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육박하는 날씨에 선풍기 한 대로만 버텨||물난리에 방 안은 엉망진창, 코로나로 일자

▲ 대구 동구 신천3동의 한 쪽방촌에는 성인 남자 한 명이 겨우 지나다닐 수 있는 통로를 사이에 두고 방 12개가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 대구 동구 신천3동의 한 쪽방촌에는 성인 남자 한 명이 겨우 지나다닐 수 있는 통로를 사이에 두고 방 12개가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긴 장마가 끝나자마자 40℃를 넘나드는 폭염의 기세가 거세지고 있다.



1평 남짓한 비좁고 어두운 공간에서 지내는 쪽방촌 사람들은 물난리의 피해를 회복하기도 전에 폭염과 사투를 벌이고 있다.



불덩이 같은 쪽방의 온도를 낮추는 유일한 수단은 선풍기 한 대뿐이다. 밤에도 열대야가 덮쳐 밤잠을 설친다. 숨쉬기 조차 어려운 지경이다.



대구 쪽방촌에는 731명이 살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코로나19 확산으로 쪽방촌의 무더위 쉼터는 폐쇄됐다.



매주 지급되는 마스크 2~3개와 낡은 선풍기에 의지하고 있는 이들은 올해 유난한 코로나19와 폭염이라는 이중고를 견디고 있다.

(편집자 주)



◆일 하다 다쳐 장애판정, 가족에게는 그저 안부전화만…





▲ 대구 동구 신천동의 한 쪽방에서 지내는 정모(54)씨. 더위를 참을 수 없어 웃통을 벗었지만 40℃에 달하는 찜통 더위에 연신 땀을 흘리고 있다.
▲ 대구 동구 신천동의 한 쪽방에서 지내는 정모(54)씨. 더위를 참을 수 없어 웃통을 벗었지만 40℃에 달하는 찜통 더위에 연신 땀을 흘리고 있다.


지난 19일 오후 2시 대구 동구 신천3동의 고층 빌딩 속 좁은 골목 쪽방촌.

이곳에서 만난 정모(54)씨는 연신 부채질을 하며 더위를 피하고 있었다.

방 안에 들어서자 장마가 길었던 탓에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렀고, 벽지 한쪽은 습기가 배여 검회색 곰팡이가 슬어 있었다.



이날 낮 기온이 40℃에 육박할 정도로 살인적인 폭염이 덮쳤지만 더운 바람이 나오는 선풍기에만 의지할 수 밖에 없었다.



정씨는 이곳에서 지낸지 3년째다. 실직한 후 고향인 영천을 떠나와 대구 공사현장에서 노동을 하며 가장 노릇을 해 왔다.



하지만 일을 하던 중 높은 곳에서 발을 헛디뎌 땅으로 떨어지면서 오른쪽 다리를 크게 다쳤다. 3번에 걸쳐 수술을 받았지만 결국 장애 판정을 받았다. 일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는 군대에 가있는 아들의 사진을 보여줬다. 가족이 보고 싶지만 몸도 성치 못해 전화로만 안부를 확인할 수밖에 없는 처지라며 아들의 사진을 손으로 쓰다듬었다.



매달 지원받는 50만 원 가량으로 한 달을 살아가지만, 올해는 너무 힘들단다.

그동안 불편한 몸을 이끌고 겨우 돈벌이를 해왔지만, 올해는 코로나19 여파로 막노동 일자리 조차 구할 수 없게 됐다.



정씨는 “예년 같으면 무더위 쉼터라도 찾아 잠시나마 더위를 피하고 사람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눴지만, 올해는 문을 닫아버려 더위를 피할 곳도 없고 대화를 나눌 사람조차 만날 수 없게 됐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여동생 믿고 보증…가족도 돈도 모두 잃어



▲ 대구 서구 비산7동의 한 여인숙에서 지내고 있는 김모(58·여)씨. 얼마 전 쏟아진 폭우로 인해 천장에서 빗물이 떨어지면서 물난리가 나 방이 엉망진창이 됐다.
▲ 대구 서구 비산7동의 한 여인숙에서 지내고 있는 김모(58·여)씨. 얼마 전 쏟아진 폭우로 인해 천장에서 빗물이 떨어지면서 물난리가 나 방이 엉망진창이 됐다.
지난 19일 오후 3시께 찾은 대구 서구 비산7동의 한 여인숙.

햇빛이 들어오지 않는 좁고 어두운 복도 옆으로 16개의 방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김모(58·여)씨는 낡은 선풍기 앞에 앉아 흐르는 땀을 닦고 있었다.



김씨는 5년째 쪽방촌살이를 하고 있다. 5년 전 여동생에게 집을 담보로 보증을 서주었다가 동생이 달아나 버렸다.

돈은 물론 가족조차 잃었다. 당시의 충격으로 걸린 우울증은 여전히 그를 괴롭히고 있다.



그의 좁은 방 안은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이불, 세면도구, 음식, 옷 등이 널브러져 있었다.

얼마 전 쏟아진 폭우로 인해 천장에서 빗물이 떨어지면서 물난리가 나 방이 엉망진창이 됐다.



그는 기초생활수급자로 한 달에 30만 원 정도를 지원받는다. 생활비가 턱없이 부족해 이런저런 일을 해왔지만 최근에는 일자리마저 잃게 됐다.



김씨는 “일을 해야 방 값이라도 내는데 밥 먹을 돈도 없다. 그나마 쪽방상담소 직원들이 가져다준 라면으로 하루하루 끼니를 때우고 있다”며 “더위는 오히려 사치로 여겨질 정도”라고 토로했다.



대구 쪽방사무소 강정우 사무국장은 “코로나 재유행으로 일자리가 많이 없어져 힘든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다”며 “쪽방촌 주민들이 거리노숙으로 내몰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희망 일자리와 같은 공적인 일자리가 많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구아영 기자 ayoungoo@idaegu.com
권종민 수습기자 jmkwon@idaegu.com
김지수 수습기자 jisukim@idaegu.com
저작권자 © 대구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