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일상이 그립다

발행일 2020-08-02 15:09:01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정명희

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

장마 소식에 겁이 난다. 강원도와 충청지역에는 집중호우로 열차 운행이 멈췄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시간당 50㎜로 비가 퍼부으면 그것은 폭포 아래 서 있는 것 같지 않을까. 곳곳에 산사태에다 물난리가 나서 사고 소식에 불안한 마음이 가시지 않는다. 시골집은 괜찮은지 걱정되어 서둘러 길을 나섰다. 어찌된 영문인지 도로에는 차들로 가득 차 있고 슬금슬금 거북이걸음이다. 때로는 주차장처럼 멈춰 서 있다가 다시 조금 조금씩만 움직인다. 터널을 지나는 길이라 그 안에 혹시라도 사고가 생긴 것은 아닐까? 이곳에도 지반이 약해져서 산사태라도 난 것은 아닐까? 이런저런 생각으로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터널 가까이에도 아무런 일은 없고 내리막이 되자 쌩쌩 달리는 것이 아닌가. 별일이 없어 아무리 엉금엉금 가게 됐어도 그나마 다행이라 여겼다. 지루한 장마와 우울한 코로나19 소식과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비 피해 소식으로 마음이 무거웠을 터이니, 오랜만에 나타난 푸른 하늘과 밝은 햇살에 운전하면서 이리저리 살피느라고 속도에 탄력을 받지 못해 오르막을 잘 못 오르는 차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싶다.

오랜만에 맑은 날씨를 보니 습기에 찬 집안을 얼른 말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사방 문을 열어 젖혔다. 그러고 나서 비가 샌 곳은 없는지 살피는데 하얀 벽에 거뭇거뭇한 것들이 수십 개나 붙어 있는 것이 아닌가. 무심코 휴지로 닦아보니 살아 꿈틀대며 몸을 웅크린 채 발 앞에 떨어졌다. 화들짝 놀라 자세히 보니 지네처럼 발이 수십 개가 쌍으로 달려 있고 머리도 있는 벌레였다. 벽뿐만 아니라 바닥에도 깔려있고 욕실을 열어보니 그곳에도 수없이 많이 움직여대고 있었다. 장마가 지나는 동안 습기가 많아 생긴 것일까. 나무숲이 우거져있어서 살기 좋은 곳이라 찾아든 것일까. 살아있는 생물이라 함부로 살생은 할 수 없을듯하여 기다란 빗자루로 쓸어 숲속에 던져 주었다. 그곳에서 솔밭 사이 습기를 먹으며 땅속 유기물이라도 요기하며 살아가라고.

작년에는 없는 벌레들이 등장하는 것을 보면서 평범했던 일상이 정말 그립다. 지난해에는 저렇게 징그러운 벌레는 본 적이 없었는데 올해에는 그것까지 나타나 소름 돋게 하고 있다. 집 안 구석구석을 쓸고 닦고 나서 비바람에 텃밭은 괜찮은가 싶어 나가보니 난장판이 따로 없다. 고춧대는 다 쓰러져 있고 방울토마토는 바닥에서 뒹굴고 있다. 아쉬운 마음에 손으로 쓸어 담으니 그곳에도 무엇인가 만져지는 것이 있었다. 노래기들~아악~!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손이 갑자기 근질근질해오는 것 같았다. 노래기는 사람에게도 동물에게도 해를 끼치지는 않고 오히려 토양을 풍부하게 해준다고 하지만 그 모습이 너무나 징글징글해 표정이 먼저 일그러진다.

혹시라도 기어오르는 살아있는 벌레가 있는가 싶어 이리저리 살피는 데 전화기가 울린다. 받아보니 막내의 비명이 들려왔다. 식탁에서 밥을 먹고 있는데 천장의 전등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내려 꽂혀서 산산조각이 났다는 것이 아닌가. 세상에 하마터면~!

올해는 정말 이상하기 짝이 없는 해인 것 같다. 코로나19가 봄을 삼키더니 여름 휴가철을 맞아 장대비가 퍼부어 온 나라를 걱정하게 만들고 있으니 말이다. 벌레 노래기의 출몰도 멀쩡하던 전등의 낙하 사건에 놀란 가슴이지만, 온통 흙탕물에 젖어 있는 수재민의 마음에 비하겠는가.

해외입국자들의 코로나19 확진 소식도 걱정이다. 지난달 말 마지막 코로나 소아 환자를 퇴원시키면서 이젠 정말 끝이겠지? 생각했는데 벌써 빗나갔다. 해외 근로자의 아내가 자가 격리 중에 확진을 받았고 젖을 먹이고 있던 영아가 양성 판정을 받아 병원으로 오고 있다는 전갈이다. 정말 아무 일 없는 평범하게 지나가는 하루가 몹시도 그립다.

일전에 본 영화가 생각난다. ‘패터슨’이라는 영화다. 미국 뉴저지의 패터슨이라는 한 소도시에 같은 이름을 가진 남자의 일상 이야기. 그는 취미로 시를 쓰는 버스 기사다. 아침에 일어나면 시리얼을 먹고 버스 운전을 하러 간다. 일이 끝나면 아내와 저녁 식사를 한 후 강아지와 함께 산책하러 나간다. 중간에 늘 비슷한 시간에 술집에 들러 맥주도 한잔 마신다. 참 단순하고 반복적인 일상이지만, 영화는 버스 운전사 ‘패터슨’의 일주일을 보여주면서 우리가 사는 그저 잔잔하게 흘러가는 일상을 예술로 바꿔내는 마술을 보여준다.

우리가 생업을 이어가면서도 내면의 감수성을 잃지 않는다면, 하루하루 아름다움으로 꽉 차지 않겠는가. 일상으로 돌아가 각자가 원하는 것을 마음 놓고 할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우리의 하루는 삶에 활력소가 되지 않으랴. 요즘엔 평범한 일상이 참으로 그립다. 어서 빨리 그리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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