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녀 윤이의 웃음소리는/ 마이다스의 손이다/ 추석에 대구를 다녀가면서/ 떨궈놓은 웃음소리/ 베란다 창가에 자글거리며 내려앉는다// 온통 황금빛으로/ 쏟아져 나오는 웃음소리는/ 창문과/ 발을 담근 물과 / 불어오는 바람과/ 하늘의 별까지// 손녀 윤이는/ 키들거리는 웃음소리로/ 추석 무렵의 수성못 들안길과 그의 침실과/ 갖고 놀던 장난감 자동차와// 아내의 얼굴과/ 아침 배달 조간신문과/ 멍멍이와 침대와 소파와/ 훈민정음 해례본과/ 여진족이 쓰던 문자와/ 그리고 손녀가 머물던 빈자리까지/ 일상의 기쁨이 환하게 퍼진다

「수성문학」 (수성문인협회, 2020)

마이다스는 만지는 모든 것을 황금으로 바꾸는 신화 속의 왕이다. 마이다스는 미다스의 영어식 표현이다. 최근 모든 고유명사는 그 지방에서 불리는 대로 불러주고 있다. 미다스는 기원전 8세기 무렵 소아시아 프리기아의 왕이다. 알렉산더대왕이 칼로 잘랐다는 ‘고르디우스의 매듭’, 그 일화로 유명세를 얻은 고르디우스 왕의 아들이다.

탐욕스런 미다스 왕은 디오니소스에게 손을 대면 황금이 되는 신통력을 달라고 간청했다. 디오니소스는 그 소원을 들어주었다. 미다스는 주위 물건을 닥치는 대로 황금으로 만들었다. 만지기만 하면 황금이 되니 좋기도 했지만 문제도 심각했다. 닿기만 하면 황금으로 변하니 음식을 먹을 수가 없었다. 자기 딸도 황금조각상으로 변했다. 미다스는 디오니소스에게 다시 원래대로 되돌려달라고 간청했다. 원래대로 돌려주었다고도 하고 그대로 살다 죽었다고도 한다. 인간의 탐욕을 경계한 신화로 보이지만 이재에 능한 사람을 칭찬하는 말로 전화됐다.

시인은 손녀 웃음소리가 미다스의 손이다. 손녀 웃음소리에 주위의 모든 것들이 몽땅 황금으로 변한다. 황금은 재화나 재물이 아니라 즐거움과 행복의 메타포다. 손녀 웃음은 삼라만상에 생기를 불어넣고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에 사랑과 즐거움을 준다. 그 웃음의 여운마저 마법을 부린다. 창문과 침대, 소파와 장난감에서 손녀의 웃음자락이 묻어난다. 물과 바람과 별까지 미소 짓는다. 손녀와 걷는 길은 축복이다. 들안길을 오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활기차고, 상화공원 시비에 새겨진 ‘나의 침실로’도 반갑다. 조간신문에 좋은 소식이 실려 온다. 훈민정음해례본과 여진문자도 새삼스럽다. 일상이 흥미롭고 재미있다. 아내도 넌지시 웃고 있다. 손녀 웃음소리가 부린 마법이다.

귀여운 손녀만큼 사랑스러운 건 없다. 아들 딸 낳고 살았지만 사랑스러운 줄 몰랐는데 손녀를 얻고 보니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 없다. 먹고살기 바빠서, 아들 딸 재롱을 제대로 못 보고 살았다. 누구든 손녀를 볼 즈음이면 삶의 힘겨움에서 조금 빗겨나 여유를 갖는다. 그때 찾아오는 손녀의 재롱은 천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인생의 즐거움이다. 흔히 인생삼락이라고 하면 공자를 생각하지만 실상 사람마다 그 내용은 각기 다를 것이다. 첫째 자식 키우는 즐거움, 둘째 배우는 즐거움, 셋째 일하는 즐거움을 인생삼락으로 꼽는다고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터이다. 시인은 손녀바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자식 키우는 즐거움을 맛보기 위해서 적잖은 진통과 희생이 따른다. 대가를 치르지 않고는 인생삼락 어느 것도 즐거움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인생삼락을 무엇으로 채워 넣는다 하더라도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결혼하지 않고 애도 낳지 않는 최근 풍조는 극단적 이기심의 발로다. 그런 젊은이들에게 감히 이 시를 한번 읽어보라고 권한다. 오철환(문인)



김지혜 기자 hellowis@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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