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장마가 끝나기 무섭게 폭염에다 코로나19 바이러스까지 재유행하고 있다. 이래저래 고단한 삶의 연속이다. 그렇다고 국민들이 권리마저 팽개치고 있지는 않다는 것을 권력을 가진 자들은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50일 넘게 이어진 장마는 누적 강수량으로도 피해를 짐작할 수 있다. 하루 강수량이 100㎜는 예사고 시간당 강수량이 100㎜를 넘기는 지역도 수두룩했다. 경기 충청 등 중부지방을 공략하던 장대비가 남원 하동 등 남부지방으로 이동해 물폭탄을 안겼다. 나라 전체가 빗속에 잠겨 침울했다. 가야산 무흘구곡에 사는 친구는 밤중 개울물 내려가는 소리가 ‘우루루루’ 황소울음을 운다며 무섭다고 그랬다. 커다란 바위가 물살에 휩쓸려 내려가는 소리라는 거다. 언젠가 지리산 천왕봉 밑에서 여름날 폭우가 쏟아질 때 계곡 물이 벌떡 일어서서 내달려 오던 기억이 생생했다.

SNS에는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를 겪고 있는 국민의 고단함이라고들 요란했다. 신학기 개학도 전에 코로나19 침공으로 한 해를 시작했다.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다가 여름 휴가기간을 보내고 이제는 온 나라가 물에 잠겨 버린 것이다. 모두들 정상적인 삶은 팽개쳐지고 늘 이사를 준비하는 사글셋방 신세처럼 생활이 뒤죽박죽이 됐다. 거기에다 다시 코로나의 공습이다.

장마때 텃밭 옆 개울이 불어나 뻘건 황톳물이 쏟아져 내려오고 있었다. 그 물위에 온갖 잡동사니까지 떠내려 왔다. 비닐 나뭇가지 스티로폼 소주병 의자 냄비뚜껑 신발에다 호박 덩굴 같은 농작물까지. 이웃 농장 아저씨가 거든다.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전라도 충청도는 밭이 떠내려가고 집이 떠내려가고 사람이 떠내려갔잖아요.” 그는 경상도에 ‘깡철이’가 살고 있어 장마도 비켜 간다며 천운이라고 넉살을 떤다.

텃밭의 고추는 장마로 초토화됐다. 올 김장 고추는 걱정하지 말라고 큰소리쳤던 주위 사람들에게 어쩔 수 없이 수입고추로 김장을 담그라고 통고해야 할 판이다. 그러면서 다른 지역의 수해 소식을 위안으로 삼는다. 강원도 철원과 경기도 안성, 충북 충주·제천·음성, 전남 구례·곡성·담양, 전북 남원, 경남 합천·하동 등 특별재난지역만도 18곳이나 선포됐다.

수해 현장을 주민들이 직접 찍어 올린 영상물을 봤다. 한 밤 홍수 경보에 빈 몸으로 탈출한 이재민들의 하늘을 향한 분노, 주먹을 쥐어도 내지를 곳을 찾지 못하는 그 허탈함을 위로해 줄 방안이 없었다. 비닐하우스가 물에 잠기고 집안까지 들어찬 황톳물에 가재도구가 뻘과 뒤섞여 쓰레기가 된 현장은 처참했다. 흙탕물을 퍼내 보지만 하늘에서는 또다시 비를 퍼붓고 있었다. 자연재해라지만 당하기만 하는 서민들의 무력감에 화가 났다. 저런 곳에서 삶의 터전을 일구고 살아야만 하는 처지가 누구 이야기처럼 그것도 운명일까. 살아남은 사람 이야기다. 이번 장마에 숨지거나 실종된 인명피해만도 40여 명이나 된다.

물을 피해 떠내려가던 소들이 지붕 위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우두커니 먼 산만 바라보고 있는 모습은 풍경이 아닌 초현실화이자 극사실화였다. 어떤 소는 강을 따라 바다건너 섬에 까지 떠내려가서도 살아있었다. 생명의 위대함이라고 해야 하나, 끈질긴 생명력이라고 해야 하나. 그 소는 전국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그러나 내겐 전혀 아름답지 않았다. 이번 비에 전국적으로 소 400여 마리, 돼지 3천700여 마리가 피해를 입었다.

전국의 쓰레기도 강으로 바다로 떠내려갔다. 어쩌면 더 많은 것들이 떠내려 보내졌는지도 모를 일이다. 국회에서는 100석이 넘는 야당의 존재 이유가 떠내려 가버렸다. 부동산 3법이 통과됐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후속법이 통과됐다. 검찰개혁을 둘러싼 검언유착과 검찰총장과 법무부장관 충돌 사건과 윤미향 의원의 정의연 의혹사건도 떠내려가고 있다. 코로나19로 경제 등 보통 국민들의 삶은 비정상의 연속으로 뉴노멀이 노멀이 되고 있다. 이런 홍수 속에 국민적 관심사들을 일부러 떠내려 보낸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그것은 책임져야 할 권력의 직무유기이자 국민에 대한 기만이다. 국민들도 그냥 지켜보고 있다면 또 다른 야합이 될 것이다. 언론인



김지혜 기자 hellowis@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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