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희

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

어디선가 귀뚜라미 소리가 들린다. 처서가 지나도 더위는 여전한데 어느새 하늘은 가을빛이다. 차창 풍경으로 평온한 가을이 다가옴을 느껴본다. 코로나19가 다시 긴장의 끈을 조이게 한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격상됐고 이런저런 사태로 나라가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가늠조차 힘들다. 코로나가 끝나기만을 기다리던 사람들에게 다시 멈추라고 하니 그 마음이 어떠하랴 싶다.

코로나 전담병원으로 반년 넘게 고생한 직원들은 이젠 휴가도 좀 가고 일상으로 돌아가려고 마음먹었을텐데 다시 밀려들기 시작하는 환자를 받아야 한다니. 축소해 운영하던 코로나 병동을 다시 열었다. 그러다 보니 여기저기에서 인력을 차출해 코로나 병동이 돌아가게 해야 하는 순번을 짜야 한다.

휴일 병동에 올라서니 당직 간호사가 우울한 얼굴이다. 마스크를 한 얼굴에서도 표정은 우울하다. 입이 어떤 모양을 하고 있는지 가늠할 정도로 눈동자에 힘이 없고 광대뼈조차 축 처져 있는 것 같다. 무슨 일인지 물어보니, 너무 힘들다고 한다. 인력은 줄고 돌봐야 할 환자들은 늘어 종일 뛰어다녀도 다 쳐내지 못할 일이 밀려든다고 한다. 주말에 만보기 앱으로 당직하는 동안 몇 걸음이나 걸었을까 싶어서 체크해 봤다고 한다. 액팅 당번이라고 부르는 처치 간호사는 1만5천 걸음, 그 다음이 1만2천 걸음이었단다. 하루 만 보 걷기에 도전하는 사람이더라고 매일 만 보 걷기를 하기는 어렵지 않던가. 당직을 서는 동안 잠시도 앉지 못하고 여기저기 환자들의 호소를 해결하려 뛰어다니다 보면 어느새 몸은 녹초가 되고 머리가 지끈거린다고 한다. 속도 울렁거리고 밥맛도 없고 그러니 아무리 마스크를 쓴 얼굴이라지만 그 표정에 즐거움이 묻어날 수 있겠는가. 그렇게 말하며 눈동자가 젖어 드는 간호사, 그녀의 손을 말없이 잡고 토닥여줄 뿐 달리 위로할 방법이 없음이 안타깝다.

코로나19, 정말 언제 잠잠해질 것인가. 지속적으로 통제하면서 일관되게 방역정책을 추진해야 하지만 여름휴가 기간 고삐를 풀어버린 탓에 이제는 정말 언제 다시 줄어들 것인가 실로 걱정이 된다. 일 년의 반이 넘어가는 이 시점까지 마스크를 벗지 못하고 살아야 하는 나날들, 피로감만 더해간다.

코로나19에 대한 백신이 나와서 막아주거나 특효약일 개발되기 전까지는 마스크 쓰기를 일상화해야 할 것이다. 쉽사리 물러갈 것 같지 않으니 어쩌면 호모 마스크 쿠스의 시대를 살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마스크가 일상화되다 보니 상대가 웃고 있는지 잘 알 수가 없다. 반가운 사람을 만나거나 상대에게 친절히 대해야 할 때도 표정을 드러내기 어렵다. 그러다 보니 요즘에는 입 꼬리를 올리고 웃는 스마일은 마스크 뒤에서는 보여줄 수가 없으니 빛을 발하지 못한다. 그리하여 눈 주위 근육을 눈동자 쪽으로 집중 시켜 광대뼈를 마스크 위로 돌출 시켜 끌어 올려서 눈웃음을 만드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고 한다. ‘스마이즈’라고 한다. 이것은 오랜 연습이 필요하다고 한다. 입 꼬리 근육은 아무런 감정 없이도 올릴 수 있어 가짜 미소를 만들 수 있지만, 눈 주위의 근육은 행복한 감정이나 친절한 마음 없이는 움직이기 힘들다는 것이다. 스마이즈는 미소(smile)와 응시(gaze)를 합성한 신조어로 미국의 유명모델인 티아라 뱅크스가 2009년 모델 선발 TV 쇼에서 주장했다. 함부로 웃어선 안 되는 모델들에게 오직 ‘눈빛’으로 ‘기쁨과 열정을 뿜어내라’고.

미소 짓기를 강조해왔던 고객 만족 교육에서도 마스크가 일상화되다 보니 미소를 보여줄 수 없게 됐다. 스마일이 아니라 스마이즈로 인사하게 되는 시대, 눈으로 인사를 잘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

코로나19가 여전하다 보니 여행하는 것도 잠시 차 한 잔 마시는 것도 주저하게 되었다. 어느 때보다도 가족과 함께 하는 머무는 시간이 많아져서 이젠 달마다 가족의 달. 날마다 가정의 날이라고도 한다. 여행보다는 집에서, 연인이나 친구보다는 가족과 함께, 행복한 추억을 쌓고 새로운 곳보다는 익숙한 곳, 옛 추억을 되새김할 수 있는 곳을 택하여야 하리라. 마스크 쓴 채로 미소를 보여주는 스마이즈를 생활 속에서 익혀야 할 것 같다. 스마이즈를 처음으로 주장했던 모델 타이라 뱅크스가 방탄소년단의 열렬한 팬이었던가. 방탄소년단과 댄스 타임이 포착된 영상을 게시하며 “방탄소년단과 만남은 스마이즈(Smize) 보다 더 좋더라”는 메시지도 덧붙일 정도이니.

코로나 감염병 시대, 너무 우울해하지 말고 그동안 해보고 싶었지만 못했던 것들을 찾아내서 하나씩 실천에 옮기는 소중한 나날이 되기를 빈다. 가끔 스마이즈 연습해보자, 마스크 벗고 여유 있게 미소 지을 그 날이 빨리 오기를 기대하면서.





김지혜 기자 hellowis@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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