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이사대우

아마도 지난 3월 초인 것 같다. 코로나19 감염자가 급증하면서 전국적인 확산을 눈앞에 둔 우리 보건 당국이 ‘이제 새로운 일상을 준비하라’고 충고해 준 것 말이다. 당시에는 그저 당분간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겠거니 했던 이 말이 가진 깊은 속 뜻을 코로나19 재확산세가 가팔라지는 지금에야 겨우 알아채다니 참으로 아둔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야 말로 그토록 우려했던 미증유의 위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은 아닌지 두렵다는 생각마저 든다. 다른 주요 선진국들과 비교해보면 그나마 괜찮은 수준이라는 우리 경제는 이 상태가 지속되면 앞을 담보하기 어려워졌다. 불과 얼마 전만 하더라도 0%대를 기대했던 우리 경제는 굳이 한국은행의 전망치가 아니더라도 마이너스 성장은 불가피해 보인다.

0%대라는 낙관적인 전망도 사실은 하반기 소비 회복에 기댄 바가 컸었는데 이제 그러한 기대는 접어야 할 것 같다는 말이다. 지금까지는 축소된 가계소득을 긴급재난지원금이나 긴급고용안전지원금, 저소득층 구직촉진수당 등과 같은 정부 및 공공부문으로부터의 공적이전소득으로 채워 소비 침체를 막을 수 있었지만, 국가재정 여력을 고려하면 이는 지속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기업에 기대기에는 그들도 힘든 것은 마찬가지다. 그나마 여건이 좀 낫다는 600개에 좀 못 미치는 국내 상장업체들조차도 올 상반기 실적이 지난 해에 비해 급감하는 등 생존의 위기에 처해 있다. 비대면 비접촉, 바이오, 헬스케어 등과 같이 코로나19로 수혜를 받고 있는 일부 산업에 속한 기업군들을 제외한 나머지 대부분의 기업들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중소기업이나 소상공인 등이 처한 상황은 더 힘겹다. 이래서야 투자 증대나 고용 창출은커녕 기존의 투자계획 실행이나, 일자리 보전도 장담하지 못할 상황이다.

물론 일각에서는 마이너스 성장을 하더라도 다른 선진국들보다 양호한 수준이고, 내년에는 V자 회복이 예상되는 만큼 크게 염려할 일이 아니라는 반응도 있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가 있기 이전에 이미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은 크게 훼손되어 왔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그렇게 간단히 치부하고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지금의 전망대로 내년에 우리 경제가 V자 회복을 한다 손치더라도 기저효과를 제외하면 사실상 잠재성장률을 하회하는 수준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진짜 실력을 가늠할 수 있는 성적표는 내후년이나 되어서야 받아볼 수 있다는 것인데, 기대한만큼의 성적표를 받기 위해서는 대외 여건이 개선되어 외수와 내수가 균형있게 성장해줘야 하는데 과연 그렇게 될지는 의문이다. 백신은 언제 개발될지 누구도 모르고 설사 개발되더라도 사회적 면역 형성으로 코로나19 사태가 안정되기까지는 적어도 6개월 이상이라는 전염병 전문가들의 말을 이제라도 믿는다면 너무 높은 기대는 방역은 물론 말 그대로 견실한 경기 회복에도 독이 될 뿐이다.

그렇다고 마냥 손 놓고 있자는 것은 아니다. 코로나19 사태의 조기 종결에 대한 기대는 버리되 이제는 철저히 장기전에 대비하자는 것이다. 특히나, 정책 효과가 불명확한 재정 의존형 대책들은 과감하게 조정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자면 당장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한 단기 대응은 불가피하겠지만, 새로운 일자리는 분명 좋은 일자리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정책 신뢰성을 높일 수 있고 재정지출에 대한 당위성도 확보된다.

사회간접자본처럼 투자와 일자리 창출 효과가 커 경기 진작에 즉시적으로 큰 효과를 나타낼 수 있는 부문도 마찬가지다. 노후 사회간접자본의 개보수는 물론 첨단화 등에 대한 투자는 당장의 경기 대응뿐 아니라 잠재성장률을 높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혹시라도 부동산 시장 안정화처럼 기존 정책 기조와 상충되는 부분이 있어 우려된다면 이해관계에 있는 부처 간의 조정으로 해결하면 될 일이다.

늘 하는 말이지만 잠자고 있는 기업들의 야성을 깨우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그 대부분의 원인은 불확실한 경영 여건 때문이지만, 불합리한 규제나 만연한 반기업 정서 등도 배제할 수 없다. 장기전이 불가피한 이번 싸움에서 승리하려면 주어진 모든 것을 활용하는 수 밖에 없다.



김지혜 기자 hellowis@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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