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을 보지 말고 달을 봐야

발행일 2020-08-25 14:40:00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오철환

객원논설위원

소강상태를 보이던 코로나19가 다시 기세를 떨치고 있다. 방역전문가들이 경고했던 일이 마침내 현실로 나타났다. 정부와 여당은 감염 확산을 막고자 하는 의지보다 희생양을 만들어 그 책임을 떠넘기는 데 온 힘을 쏟고 있는 느낌이다. 8·15 광화문 집회를 주도한 기독교인을 희생양으로 삼고 그 집회 방식에 동조하진 않았지만 그 지향점을 밉지 않게 보고 있던 통합당을 엮어보려고 억지를 쓰는 듯하다. 통합당은 공짜 점심을 기대했을 수 있지만, 극단적 주장에 대한 역풍을 맞거나 코로나 확산에 대한 독박을 쓸까봐 잔뜩 몸을 사린 감이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때 맞춰 코로나 확진자 수가 급격히 늘어났다. 통합당은 과격한 극우 집회 주최 측과 선을 긋고 코로나 2차 대유행을 정부 여당의 책임이라는 주장을 폈다. 덫에 걸려들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코로나의 기세에 눌려 수세로 몰린 형국이다.

정치권은 코로나 재확산의 책임 떠넘기기에 사활을 걸고 있다. 그 책임소재가 정당지지율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책임규명은 언론과 국민의 몫이고 그 출발점은 팩트 체크다. 지난 1~11일 확진자 수는 20명에서 40명대에 머물렀다. 그러던 것이 0시 기준으로 12일 54(34)명, 13일 56(43)명, 14일 103(79)명, 15일 166(146)명, 16일 279(244)명, 17일 197(160)명, 18일 246(184)명, 19일 297(250)명, 20일 288(220)명, 21일 324(229)명, 22일 332(223)명, 23일 397(265)명, 24일 266(182)명 등의 추이를 보였다. 괄호 안은 서울과 경기도다. 12일 0시에 50명대를 돌파했고, 14일 0시에 전날대비 거의 두 배로 폭증했다. 잠복기를 감안하지 않더라도 15일 0시 이전에 대유행이 시작된 걸 확인할 수 있다. 잠복기 최소일인 5.2일을 감안하면 15일 0시 이전의 감염 현황은 20일 0시의 확진자 288명이라는 의미다. 확진자 폭증의 원인을 딱 꼬집어 말할 순 없지만 8·15 광화문 집회가 그 원흉이 아니라는 점은 명확하다. 허나 코로나 확산을 부추긴 점까지 부인하긴 힘들다. 대유행 조짐을 보고 집회를 취소했어야 마땅했다.

코로나 2차 대유행의 책임소재를 굳이 따지자면 잠복기를 감안해 8월9일 이전의 일을 복기할 필요가 있다. 전 국민에게 지급한 긴급재난지원금은 코로나 종식이라는 시그널을 국민에게 주었고, 외식과 여행이 늘어난 결정적 계기가 됐다. 주말에 외식업체에서 신용카드로 2만원 넘게 5차례 이상 결제하면 1만원의 외식 할인쿠폰을 주었다. 온라인 사이트에서 영화 예약 시 1인당 6천 원, 공연 예약 시 1인당 8천 원, 온라인 숙박 예약에도 3만~4만 원의 할인쿠폰을 제공했다. 코로나로 얼어붙은 소비를 진작시킴으로써 침체된 경제를 살린다고 내놓은 선의의 정책이었으나 코로나에 대한 국민의 경각심을 일거에 허물어트렸다. 결과적으로 코로나 2차 대유행을 불러왔다. 코로나 방역대책과 경제 활성화정책은 일반적으로 이율배반적 상충관계라 할 수 있다. 그런 경우 절충적인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도 정부 여당은 한쪽만 본 우를 범했다. 관련 의학계가 2차 대유행을 계속 경고했지만 정부 여당은 오불관언이었다. 실패와 잘못은 누구나 범할 수 있다. 그러나 실패와 잘못에 대한 뒤처리는 정직하고 깔끔해야 한다. 마냥 남 탓만 하고 희생양을 만들어 정쟁에 악용하려는 꼼수는 상황만 악화시킬 뿐이다. 경제정책 실패를 고백한 북한의 김정은보다 못해서야 되겠는가. 타산의 돌도 쓸모가 있듯 못된 적에게도 배울 건 배울 일이다.

광화문 집회를 생화학테러로 비난하는 인사까지 있으니 통탄할 일이다. 생화학테러라면 고의성과 적극성 그리고 생화학물질 등 기본적 요건을 갖춰야 비로소 성립한다. 계획적인 의도나 적극적인 의사 또는 코로나 바이러스 보균 등 어느 것 하나 충족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선량한 국민을 어떻게 테러집단으로 뒤집어 씌우려는지 이해불가다. 막가파의 막말에 다름 아니다. 국민에게 무릎 꿇고 사죄해야 할 일이다. 나쁜 일기에도 불구하고 8·15 광화문 집회에 그처럼 많은 사람들이 모인 이유를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집회결사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참뜻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면 화난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게 최우선이다. 마스크 착용과 거리두기를 계도하는 것은 그 다음이다. 생화학 테러집단으로 몰아 희생양 삼는 일은 하수 중의 하수다. 달을 보지 않고 손가락에 묻은 때만 나무라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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