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증구포 홍도라지 조청으로 열어가는 인생 2막||궁중의 왕세자가 공부 전에 반드시 먹었던

▲ 이계자 대표가 가마솥에서 달이고 있는 홍도라지 조청 농도를 점검하고 있다.
▲ 이계자 대표가 가마솥에서 달이고 있는 홍도라지 조청 농도를 점검하고 있다.
토종벌이 자연 상태에서 만든 꿀을 청(淸)이라고 부른다. 나무속에 벌집을 짓고 꿀을 모은 것을 목청(木淸)이라고 하고, 바위 틈새에 벌집을 짓고 모은 것이 석청(石淸)이다. 좀처럼 구하기도 어렵고 약성도 뛰어나 가격이 만만찮다.

그런데 꿀벌이 아니라 사람이 만드는 꿀도 있다. 바로 조청(造淸)이다. 국어사전에서는 ‘엿을 만드는 과정에서 묽게 고아서 굳지 않은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곡류를 엿기름으로 당화시킨 후 오랫동안 고아서 걸쭉하게 만든 묽은 엿으로 ‘인공적으로 만든 꿀’이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

▲ 이계자 대표가 홍도라지 조청 선물세트를 들어 보이고 있다.
▲ 이계자 대표가 홍도라지 조청 선물세트를 들어 보이고 있다.
목청과 석청에 비교해 조청이라고 불렀다. 조청은 맛과 효능이 뛰어났기 때문에 귀한 목청이나 석청과 견주었을 것이다. 조청의 효능을 증명하는 사례가 있다. 궁중에서 왕세자는 식전에 반드시 조청 두 숟갈을 먹고 공부를 시작했다고 한다.

왕실에서 왕세자의 교육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국가의 장래와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특히 차기 국가 통치자가 될 왕세자의 두뇌를 발달시키는 일은 궁중 의술에서 중요한 일이었다. 그러다보니 식품이나 건강비법의 개발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 비법 중의 하나가 바로 조청이었다고 할 수 있다.

▲ 이계자 대표가 홍도라지 조청을 작은 병에 옮겨 담고 있는 모습.
▲ 이계자 대표가 홍도라지 조청을 작은 병에 옮겨 담고 있는 모습.
곡류를 당화시켜 만든 조청이 포도당으로 변하여 뇌에 영양을 공급하고 집중력을 향상시켜 학습능률을 높이는 효과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이유로 스트레스가 많은 사람이나 학생들에게 섭취를 권장한다. 조금만 먹어도 공복감이 사라지기 때문에 다이어트식품으로도 인기를 끈다. 최근에는 각종 약재를 첨가해서 만드는 기능성 조청들도 속속 선보이고 있다.

이런 추세에 맞춰 어머니의 손맛으로 수제 조청을 만드는 강소농이 있다. 성주에서 ‘고띄마실’을 운영하는 이계자(58·여) 대표가 주인공이다. 고띄마실은 ‘보리를 띄워서 조청을 고우다’라는 의미를 담았다. 느리지만 정성을 담은 슬로푸드를 추구하면서 연간 6천만여 원의 매출을 올린다.

◆식당주인의 귀농

이 대표는 2015년 귀농해 홍도라지 조청을 만든다. 아직은 경력이 5년에 불과한 초보 농부지만 주변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는 평을 듣는다. 귀농 전에는 대구에서 치킨 집과 해물탕집을 운영했었다.

▲ 이계자 대표가 가마솥에서 달이고 있는 홍도라지 조청의 농도를 점검하고 있다.
▲ 이계자 대표가 가마솥에서 달이고 있는 홍도라지 조청의 농도를 점검하고 있다.
음식 맛이 좋다는 소문을 타고 손님들은 꾸준히 몰려들었다. 음식을 만들고 손님을 대접하는 일이 즐거웠다. 경제적 여유도 생겼고, 주변의 부러움도 샀다. 어느 날 친한 친구가 국밥집을 함께 하자고 제안을 했다. 큰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혹해 전 재산을 투자했다. 믿을 수 있는 친구였기 때문이다.

절대미각을 가진 이종사촌 언니의 도움도 받을 수 있었다. 곧 돈방석에 앉을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에 빠져 있을 때 쯤 연락이 끊어졌다. 믿었던 친구에게 사기를 당한 것이었다. 친구도 잃고 돈도 잃었다. 날아간 돈보다 친구에 대한 배신감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 이계자 대표가 조청을 만들고 난 가마솥을 세척하고 물기를 완전히 닦아 내고 있다.
▲ 이계자 대표가 조청을 만들고 난 가마솥을 세척하고 물기를 완전히 닦아 내고 있다.
사람이 싫어지고 삶의 의욕도 없어졌다. 고향으로 돌아와 미친 듯이 일만했다. 지난 일을 잊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구증구포 홍도라지 조청

고향으로 들어 왔으나 할 일도 없고,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 또다시 남들이 좋다고 하는 말만 믿고 꾸지뽕을 심었으나 아무런 소득도 내지 못했다.

▲ 이계자 대표가 구증구포를 한 홍도라지로 만든 홍도라지 조청을 들어 보이고 있다.
▲ 이계자 대표가 구증구포를 한 홍도라지로 만든 홍도라지 조청을 들어 보이고 있다.
농촌에서 살아가기 위한 공부를 시작했다. 농업기술센터와 농민사관학교 등 농업교육기관을 찾아다니면서 농산물 가공과 창업과정 교육을 받고, 조청을 만들기 시작했다. 주변에서 누구나 만들 수 있는 조청은 경쟁력이 없다고 했지만 솜씨 좋은 언니와 함께 하기에 든든했다.

한의사 친구가 도라지 조청을 권했다. 도라지가 호흡기 질환과 미세먼지에 좋기 때문에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생강과 모과 등 아홉 가지 약제를 배합한 화제(和劑)를 지어주고 구증구포(아홉 번 찌고 아홉 번 볕에 말린다) 방법을 알려졌다.

도라지도 구증구포를 하면 약효가 높아진다. 인삼보다 홍삼의 약효가 높은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나 구증구포는 쉬운 일이 아니다.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만 했다.

▲ 홍도라지 조청을 만들기 위해 구증구포한 홍도라지를 가마솥에서 끓이고 있는 모습.
▲ 홍도라지 조청을 만들기 위해 구증구포한 홍도라지를 가마솥에서 끓이고 있는 모습.
9월부터 홍도라지를 만들기 시작하면 다음해 3월까지 이어진다. 연간 5t 정도의 도라지를 아홉 번 찌고 밀린다. 날씨가 좋은 가을철이라도 1개월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다. 흐리거나 비가 오면 더 길어진다.

물기를 가득 머금은 도라지는 감당하기 어려운 중노동이었다. 그러나 누군가가 이 조청을 먹고 건강해 진다는 생각에 즐거웠다. 품질이 좋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고객은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긴 시간 보리를 띄워 엿기름을 만들고 홍도라지를 만들어 조청을 달이면서 지난날의 아픔도 삭였다. 그 덕분에 몸도 마음도 건강해졌다.

◆힘이 되는 전화 한통

“이 여사 고맙네. 내가 오랜만에 잠을 푹 잤네. 밤마다 기침 때문에 잠을 못 잤는데 그 조청이 특효약이었어. 내가 선전 많이 해줄게.”

▲ 홍도라지 조청을 달이는 모습.
▲ 홍도라지 조청을 달이는 모습.
대구에 있는 80대 중반의 어르신이 아침 일찍 전화를 했다. 오래 전부터 해소·천식으로 고생하다가 홍도라지 조청을 먹고 효과를 보았다는 것이다. 해소·천식과 같은 호흡기 질환은 야간에 기침을 많이 한다. 특히 나이가 많은 어르신들이 고생을 많이 한다. 심하면 잠을 잘 수가 없을 정도다.

그날 이후 단골로 자리 잡았고, 홍도라지 초청을 선전하는 홍보대사가 되었다. 노부부는 가는 곳마다, 만나는 사람마다 홍도라지조청을 홍보한다. 부부가 함께 먹는다면서 매달 2병씩을 구입한다. 매월 정기적으로 구입을 하기 때문에 대구에 나갈 일이 있을 때 직접 방문해서 전달해 준다.

▲ 홍도라지 조청을 만들기 위해 구증구포한 홍도라지를 가마솥에서 끓이고 있는 모습.
▲ 홍도라지 조청을 만들기 위해 구증구포한 홍도라지를 가마솥에서 끓이고 있는 모습.
이 대표는 “조청을 만드는 일은 힘이 드는 일이지만 이런 전화를 받으면 힘이 저절로 솟아나고 피로가 싹 가신다”면서 “더운 여름에 구슬땀을 흘려도 조청을 만드는 일을 그만 둘 수가 없다”고 말한다.

◆특허 받은 참외 피클

세계 어디나 절임식품은 많다. 동양대표가 장아찌라면 서양대표는 피클이다. 제조방법이 유사하다. 최근에 이 대표가 참외피클을 개발했다. 성주에서 참외는 흔하디흔하다. 무한정으로 널린 참외를 활용하는 방법을 찾다가 참외피클을 생각했다.

▲ 홍도라지 조청 선물세트.
▲ 홍도라지 조청 선물세트.
성주에서는 많은 가정에서 참외장아찌를 만든다. 이 대표는 장아찌가 아니라 피클로 접근했다. 발상의 전환이었다. 참외피클은 쉽고도 까다롭다. 적당한 염도와 아삭한 맛이 생명이다. 즉 염장기술이 관건이라는 말이다.

염도가 낮으면 쉽게 물러지고, 높으면 아삭한 맛은 있으나 짠맛이 강하다. 두 가지 조건을 충족할 수 있는 적정 염도에서 24시간 절이고 식초와 한약재로 만든 양념장과 배합을 해야 한다. 1~2개월 동안 짠맛을 제거하는 과정을 거친다.

참외피클은 완숙참외를 사용한다. 통상적으로 미성숙 참외로 만드는 장아찌와는 다르다. 이렇게 만든 참외피클은 2년 이상이 지나도 아삭한 맛이 유지된다. 이런 기술력을 바탕으로 올해 특허를 받았다.

◆진하지만 부드러운 조청개발

옛날에는 가정에서 조청을 직접 만들었다. 이젠 주거환경의 변화로 조청을 만드는 가정은 드물다. 누구나 만들 수 있지만 누구나 만들기 어려운 것이 조청이다. 좋은 조청을 만들기는 더더욱 어렵다.

정성과 끈기가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가마솥에서 나오는 조청 양만큼의 땀을 흘려야 만들어진다. 그래서 조청은 땀으로 만드는 것이라고도 한다. 이 대표는 요즘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농도는 진하면서 점도는 낮은 부드러운 조청을 만드는 것이다. 언 듯 보면 이율배반적 발상이다.

▲ 엿기름을 만들기 위해 보리 싹을 틔운 모습.
▲ 엿기름을 만들기 위해 보리 싹을 틔운 모습.
많이 달여서 농도가 진하면 굳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이 같은 원리를 뒤집고 진하면서도 연한 조청을 만들겠다고 하니 납득하기 어렵다. 가공과정에 연화작용 공정을 추가하겠다는 것이다. 약리성분은 높이면서도 부드럽게 해 대중성을 높이려는 시도다. 무모한 도전처럼 보이지만 이 대표의 열정을 보면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도 든다.

또 특허 받은 참외피클의 양산체제를 구축해 소득 향상과 지역 특산물인 참외의 새로운 판로를 개척하는데 일조를 하겠다고 한다. 정성과 끈기로 만들어 가는 고띄마실의 앞날에 기대를 걸어본다.



글·사진 홍상철 대구일보 객원편집위원

경북도농업기술원 강소농 민간전문위원



김종엽 기자 kimjy@idaegu.com
저작권자 © 대구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