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를 밟았다 外

쑥쑥 자라는 아이의 키에 비해 몇 곱절 더 크게 자라나는 생각.

생각도 많고 고민도 깊은 청소년기에 읽은 한 권의 책은 크게 자란 아이들의 따뜻한 마음을 더 단단히 채워준다. 이번 여름방학동안 읽을 만한 신간 청소년 소설을 소개한다.

▲ 벌레를 밟았다
▲ 벌레를 밟았다
◆벌레를 밟았다/김지민 지음/바람의 아이들/160쪽/1만1천 원

청소년의 마음을 감싸안는 작품을 엄선해 ‘반올림 시리즈’를 이어온 ‘바람의 아이들’의 200번째 책, ‘벌레를 밟았다’가 출간됐다.

6편의 단편을 모은 소설집으로 가정폭력·휴대폰 중독·성폭력·또래 친구들과의 경제적 격차 등으로 고민하는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표제작 ‘벌레를 밟았다’는 반복되는 가정폭력의 굴레 속에서 똑같은 가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 분투하는 ‘충휘’의 이야기를 그린다.

폭력적으로 행동하는 아빠와, 그런 아버지를 무조건 이해해야만 한다는 엄마의 태도는 충휘를 자꾸만 더 깊은 수렁으로 몰아넣는다.

자신을 괴롭히던 아이에게 똑같이 폭력으로 맞서며 팔을 부러뜨린 일이나, 우연히 잡아 가둔 벌레 한 마리에게 ‘아빠’라는 이름을 붙이고 괴롭히는 자신의 모습에서 아빠의 그림자를 보게 된 순간 충휘는 중대한 결단을 내린다.

폭력이 또 다른 폭력을 낳을 때, 그 굴레를 끊기 위해서는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할까?

가정과 학교에서의 폭력이 중요한 사회 문제로 부각되고 있는 가운데 이 책은 정말로 자신을 지키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스스로 어떤 의지를 품어야 할 지 생각케 하는 작품이다.

책에 실린 6편의 단편에는 일상에 내재한 폭력을 견디고 있는 청소년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화장하는 남학생에 대한 편견에 자신을 숨기는 아이, 다문화 가정에 대한 몰이해에 맞서는 아이, 가정폭력의 굴레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아이, 휴대전화 의존도가 높아 일상생활에서 마찰을 겪는 아이 등 정신적·육체적으로 괴로움을 겪는 청소년들의 일상은 매우 위태롭다.

왜 우리는 폭력에 익숙해져서 그것이 폭력인지도 모르게 되었을까?

복잡하게 얽혀 있는 억압의 소용돌이에서 여섯 편의 단편 속 아이들이 보여 주는 담대한 행동들은 독자들에게 청소년기의 주요 과제인 ‘성장’의 진정한 의미란 무엇인가를 되짚어보게 한다.

▲ 소원을 파는 가게
▲ 소원을 파는 가게
◆소원을 파는 가게/스테퍼니 S. 톨란 지음/전지숙 옮김/라임/152쪽/9천800원

어느 날, 신이 나타나서 소원을 딱 한 개만 들어주겠다고 하면 무얼 빌어야 할까?

‘딱 한 개’라는 말에 왠지 조바심이 일면서, 가장 근사한 소원을 빌어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들 것이다.

상상만으로도 설레는 마음에 머릿속에 그동안 바라던 소원들이 가득 떠오를 수밖에.

어린이들의 소원은 범위가 넓고 그 종류도 무궁무진하다. 그런데 어떤 종류의 소원이든 가리지 않고 모두 다 이루어 주는 신비한 가게가 눈앞에 나타난다면….

소설 ‘소원을 파는 가게’는 상상 속의 공간인 소원을 파는 가게에서 어떤 소원이든 다 들어준다는 파격적인 설정을 바탕으로 쓰인 환상 동화다.

소원을 엉성하게 빈 탓에 천방지축 강아지 래티를 키우게 된 맥스의 좌충우돌 파란만장 소원풀이가 맛깔스럽게 그려진다.

새로운 동네로 이사를 온 맥스네 가족.

새 학교에서도 역시 맥스를 괴롭히는 못된 녀석들이 존재한다. 이유 없이 시비를 걸어 대는 것도 모자라 도시락이며 필통을 훔쳐 가기까지.

그럴 때면 맥스는 늘 상상 속으로 들어간다. 늘 맥스와 함께하는 용맹한 강아지 킹이 저 못된 일당들을 단번에 제압하는 멋진 상상에 빠진다.

맥스에게 친구 같은 건 필요 없다. 마음만 먹으면 영웅이 될 수 있는 상상 모험과 그 모험을 함께하는 강아지 킹만 있으면 되니까.

그런데 어느 날, 여느 때와 같이 상상 속에서 킹과 산책을 하는데 눈앞에 처음 보는 가게가 나타난다.

‘소원을 파는 가게’다. 호기심이 생긴 맥스가 문을 열고 들어가니, 하얀 머리의 할아버지가 맥스를 맞이한다. 돈을 내고 원하는 소원을 빌면 무조건 들어준단다.

이 책 ‘소원을 파는 가게’는 용기와 자존감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서 길어 올리는 것이라는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2003년 ‘나비 날다’로 뉴베리 아너 상을 수상한 저자가 들려주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판타지 동화다.

▲ 난민 I(아이)
▲ 난민 I(아이)
◆난민 I(아이)/스티브 타세인 지음/윤경선 옮김/푸른숲주니어/144쪽/9천500원

‘난민 I’는 세상 끝에 내몰린 고아 가족의 삶과 꿈을 그린 성장 소설이다.

작품의 무대는 사방 천지가 진흙탕에 잠긴 난민 캠프. 이곳에서는 보호자 없는 아이들을 진짜 이름 대신 알파벳으로 부른다.

컨테이너 박스에 사는 다른 난민 무리에 섞이지 못한 채 굶주림과 폭력에 쉽사리 노출되는 어린이와 청소년들.

경비병들은 통제 불능 상태가 된 난민을 향해 쉽사리 곤봉을 치켜들고, 어른들은 누구나 제 앞가림만 하기에도 벅찬 상황이다.

난민 고아 I는 “나는 이제 열한 살이다. 열한 살이면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한다”고 할 만큼 조숙한 소년으로 난민촌 한 귀퉁이에 손수 판잣집을 짓고 다른 고아들과 가족을 이루어 살고 있다.

L이랑 E랑 I. 우리는 진짜 가족이다. 과거나 미래의 가족이 아니다. 지금 여기에 함께 사는 진짜 가족이다. 여기에 V의 인형까지 새로운 색깔 옷을 입고 나타나면 우리는 아주 특별해질 거다.

상상력이 풍부한 소년 I, 죽은 부모 대신 동생을 돌보는 소녀 L, L의 남동생이자 자신의 이름도 나이도 기억하지 못하는 E. 세 아이에게 일상은 배고픔과의 전쟁이다.

진흙탕 속 빵 한 조각, 쓰레기통에 쑤셔 박힌 사과 심 하나라도 먹을 수 있다면 감지덕지다.

생일을 맞이한 I는 친구들에게 사과 심과 인형을 선물하는 것으로 자신의 생일을 기념한다. 엄마가 “주는 기쁨이 더 크지”라고 했던 걸 기억하기 때문이다.

어느 날 세 친구는 V가 경비병에게 대드는 광경을 목격한다.

V의 여권은 고국을 도망칠 때 바다에 빠져 죽은 오빠와 함께 사라졌다. 그 때문에 이곳 캠프에 수용됐었는데, 늘 그래 왔듯 이번에도 고모 집으로 탈출을 시도하다 경비병한테 들킨 것이다.

어른들은 V가 경비병에게 맞서는 모습을 구경하며 침묵한다. 경비병이 휘두르는 곤봉이 두렵기 때문일 것이다.

여섯 개의 장으로 구성된 이야기 첫머리를 장식하는 키워드 ‘I’, ‘LIE’, ‘VILE’, ‘LOVE’, ‘EVIL’, ‘LIVE’는 특별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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