을 기르는 시기에만 인두선에서 유백색의 신비한 물질을 분비한다. 이 물질을 ‘로열젤리’라고도 하고, ‘왕유’라고도 부른다. 아미노산과 비타민, 미네랄 등이 풍부해 불로장수의 묘약으로 불린다.

▲ 로열제리 틀에서 유충을 집어내는 모습. 이충침 끝에 있는 작은 점처럼 보이는 것이 꿀벌 유충이다.
▲ 로열제리 틀에서 유충을 집어내는 모습. 이충침 끝에 있는 작은 점처럼 보이는 것이 꿀벌 유충이다.
로열젤리와 관련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1954년 평화의 교황으로 불렸던 제260대 비오12세가 노환과 폐렴으로 생명이 위독할 때 주치의가 로열젤리를 투여했다. 이후 교황은 기적적으로 건강을 회복했다. 주치의는 이듬해 로마에서 열린 국제의약대회에서 로열젤리에 대한 임상실험 결과를 발표해 주목을 받았다. 로열젤리 덕분에 건강을 회복한 교황이 1958년 로마에서 열린 국제양봉회의에 참석해 양봉가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시했다. 이것은 로열젤리의 효능이 전 세계에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 로열제리 틀에서 유충을 집어내는 모습. 이충침 끝에 있는 작은 점처럼 보이는 것이 꿀벌 유충이다.
▲ 로열제리 틀에서 유충을 집어내는 모습. 이충침 끝에 있는 작은 점처럼 보이는 것이 꿀벌 유충이다.
꿀벌은 인간에게 4가지 선물을 준다. 꿀과 화분, 프로폴리스, 로열젤리다. 신비의 물질로 불리는 로열젤리로 새로운 인생을 열어가는 귀농 9년차의 강소농이 있다. 상주에서 ‘이레농장 꿀단지’를 운영하는 엄조상(55) 대표와 한명화(52)씨다. 250군(통)의 꿀벌을 키우면서 로열젤리와 꿀을 채취해 연간 1억 원의 조수익을 올린다.

◆피자집 사장에서 양봉가로 변신한 자연형 인간

스스로 자연형 인간이라고 말하는 엄 대표에게 양봉은 세 번째 직업이다. 첫 직장은 건설 회사였다.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를 맞으면서 회사가 구조조정을 시작하자 회사를 떠났다. 다음으로 시작한 직장은 피자전문점이었다. 취업이 아니라 경영인이었다.

▲ 로열제리 틀에서 유충을 집어내는 모습. 이충침 끝에 있는 작은 점처럼 보이는 것이 꿀벌 유충이다.
▲ 로열제리 틀에서 유충을 집어내는 모습. 이충침 끝에 있는 작은 점처럼 보이는 것이 꿀벌 유충이다.
유명 브랜드라 수입은 많았으나 경쟁이 너무나 치열해 스트레스의 연속이었다. 오전 10시에 시작하면 밤 12시에 마쳤다. 일하고, 잠자는 것이 일과였다. 가족 간의 식사는 고사하고 아이들 얼굴을 볼 시간도 없었다. 인근에 다른 피자집은 물론 치킨이나 족발집이 들어와도 긴장됐다. 매출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었다.

▲ 엄조상 대표가 벌통에서 로열제리 틀을 들어내 살펴보고 있다.
▲ 엄조상 대표가 벌통에서 로열제리 틀을 들어내 살펴보고 있다.
배달 오토바이 교통사고는 가장 큰 걱정거리였다. 그것은 스트레스로 쌓였다. 피자전문점 운영이 10년을 넘어서면서 한계를 느꼈다. 건강에 빨간불이 켜졌다. 신경성 두통에서부터 위장까지 성한 곳이 없을 정도였다. 유일한 취미는 TV에서 ‘6시 내 고향’을 보는 것이었다.

▲ 엄 대표가 태양광을 이용해 밀랍을 녹이고 있다.
▲ 엄 대표가 태양광을 이용해 밀랍을 녹이고 있다.
조용한 농촌의 모습을 보면서 위안을 받았다. 13년 만에 피자전문점을 접고 귀농을 감행했다. 사춘기의 아이들이 반대했으나 아버지의 건강을 위한 일이라면서 설득했다. 귀농 후의 생활도 편한 것만은 아니었다.

▲ 엄조상 대표가 벌통에서 로열제리 틀을 들어내 살펴보고 있다.
▲ 엄조상 대표가 벌통에서 로열제리 틀을 들어내 살펴보고 있다.
양봉을 시작하면서 쉬지 않고 일했다. 다만 자기 주도적으로 스트레스 없이 하는 일이라 도시생활과는 많이 달랐다. 올해로 귀농 9년을 맞으면서 건강을 완전히 회복했다. 대학 다니는 자녀들이 졸업 후에는 농촌으로 들어오겠다고 한다. 전 가족이 농촌에 연착륙했다.

◆로열젤리는 무엇인가

신비의 물질로 불리는 로열젤리는 육아를 담당하는 어린 일벌의 인두선에서 분비하는 유백색의 물질이다. 단백질과 비타민, 미네랄, 아미노산 등 다양한 영양소를 품고 있어 장수식품으로 불린다.

▲ 로열제리 틀. 촘촘하게 달린 왕대 윗부분에 쌓인 흰색 물질이 로열제리다.
▲ 로열제리 틀. 촘촘하게 달린 왕대 윗부분에 쌓인 흰색 물질이 로열제리다.
알에서 깨어난 꿀벌 유충에게 로열 젤리를 3일간 먹이면 일벌이 되고, 4일을 먹이면 수벌이 된다. 6일간 먹이면 여왕벌이 된다. 먹는 기간에 따라 일벌이 되기도 하고 여왕벌이 되기도 한다. 일벌이나 수벌과 달리 여왕벌은 평생 동안 로열젤리를 먹는 특혜를 누린다. 일벌의 수명은 60일 정도이지만 여왕벌의 수명이 5년 정도로 긴 것은 로열젤리의 영향이다. 여왕벌이 평생 120만 개 정도의 알을 낳는 왕성한 산란능력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정성으로 모으는 생로열제리

로열젤리는 꿀벌과 사람이 만들어 내는 정성의 결정체다. 까다롭고 세심한 작업이다. 계상(2층 벌통) 중간에 격왕판을 설치해 여왕벌이 1층에만 머물게 한다. 격왕판에는 일벌만 드나들 수 있는 작은 구멍이 뚫려 있어 몸집이 큰 여왕벌은 통과하지 못한다.

▲ 소비에 꿀을 가득 채우고 벌들이 스스로 벌집을 밀봉한 모습. 숙성꿀을 생산하기 위해서 벌들이 벌집을 완전히 밀봉한 뒤에 채취한다.
▲ 소비에 꿀을 가득 채우고 벌들이 스스로 벌집을 밀봉한 모습. 숙성꿀을 생산하기 위해서 벌들이 벌집을 완전히 밀봉한 뒤에 채취한다.
로열젤리는 2층에서 채취한다. 33개의 왕대(여왕벌집)가 달린 로열젤리 틀을 소비(벌이 알을 낳고 먹이와 꿀을 저장하는 틀) 사이에 넣는다. 그 다음에는 일반 벌집에서 부화한 지 3~4일된 유충을 ‘이충침’으로 집어서 왕대 속에 일일이 집어넣는 이충작업을 한다.

▲ 로열제리가 채워진 왕대의 모습. 가운데 점처럼 보이는 것이 꿀벌 유충이고 ,주변에 채워진 것이 로열제리다.
▲ 로열제리가 채워진 왕대의 모습. 가운데 점처럼 보이는 것이 꿀벌 유충이고 ,주변에 채워진 것이 로열제리다.
정밀함이 요구되는 작업이다. 이충작업이 끝나면 일벌들이 벌통 안에 여왕벌이 없는 것으로 착각을 하고 여왕벌을 키우기 위해 왕대 속에 있는 유충에게 로열젤리를 공급하고 비축을 한다. 3일 동안 로열젤리를 모은 후에 다시 유충을 끄집어내고 로열젤리를 채취한다.

▲ 엄조상 대표 부부가 숙성꿀을 보여 주고 있다.
▲ 엄조상 대표 부부가 숙성꿀을 보여 주고 있다.
채취도 만만한 작업이 아니다. 밝은 LED 전등 밑에서 귀이개보다 조금 큰 나무숟가락으로 일일이 긁어낸다. 벌통 두 개에서 모아야 한 병(50g)이 된다. 한 사람이 하루에 10병 정도를 모을 수 있다. 생로열제리는 효능이 뛰어난 만큼 빨리 산화된다. 채취하는 즉시 냉동실에 넣어서 보관해야 한다. 세밀한 작업이라 아내인 한명화씨가 맡아서 한다.

◆세 번 이사한 꿀벌

양봉교육을 이수하고 본격적인 준비를 하는 과정에 뜻밖의 선물이 들어왔다. 집 앞 고추밭에 분봉한 벌떼가 날아든 것이다. 주인이 없는 꿀벌이라 하나님이 주신 선물로 생각하고 벌통에 거두어 들였다.

▲ 봉장 주변에 밀원식물로 심은 바이텍스의 꽃이 핀 모습.
▲ 봉장 주변에 밀원식물로 심은 바이텍스의 꽃이 핀 모습.
생애 첫 꿀벌이었다. 여기에 10군을 구입해 집 마당에서 증식을 시켰다. 4년 만에 120군으로 늘렸다. 온 집안이 벌떼로 가득했다. 금방 부자가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으나 마당이 좁아 집안에서 키우기에는 문제가 많았다.

밀원이 좋은 산 밑에 봉장을 마련하고 벌통을 옮겼으나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경험부족으로 음달에 봉장을 마련한 탓에 벌들의 활동이 현저히 떨어졌다. 해가 문제였다. 아침에 늦게 뜨고, 저녁에는 일찍 졌다. 꿀벌들도 해를 따라 늦게 일어나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부지런하다는 꿀벌을 게으름뱅이로 만들어 버렸다.

▲ 한명화씨가 양봉 부산물로 나온 밀랍을 태양광을 이용해 녹이고 있는 모습. 밀랍초와 공예품을 만드는 재료로 쓰인다.
▲ 한명화씨가 양봉 부산물로 나온 밀랍을 태양광을 이용해 녹이고 있는 모습. 밀랍초와 공예품을 만드는 재료로 쓰인다.
일하는 시간이 줄어드니 채밀량도 줄어들었다. 다시 햇볕이 잘 드는 아래쪽으로 이사를 시켰지만 또 실패했다. 바람이 많이 부는 곳이라 꿀벌들이 견디지를 못했다. 아침에 꽃을 찾아 나간 꿀벌들이 바람에 날려 돌아오지를 못하는 불상사가 벌어졌다. 137군이 순식간에 35군으로 줄어 들어버렸다.

▲ 한명화씨가 병에 담은 로얄제리를 보여 주고 있다. 한 병에 50g을 담는다.
▲ 한명화씨가 병에 담은 로얄제리를 보여 주고 있다. 한 병에 50g을 담는다.
결국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 세 번 이사를 하는 어려움을 겪고 제자리를 잡았다. 엄 대표는 요즘 봉장에 들어서면 기분이 저절로 좋아 진다고 한다. 떼를 지어 날아다니는 벌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웃음이 난다. 생로열제리와 꿀을 많이 먹은 덕분에 건강도 완전히 회복했다. 몸과 마음이 모두 건강해졌다.

◆양봉의 새로운 길

올해 벌꿀은 유례없는 흉작이다. 특히 아카시아 꿀이 그렇다. 생산량이 평년의 10% 수준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벌꿀 생산은 아카시아가 좌우한다. 가장 큰 밀원 수였던 아카시아의 노령화와 기후변화가 원인이다.

▲ 엄 대표가 태양광을 이용해 밀랍을 녹이고 있다.
▲ 엄 대표가 태양광을 이용해 밀랍을 녹이고 있다.
양봉산업육성법이 오는 28일부터 시행에 들어가지만 여전히 앞날은 어둡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양봉농가에서는 로열젤리와 수정 벌로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다.

‘이레농장 꿀단지’의 엄 대표가 일찌감치 꿀 대신에 로열젤리 생산으로 전환한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요즘 엄 대표는 “양봉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체 밀원 수 조성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따라서 봉장 주변에 다양한 밀원 수들을 심고 있다. 헛개나무와 피나무, 쉬나무, 바이텍스 등 종류도 다양하다. 연중 채밀이 가능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 봉장 모습.
▲ 봉장 모습.
또 다른 계획은 체험농장으로 가꾸는 것이다. 어린이들에게 꿀벌이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과 자연의 소중함을 체험 등을 통해 보여 주고 봉장을 개방해 소비자들에게 휴식의 공간으로 제공하기 위해서다.

도시에서 공부하는 자녀들이 농장운영에 참여하겠다고 하고 있어 조만간 체험농장은 구체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부부는 생로열제리 생산에 전념하고, 자녀들은 체험농장을 운영하는 계획이다. 가족단위로 운영하는 알찬 6차 산업화로 나가는 것이다.



글·사진 홍상철 대구일보 객원편집위원

경북도농업기술원 강소농 민간전문위원



김종엽 기자 kimjy@idaegu.com
저작권자 © 대구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