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영애의 영화산책…올리비에르 나카체, 에릭 토레다노 감독 ‘세라비, 이것이 인생’

발행일 2020-08-20 08:36:00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인 인생

시인 천영애
한 달이 넘은 지루한 장마는 비를 좋아하는 사람마저도 지치게 만들고,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수해 피해는 비를 구경하는 것조차 미안하게 만든다.

무엇이든 지나치면 좋은 것도 좋은 것이 아닌 법, 그러나 비는 사람이 원하는 딱 그만큼만 내릴 리는 만무하고, 늘 모자라거나 넘친다. 그것이 인생이다.

“이것이 인생이에요. 당신의 나뭇잎도 갈색으로 변했나요? 그 낙엽은 주위에 버릴 건가요? 이것이 인생입니다.”

Chyi Yu가 부르는 C’est La Vie가 먼저 떠오르는 영화이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노래, 바로 이 노래이다. 감성적인 음률이 퍼져나가면 결혼식 파티를 망쳐버리고 낙담하는 맥스의 처진 어깨가 떠오른다.

찰리 채플린은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했다.

고성에서 벌어지는 결혼식 파티는 화려하고 아름답지만 거기에는 결혼식 비용을 아끼기 위해 애쓴 신부와 까다로운 신랑, 사고만 치는 직원들, 그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는 맥스가 있다. 그러나 파티 자체를 보면 행복 그 자체이다.

누가 그랬던가,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고통의 양은 같다고, 다만 고통의 색이 다를 뿐이라고. 좀 더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인생은 집 현관문을 열었을 때 주인 남자가 팬티만 입고 있는지 아니면 반바지라도 입고 있는지의 차이라고 했다. 잘난 척 해봤자, 고통에 절망해 봤자 인생은 고작 팬티와 반바지의 차이라니 사는 게 좀 힘이 나는가.

사람은 성향에 따라 긍정적인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부정적인 사람이 있다.

어떤 것이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시작해 보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부정적인 것부터 먼저 해결하고 종착점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이 있다.

나는 긍정적인 것부터, 좋은 것부터 먼저 즐기고 고통스러운 것은 닥치는 대로 해결해 나가며 사는 쪽이다.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라 성향이 그렇다. 그러니 다소 낙천적이고 때론 나태하다.

잘 되어 갈건 뻔한데 뭘 걱정해. 그러다가 걱정해야 할 일들이 닥치면 또 해결하다 보면 어찌어찌 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한마디로 대책 없는 삶이다. 그러나 뭐 그럭저럭 살아왔다. 그렇게 살지 않는다고 해도 노래 가사처럼 누가 날 걱정하겠는가.

운명론자인 나는 한 시간 뒤의 나를 모른다.

정해진 운명대로 살아갈 뿐이라는 것 정도만 믿는다. 아무리 운명에서 벗어나려고 해봐도 결국은 정해진 운명의 테두리 안에서 살아갈 것을 믿는다.

범신론자이므로 세상 만물에 영혼이 있다고 믿고, 그 세상 만물도 그들의 삶을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가끔 무언가를 내 뜻대로 하려고 발버둥 치는 때도 있지만 한발 물러서서 바라보면 운명의 쳇바퀴를 돌리고 있는 나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운명을 모르니 나는 그저 내 의지대로 살아간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영화에서 대책 없는 사진 작가인 지는 말한다. “일이 잘 풀리지 않고 최악으로 치달릴 때 그때가 최상이라고 생각해”라고.

그때는 그것이 최악인 줄 알았지만 지나고 보면 별일 아니었을 때가 얼마나 많은가.

지는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것을 말한다.

아내는 다른 남자를 만나 떠났지만 아내가 떠나기를 기다리는 연인이 있고, 신랑은 불평만 늘어 놓지만 최상이었다고 행복하며 칭찬해 주는 신부가 있고, 고기는 상해 버렸지만 어쨌든 다른 것으로 대체했고, 또 급하게 고기를 구해 주는 지인도 있으니 그만하면 인생은 살만하지 않은가.

오랜 장마와 끈끈한 습기와 좋지 않은 소식들로 폭염의 대구가 달아오르고 있다.

그러나 뭐 어쩌겠는가. 원래 여름엔 비가 오기 마련이고, 습기가 많기 마련이고 사람이 많으니 좋지 않은 소식도 연달아 들려오지 않겠는가.

영화는 말한다. 그것이 인생이라고. 그래서 영화를 보는 동안은 행복해진다.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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