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현

지성교육문화센터

이사장

“얘는 온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있습니다. 밤낮도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새벽 3시 넘어야 잡니다. 오후 2시가 지나야 일어나서 밥 먹어요. 잠도 10시간 이상 잡니다. 공부는 완전히 접었습니다. 밥은 안 먹어도 게임은 해야 합니다.”

고교 1학년을 데리고 상담하러 온 엄마의 하소연이다. 아들은 엄마가 말할 때 무표정하게 바라보기만 할 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저도 게임을 그만두고 싶지만 끊을 수가 없어요. 공부하고 싶지만, 인터넷 수업은 들어도 이해가 안 되고, 학원에 가도 따라갈 수가 없어요. 게임을 하면 다 잊을 수 있기 때문에 그만둘 수가 없어요.”

한참을 망설이다 입을 연 아이의 말이다. 이런 문제로 걱정하는 가정이 예상 밖으로 많다.

일본에서 오래 생활한 프랑스 기자 에티엔 바랄이 쓴 ‘오타쿠-가상세계의 아이들’은 컴퓨터 게임 같은 문제로 고민하는 우리 부모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 준다. 무엇을 좋아하는 정도가 지나쳐서 그것이 만든 가상세계로 현실을 대체해 버리고 스스로 그 안에 갇히는 사람들을 일본어로 ‘오타쿠’라고 한다. 그들은 구체적인 삶의 현실은 뒤로 한 채 만화, 컴퓨터 게임, 아이돌 스타, 인형 모으기, TV 보기 등과 같은 특정 생활에 병적으로 집착하며 자신만의 가상세계에 몰두한다.

저자는 ‘공부하라, 일하라, 소비하라’란 절대명령이 일본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표면적인 안락함에도 불구하고 냉혹한 경쟁에 직면해야 하는 많은 젊은이가 어른들의 생산사회에 들어가는 대신 가상의 세계나 유년의 놀이문화에 남기를 택한다고 분석한다. 심리적 퇴화 또는 자폐 증상에 가까운 오타쿠는 일본 사회의 모순이 빚어낸 희생자이자 이탈자라는 것이다. 그것은 개인보다 집단의 이익을 앞세우는 일본 정신과 억압적인 학교 교육에 학대당한 젊은이들이 스스로 선택한 생존방식이라는 것이다.

‘현실보다 상상의 세계가 더 좋다. 나를 인정해 주지도 않는 사회의 규약들은 지켜서 무엇 하나’라는 한 오타쿠의 외침은 우리 젊은이들에게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저자는 ‘튀어나온 못은 두들겨야 한다’라는 일본 속담을 상기시키며 ‘튀어나온 못’의 고뇌와 고통은 외면한 채 그냥 돌출부를 두드려 박아 넣으려는 피상적인 조치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강조한다.

학교나 학원, 인터넷에서 진행하는 수업을 이해할 수 없는 학생이 갈 곳이 어딘가를 생각해 봐야 한다. 나는 고교생 어머니에게 컴퓨터 때문에 무조건 화를 내거나, 충분한 설명 없이 컴퓨터를 금지하는 등의 조치는 문제 해결에 별로 도움이 안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들이 안고 있는 문제를 그들의 입장에서 접근해야 한다. 무조건적인 억압과 맹목적인 강요로 튀어나온 못을 임시방편으로 박아 넣으려고만 한다면 아이들은 더욱 말문을 닫고 자기만의 폐쇄된 세계로 들어가 버리는 경향이 있다. 엄마에게 숨 가쁘게 몰아붙이지 말고 천천히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학생에게는 게임을 줄이고 교과서와 인터넷 강의를 반복해서 듣고 그래도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밑줄을 치거나 표시를 해 두고 학교에 가서 알 때까지 질문을 하라고 했다. 학생이 질문하면 이해할 때까지 도와주고 격려해 주는 교사나 학습 멘토가 있어야 한다.

“처음에는 인터넷 강의가 별로 와닿지 않았고 재미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한 달쯤 지나니 너무 좋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수님이 교실에서 강의할 때보다 수업 준비를 훨씬 많이 하시고 설명도 더 자상하게 하시는 것 같습니다. 같은 강의를 여러 번 반복해서 들을 수 있는 것도 좋습니다. 한 두 과목을 듣기 위해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니 정말 좋습니다. 다만 친구들과 만나 떠들고 즐길 수 있는 시간이 없어 아쉽습니다. 그래도 괜찮아요. 주말에 약속해서 보면 되니까요.”

대학교 2학년 학생의 이야기다.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이 이렇게 다르다. 코로나로 중위권이 줄어들고 하위권이 늘어나면 중도 탈락자가 증가할 수밖에 없다. 교육 당국은 다시 악화하고 있는 상황에 철저하게 대비함과 동시에 자기 관리가 어려운 학생에게 맞춤식 도움을 줄 수 있는 다양한 지도대책도 마련해 교육 격차 줄이기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김지혜 기자 hellowis@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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