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일반

스토리로 만나는 경북의 문화재…상주 퇴강성당

상주 퇴강성당 본당 전경.
상주시 조암산 자락 아래, 낙동강의 옛 물미 나루터에 자리잡은 ‘퇴강성당’.

퇴강성당(경북 상주시 사벌국면 퇴강리 398)이 상주의 수많은 문화유산 가운데서도 늘 빠지지 않는 건 고딕양식의 붉은 벽돌 건물 때문만은 아니다. 선교사 없이 신자들 스스로 천주교를 받아들일 정도로 신앙 활동이 활발했던 곳으로도 유명하기 때문이다.

44명의 성직자와 15명의 수도자를 배출해 경북지역 천주교 신앙의 중요 거점으로 인정받는 등 명실상부 천주교 신앙의 중심지인 것이다.

1956년 재건립된 퇴강성당의 본당과 사제관 건물은 지역 천주교회의 역사와 건축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귀중한 문화유산으로 손꼽히고 있다.

지역 천주교의 역사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성당이라는 점과 고딕 양식으로 이뤄진 근대 건축물 등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7년 경북 문화재자료 제520호로 지정되기도 했다.

퇴강성당 신자들은 현재가 아니라 과거의 시각으로 성당을 바라볼 때 비로소 그 종교적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고들 한다.

한적한 시골마을에 붉은 벽돌로 뒤덮인 채 우아한 분위기를 풍기는 퇴강성당을 찾아 떠나보자.

상주 퇴강성당 사제관 전경.
상주 퇴강성당 위로 조성된 예수상.
◆100년의 역사를 간직한 성당

퇴강성당은 1903년 상주 사벌면 퇴강리 물미마을에 공소성당이 설립된 후, 1922년 본당으로 승격됐다.

이후 신자 수가 줄어 다시 공소(본당보다 작아 주임신부가 상주하지 않고 순회하는 구역의 천주교 공동체 및 천주교건축물)로 유지되다가 2003년 준본당으로, 2007년 본당으로 재승격됐다.

특이하게 해외 선교가 아닌 마을 주민들이 자진해서 천주교를 받아들이며 본당으로 정식 승격됐다는 점에서 조선시대 초창기 천주교 유입과 닮아있어 지역 주민들이 갖는 천주교 신앙의 깊이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지금도 성당 인근 마을 주민의 80% 이상이 성당을 찾고 있다.

퇴강성당의 출발점은 1899년.

당시 퇴강마을 주민 3명인 김운배(세례명: 호노리오), 김종록(세례명: 클레멘스)와 최면집(세례명: 말딩)은 가실 본당 문경 공소에서 세례를 받으면서 지역의 첫 신앙 공동체를 이루게 됐다.

이후 마을의 친지와 가족, 이웃들에게도 천주교 신앙이 전파되면서, 자연스레 마을 이름을 딴 ‘물미 공소’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1930~1940년에는 본당과 관할 공소 천주교 신자만 1천여 명이 넘을 정도였다.

하지만 1968년 안동교구 함창성당 관할 공소로 예속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경제 개발과 산업화로 인한 이농 현상으로 신자 수가 급속도로 줄어들게 되면서다.

현재 퇴강성당은 대략 300~400명의 신자 가운데 60세 이상이 전체의 40%에 육박하는 고령화 본당이 돼가고 있다

역대 본당 신부로는 1922년 본당의 제1대 신부인 이종필(마지아) 신부를 시작으로 제2대 이성인(야고보) 신부, 제3대 정수길(요셉) 신부를 거쳐 현재에는 제12대 박재식(토마스) 신부(2013년~현재)가 주임 신부로 임하고 있다.

2007년 본당으로 재승격한 후 3명의 수녀를 배출했다.

제1대 정요한(황아가다) 수녀, 제2대 최아가다(이발바라) 수녀, 제3대 고재노베파(김베드로) 수녀다.

상주 퇴강성당 본당 내부 모습.
중세 느낌의 성당 내부 스테인드글라스.
◆고딕 양식의 근대 건축물

퇴강성당은 지역 천주교회 건축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귀중한 문화유산으로 꼽히고 있다.

무엇보다도 1950년대부터 본당과 사제관이 잘 보존돼 있어 근대 건축물로서의 역사적 가치가 높다.

특히 본당은 높은 첨탑을 상징하는 12세기 이후 중세 서유럽의 건축 양식인 고딕풍의 붉은 벽돌 건물로 건립돼 수직 효과를 강조했고 천국에 닿고 싶어 하는 신자들의 소망을 잘 드러내 문화적인 가치를 지닌 지역 명소로도 유명하다.

첨탑 뿐 아니라 성당 본당 건물은 입면과 평면 구조물이 독특하다.

외벽은 콘크리트 기초 위에 벽돌을 쌓은 ‘영식 쌓기’를 이용해 고딕 양식을 잘 표현했고 평면은 남‧북으로 긴 장방형(내각이 모두 직각이면서, 정사각형이 아닌 것)의 ‘단랑식’(측량을 없앤 폭 넓은 구조)으로 돼 있어 눈길을 끈다.

줄기둥의 아케이드(기둥으로 지탱하는 아치 또는 반원형의 천장 등을 연속해 건축한 구조물) 천장도 근대 건축물이 주는 아름다운 멋을 뽐내면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본당 남쪽 정면의 주 현관 바로 앞에는 성모 마리아상이 있다.

성모 마리아상을 기준으로 현관을 바라보면 첨두형 아치 형식(예각으로 이뤄진 아치로 고딕식 아치형 천장의 특징)의 주 출입구가 눈에 띈다.

또 부 출입구에는 나르텍스(초기 기독교 시대 성당 정면 입구와 본당 사이에 꾸며 놓은 좁고 긴 현관)가 위치해 본당에 들어가지 못하거나 세례를 준비하는 사람들과 회개하러 온 사람들을 모두 받아들이겠다는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나르텍스 중앙 상부에는 8각의 첨탑을 둔 1개의 종탑이 있다.

삼종기도(오전 6시, 낮 12시, 오후 6시)를 알리기 위해 쓰이는 종탑은 평소 전등을 달아 야간에도 성당 건물을 비추는 방식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종탑의 유‧무에 따라 성당의 빛 공해도가 달라질 정도다.

본당의 창문도 붉은 벽돌을 이용해 반원형 아치 형식으로 장식됐다.

벽면의 플라스터(석고, 회반죽, 흙 따위를 물로 개어 바르는 데 쓰는 재료) 기둥 사이에 벽돌을 이용한 인방(창, 출입구 등 벽면 개구부 위에 벽을 지지하는 나무 또는 돌로 된 수평재)과 창문틀을 만들어 창을 달았다. 건축물의 상부 무게를 버티면서 멋스럽고 편안한 느낌을 주겠다는 의미다.

스테인드글라스(색판 유리조각을 접합시키는 방법으로 채색한 유리판) 유리창도 고딕 양식의 특징을 전형적으로 잘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별한 유물과 관광 자원이 있지 않더라도 건축물이 주는 모던함과 감각적인 조형미, 웅장한 숨결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성당의 전형을 퇴강성당은 갖고 있는 것이다.

상주 퇴강성당 위로 조성된 십자가의 길 표지석.
◆퇴강성당의 정신을 이어가다

퇴강성당의 주보성인(가톨릭 신자 개인 또는 단체나 성당을 보호하며 하느님께 기도하는 수호자)은 ‘성모 마리아’다.

퇴강성당은 성모 마리아가 죽은 후 육체도 영혼과 더불어 승천했다는 가톨릭의 교의(성모승천)를 믿으며 현재까지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퇴강성당의 정신은 예수가 사형 선고를 받은 후 십자가에서 숨지고 땅에 묻힐 때까지의 수난을 기억하는 14처의 기도에서 엿볼 수 있다.

본당을 지나 성지순례 코스를 따라가다 보면 14개 비석으로 이뤄진 14처가 보인다.

신자들은 이 곳을 순서대로 돌며 예수의 고난과 십자가가 주는 역경을 기념하며 묵상을 하거나 ‘주모경’(주님의 기도와 성모송) 기도를 한다.

1999년 퇴강성당 신자들은 천주교 봉도전교 100주년 기념비를 설립하며 선대들이 이어 온 천주교 신앙을 되새겼다. 100년 전 하느님의 백성이 된 선대 신자들의 영세 기념을 통해 하느님을 봉도하게 된 큰 은총에 감사의 뜻을 전한다는 것이다.

이들이 전하고 싶은 퇴강성당의 정신은 이 곳을 찾는 손님들에게 교회의 역사와 과거의 신앙적 역할을 알리고 성당을 미래의 성지로 개발하는 등 진실된 신앙생활을 통해 신자들 간 평화롭고 풍요로운 삶을 영위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2012년 성당 내 낡은 교육관을 허물고 새로운 교육관을 재건축할 때도 전문 기술이 필요한 요소를 제외하고는 모든 공사를 신자들의 손으로 직접 해냈다는 점에서 남을 배려하고 봉사하는 마음이 평소 신자들의 몸에 배어 있다는 것을 짐작케 한다.

또 2014년부터 상주시와 함께 어르신 사랑방학교와 시골 음악회를 개최하는 등 주민들과 소통하고 지역 문화 발전을 위해 일하는 종교의 모습도 꾸준히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일까. 퇴강성당에 대해 신자들이 만나자마자 얘기하던 “현재가 아니라 과거의 시각으로 바라보라”는 말 속에는 성당이 발원할 때 신자들이 가졌던 믿음과 지역사회와의 공존이 과거의 시각부터 현재까지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는 걸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하늘의 모후여, 우리를 보호하소서’라는 천주교 신앙의 토대가 조용하지만 힘있게 살아 숨쉬는 곳이라는 것도.

이동현 기자 leedh@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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