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 바다엔 아리랑이 부서진다/ 칠십여 년 잠 못 든 반도/ 그 건너/ 그 섬에는/ 조선의 학도병들과 떼창하는 후지키 쇼겐// 마지막 격전의 땅 가을 끝물 쑥부쟁이/ “풀을 먹든 흙 파먹든/ 살아서 돌아가라”/ 그때 그 전우애마저 다 묻힌 마부니 언덕// 그러나 못 다 묻힌 아리랑은 남아서/ 굽이굽이 끌려온 길,/ 갈 길 또한 아리랑 길/ 잠 깨면 그 길 모를까 그려놓은 화살표// 어느 과녁으로 날아가는 중일까/ 나를 뺏길 반도라도/ 동강 난 반도라도/ 물 건너 조국의 산하, 그 품에 꽂히고 싶다

「화중련」(2020, 상반기호)

오승철 시인은 제주 출생으로 198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으로 등단했다. 시조집으로 「개닦이」, 「사고 싶은 노을」, 「터무니없다」, 「오키나와의 화살표」 등이 있다.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말이 우리 사회에서 한동안 회자된 적이 있다. 맞는 얘기다. 제주에서 태어나서 한평생 제주를 떠나지 않고 살고 있는 시인이 쓰는 거개의 시편들이 제주를 노래하고 있다면 그 작품들은 가장 세계적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시인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가 없다. 그는 그 누구보다 그것을 잘 활용하여 시의 지경을 넓히고 있다.

‘오키나와의 화살표’를 보자. 본문에 나오는 인물 후지키 쇼겐은 태평양전쟁 말기 일본군 소대장으로 참전했으며, 그 후 조선학도병 740인의 위령탑 건립과 유골 봉안사업에 일생을 바쳤다. 오키나와는 일본 열도의 최남단에 있고, 류큐 제도에서 가장 큰 섬이다. 태평양전쟁 때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곳이다. 첫 수 첫줄부터 눈길을 끈다. 오키나와 바다엔 아리랑이 부서진다, 라는 구절은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우리 겨레의 노래인 아리랑이 먼 이국땅 바다에서 부서진다는 것은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조선학도병들이 희생된 곳이기 때문이다.

칠십여 년 잠 못 든 반도 그 건너 그 섬에는 조선의 학도병들과 떼창하는 후지키 쇼겐의 모습이 어른거린다. 마지막 격전의 땅 가을 끝물에 우리나라 남부 지역과 일본에 분포하는 여러해살이풀인 쑥부쟁이를 등장시키면서 풀을 먹든 흙을 파먹든 살아서 돌아가라, 라고 외친다. 그때 그 전우애마저 다 묻힌 마부니 언덕에서다. 그러나 못 다 묻힌 아리랑은 남아서 굽이굽이 끌려온 길이요, 갈 길 또한 아리랑 길이어서 잠 깨면 그 길을 모를까 그려놓은 화살표를 통해 살아서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열망을 노래한다. 하여 어느 과녁으로 날아가는 중일까, 라면서 나를 뺏길 반도라도 동강 난 반도라도 물 건너 조국의 산하인 그 품에 꽂히고 싶다, 라고 시의 화자는 조선 학도병의 간절한 염원을 애절하게 대변하고 있다.

오래된 장르인 한국시조문학이 오늘의 독자들에게 읽히고 사랑받기 위해서는 동시대성에 치열하게 직면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그는 그런 점에서 탁월한 문학적 성취를 이루고 있는 시인이다. 작품 속에 제주 4·3사건을 적잖게 노래했고, 제주 특유의 정서와 풍광과 애환을 시조 3장의 행간에 담는 일에 매진해 왔다.

대구의 명소 수성못의 물꼬를 튼 산파는 일본인 미즈사키 린타로다. 1914년 개척농민으로 가족과 함께 물 건너 왔다가 가뭄과 홍수 피해를 막고자 인공 못인 수성못을 축조한 사람이다. 지금도 그를 기리는 행사가 해마다 대구에서 열리고 있다. 이런 일은 한일 간의 우호·교류 증진에 이바지하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후지키 쇼겐이나 미즈사키 린타로는 우리가 오래 기억할 만한 인물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한일관계를 생각하게 하는 시편‘오키나와의 화살표’를 한 번 더 음미해 보았으면 좋겠다. 이정환(시조 시인)



김지혜 기자 hellowis@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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