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철환

객원논설위원

최근 두 가지 사건이 동시에 터져 나와 여론을 둘로 갈라놓고 있다. 하나는 소위 ‘친일파 파묘법’ 발의이고 다른 하나는 광복회장의 연설문 파문이다. 친일파 파묘법 발의는 말 그대로 국립묘지에서 친일파 인사의 묘를 파내는 법을 만들겠다는 시도다. 광복회장의 연설 내용도 친일파 파묘법의 사고와 그 궤를 같이 한다. 비록 늦었지만 친일파를 샅샅이 찾아내어 처단하고 그 잔재도 깡그리 쓸어버리자는 말이다. 그럴만한 죄가 있다면 당연히 그래야 한다. 그런데 과연 그런 걸까.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겼다면 그 원인이 있을 것이다. 나라를 빼앗긴 책임소재를 밝히고 그에 따라 응분의 죄과를 묻는 것이 맞는다. 나라를 팔아먹었다면 매국노를 찾아내어 응징하면 되고, 전쟁에서 졌다면 그 패인을 분석하여 책임 있는 자를 징벌하면 된다. 전쟁의 패인은 다양하고 전문적이기 때문에 치밀한 연구가 뒷받침돼야 뒤탈이 없다. 패전해 나라를 빼앗긴 경우라면 책임질 사람이 더 명확하게 드러날 개연성이 크다. 국제정세와 자기실력도 모른 채 전쟁을 일으킨 사람 탓이고 허약한 국력을 방치한 사람 탓이며 전쟁 중에 적과 내통했거나 이적행위를 한 사람 탓일 것이다. 그렇지만 조선과 일본은 전쟁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패전의 경우는 아니다.

그 당시 조선은 전쟁을 할 힘도 없는 그로기 상태였다. 한일합병은 나라를 일본에 그냥 내준 부끄러운 사건이다. 나라를 빼앗긴 게 아니라 차라리 망국이었다. 무기력하게 나라를 잃은 책임은 왕과 지배계급에게 있다. 부국강병에 소홀한 무능한 왕들과 국제정세를 읽지 못한 한심한 관료들 그리고 당파싸움에 날 새는 줄 모르던 양반들이 나라를 망친 원흉들이다. 망국을 을사오적만의 책임으로 돌리는 시각은 너무 단순하고 피상적이다. 조선은 그 전에 사실상 망한 나라였다. 희생양을 만들어 면피하려는 의도가 아니라면 좀 더 근본적이고 심층적인 연구·분석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책임질 자가 나온다면 망국의 죄인으로 낙인찍어 역사의 감옥에 가둬둬야 한다. 친일파는 제도 순응적 현실주의자이거나 일상적인 생계형 방관자다. 친일파의 죄는 전쟁도 없이 나라를 넘긴 상황에서 ‘나라를 구하지 않았다’는 일종의 부작위다. 친일이 결코 자랑일 순 없지만 범죄라 보기엔 지나친 감이 든다. 단순히 친일했다는 이유로 단죄하기엔 명분이 약하다. 보통사람에게 수준 높은 역사의식을 요구하는 것은 과욕이다.

친일파라 해 뭉뚱그려서 죄인으로 몰아선 안 된다. 일본국적으로 태어난 조선인들에게 그들 자손이 친일 멍에를 씌우고 조리돌림 하는 것은 일종의 폐륜행위다. 친일은 애국심의 문제이기 때문에 나라가 없는 상태에서 애국심을 요구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단순한 친일과 반인륜적인 구체적 범죄행위는 전혀 다른 차원이다. 설사 독립과 광복을 방해한 자들을 응징해야 한다 하더라도 그 시간적 공간적 한계를 고려해야 한다. 친일파 청산을 무한정 끌고 갈 수도 없고 주권이 미치는 범위 밖으로 확대할 수도 없다. 친일을 나치 전범처럼 범세계적으로 무기한 추적해 응징할 수는 없다. 광복 75년이 지난 시점에서 친일 프레임으로 국민을 갈라 치는 정략은 임란 이후 재조지은을 들먹이며 당파싸움을 벌이던 사대주의자들의 작태와 다를 바 없다.

우리는 독자적으로 독립을 쟁취하지 못하고 연합국의 힘에 편승해 무임승차했다. 그런 연유로 인해 일제 청산에 대한 주도권조차 미군정이 쥐고 있었고 남과 북의 이념 전쟁으로 인하여 친일부역을 정리할 경황마저 없었다. 미군정 시절 친일부역 문제가 어떤 식으로든지 해결되었다면 상황은 다소 나아졌을 수 있다. 그렇지만 역사에 가정은 없다. 일제청산은 단일 사안일 뿐이고 근대화와 산업화를 포함한 복합적인 상황을 놓고 본다면 어느 것이 최우선순위였는지 단언하기 어렵다.

위안부와 징용에서 친일파 파묘법과 광복절 연설문에 이르기까지 과거사로 국론이 분열돼 갈등하는 현상은 바람직하지 않다. 리더십위기와 코로나로 나라가 총체적 위기에 빠져있는데도 불구하고 부관참시를 법제화해 역대 대통령과 참모총장의 묘를 파내고 친일파 작품이라는 이유로 애국가를 거부하며 태극기와 무궁화. 대한민국 국호마저 기피하는 움직임은 부질없는 짓이다. 대한민국은 연합국의 힘으로 독립하고 유엔군의 도움으로 살아남았다. 그 역사가 부끄럽고 성에 차지 않는다고 반일독립운동을 언제까지나 계속할 순 없다. 지금 정신 차리고 현명하게 대처하지 않는다면 다시 망국의 치욕을 경험해야 될지 모른다. 과거는 역사학자에게 맡기고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



김지혜 기자 hellowis@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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