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출된 독재

발행일 2020-08-31 14:08:42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박헌경 변호사
박헌경

변호사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 국가인지 사회민주주의 국가인지에 대해 좌우 진영의 해석에 따라 서로 의견이 다르지만 정치적으로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것은 사실이다. 자유민주주의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결합이다. 대한민국 헌법에는 ‘자유민주주의’라고 정확히 명시한 표현은 없으나 대신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표현이 있다.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우리나라는 정치적으로 자유민주화됐다. 그래서 6월 민주항쟁 이후 태어난 우리나라의 젊은 세대는 권위주의 내지는 군사독재를 경험하지 못했다. 더욱이 한국전쟁을 겪어보지도 못했고 북한에 살아보지도 않았기 때문에 공산일당독재 내지는 수령유일체제의 엄혹함도 잘 알지 못한다. 태어날 때부터 자유민주주의의 공기를 마시며 살아왔기 때문에 자유민주주의는 공기처럼 당연히 주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는 쿠데타나 혁명 등 폭력에 의하여 무너질 수 있을 뿐아니라 선거에 의해 정당하게 선출된 권력에 의해서도 얼마든지 무너지고 인간의 존엄성과 기본적 인권이 말살될 수 있다. 특히 현대에 와서는 주로 선거에 의해 정당하게 선출된 지도자에 의해 자유민주주의가 무너지고 있다.

민주주의의 기반이 아무리 튼튼하다고 할지라도 자유민주주의는 선출된 정치권력에 의해 붕괴될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독일 바이마르공화국에서 국민 다수의 지지를 받고 총리로 선출된 히틀러이다. 선거에 의해 정당하게 총리로 선출된 히틀러는 1933년 독일 의사당 화재를 통해 순식간에 민주주의를 파괴해버리고 총통이 되면서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도 마찬가지로 선출된 독재자다. 이밖에도 선출된 지도자에 의하여 민주주의가 붕괴된 예는 페루, 필리핀, 헝가리, 폴란드, 러시아, 터키, 세르비아 등 여러나라에서 볼 수 있다. 선출된 독재자는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고 의회를 무력화시키며 사법부를 장악하고 언론을 통제하며 일인독재 내지는 일당독재로 국가권력을 사유화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선출된 독재로부터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보호하고 우리의 다음 세대에도 이를 누리도록 할 수가 있을까. 고대 그리스 민주정에서는 독재자가 될 위험한 인물의 이름을 도편에 기입하는 비밀투표를 해 10년간 국외로 추방하는 도편추방제를 도입해 민주정을 보호하려 했다. 그러나 이 제도는 후에 유력한 정치가의 추방을 위한 정쟁의 도구로 변질돼 결국 폐지됐다.

자유민주주의는 헌법적 가치와 자유 및 평등에 대한 확고한 믿음, 탄탄한 중산층, 높은 수준의 교육과 부, 견제와 균형이 잘 갖추어진 민주적 시스템 아래에서 잘 보존될 수 있다. 우리나라는 박정희 정권시절의 근대화 정책에 의해 절대적 빈곤을 타파하고 부를 축적시킴으로써 중산층을 두껍게 형성시킬 수 있었고 높은 교육열에 의한 시민의식의 향상이 민주화를 가능하게 했다. 그리고 광주민주화운동, 6월 항쟁을 거치면서 대한민국은 30여년간 자유민주주의가 안착돼 왔다.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 70년이 지나면서 부의 대물림에 의한 빈부격차의 심화, 이로 인한 중산층의 붕괴, 좌우이념의 극단적 대립 등으로 인하여 자유민주주의의 위기가 오고 있다.

선출된 독재자는 선동가 내지는 포퓰리스트인 경우가 많다. 소득의 불평등이 심해져서 빈부의 격차가 심해지면 그들은 상대적으로 가난한 국민들을 선동해 그들의 절대적 지지를 업고 보다 많이 가진 엘리트 집단을 부패한 집단으로 공격한다. 그리고 기존 정당체계의 가치를 부정하면서 기존 통치 시스템은 진정한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강조하며 엘리트 집단을 처단해 권력을 국민에게 되돌려주겠다고 선언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자유민주주의는 붕괴되고 독재 내지는 전체주의가 탄생하게 된다.

따라서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는 사유재산과 시장경제를 골간으로 한 경제질서를 원칙으로 하되 소득의 공정한 분배를 통해 국민 다수가 빈곤계층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고 중산층을 튼튼히 함으로써 국가 사회 전체가 침몰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다시 말하면 정치적으로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는 경제적 민주화가 필요한 것이고 이런 의미에서 자유민주주의와 사회민주주의는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조화되고 보충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대한민국은 탄생 때부터 자유만 강조되거나 평등만 강조된 나라가 아니다. 자유와 평등의 균형 위에서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가질 때 자유민주주의가 선출된 독재자에 의해 무너지는 것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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