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천영애의 영화산책…벨라 타르 감독 ‘토리노의 말’

무한한 반복과 구원이 없는 삶

시인 천영애
1889년 1월 3일, 토리노에서 프리드리히 니체는 외출을 나갔다가 한 마부가 말 때문에 애를 먹고 있는 것을 보았다.

마부는 말을 어르고 달래다가 참다못해 채찍을 휘둘렀는데 그걸 본 니체는 말에게 다가가 분노로 미쳐 날뛰는 마부를 진정시키고 말의 목을 끌어안고 흐느꼈다.

그걸 본 이웃이 니체를 데리고 갔는데 이틀 동안 침대에 조용히 누워 있던 그는 “어머니, 전 바보였어요”라는 한마디 말을 남기고 10년 동안 침대에 정신 나간 상태로 얌전하게 누워 있었다.

살아있던 사람들이 사라지고 나면 그 모든 사람들은 어디에 그 흔적을 남길까, 가끔 묻고 싶은 질문이다.

우리보다 앞서 살아갔던 사람들은 모두 어디에 있을까.

영화 ‘토리노의 말’ 역시 내내 이 물음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 영화는 러닝 타임만 7시간이 넘는 ‘사탄탱고’를 만든 헝가리의 감독인 벨라 타르의 마지막 작품이다.

니체가 마지막으로 중얼거린 “어머니, 전 바보였어요”라는 말은 분노로 날뛰는 마부의 채찍을 그대로 견디며 가만히 있는 말을 보면서 자신이 그러지 못한 것에 대한 회한의 말일 것이다.

세상이 미쳐 날뛰며 채찍을 휘두를 때 그는 왜 말처럼 가만히 있지 못했을까.

영화에서는 황야에 끝없이 폭풍이 불고 오두막집에는 아버지와 딸과 말이 함께 살면서 지루하게 반복되는 일상을 살아간다.

하루, 이틀, 닷새가 지나고 그들은 소멸할 것이다.

성경에서는 첫째 날부터 빛을 만들고, 하늘과 물이 나뉘어지고, 땅과 식물을 만들고, 태양과 달과 별을 만들고, 물고기와 새를 만들고, 마지막으로 짐승과 인간을 만들었다.

이렇게 창조된 만물은 끝없이 몰아치는 폭풍 속에서 거대한 흙먼지만이 날릴 뿐이었다. 불모의 대지를 소멸시키듯이.

마부의 딸은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이 바람이 불어대는 황야의 오두막에서 셋째 날 성경을 읽기 시작한다.

넷째 날은 아침마다 물을 길어오던 우물이 말랐고 말은 더이상 먹이를 일체 먹지 않았다.

다섯째 날은 기름이 가득 차 있던 등잔의 불이 꺼지고 폭풍이 멈춘 채 정적이 찾아왔다. 물이 없는 집을 떠났던 마부와 딸은 다시 집으로 돌아와 감자를 먹고 조용히 창가에 앉아 기다린다. 말도 다리를 꺾고 마지막 날을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인간은 끝없이 불어대는 바람이 막막하지만 그 지루한 겨울이 지나갈 것을 믿을 수밖에 없고, 우물의 물은 무한으로 퍼올려질 것을 믿을 수밖에 없다.

구원을 바라지만 구원은 어디에도 없고 생성과 소멸이라는 냉혹한 자연의 질서만이 존재할 뿐이다.

극한의 장면을 연출하기에 가장 적당한 흑백 필름과 롱테이크 미학은 벨라 타르만이 연출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영화미학일 것이다.

베를린 영화제에서 은곰상 및 국제비평가협회상을 수상했다.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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