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증구포 홍도라지 조청으로 열어가는 인생 2막||궁중의 왕세자가 공부 전에 반드시 먹었던
그런데 꿀벌이 아니라 사람이 만드는 꿀도 있다. 바로 조청(造淸)이다. 국어사전에서는 ‘엿을 만드는 과정에서 묽게 고아서 굳지 않은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곡류를 엿기름으로 당화시킨 후 오랫동안 고아서 걸쭉하게 만든 묽은 엿으로 ‘인공적으로 만든 꿀’이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
왕실에서 왕세자의 교육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국가의 장래와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특히 차기 국가 통치자가 될 왕세자의 두뇌를 발달시키는 일은 궁중 의술에서 중요한 일이었다. 그러다보니 식품이나 건강비법의 개발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 비법 중의 하나가 바로 조청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추세에 맞춰 어머니의 손맛으로 수제 조청을 만드는 강소농이 있다. 성주에서 ‘고띄마실’을 운영하는 이계자(58·여) 대표가 주인공이다. 고띄마실은 ‘보리를 띄워서 조청을 고우다’라는 의미를 담았다. 느리지만 정성을 담은 슬로푸드를 추구하면서 연간 6천만여 원의 매출을 올린다.
◆식당주인의 귀농
이 대표는 2015년 귀농해 홍도라지 조청을 만든다. 아직은 경력이 5년에 불과한 초보 농부지만 주변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는 평을 듣는다. 귀농 전에는 대구에서 치킨 집과 해물탕집을 운영했었다.
절대미각을 가진 이종사촌 언니의 도움도 받을 수 있었다. 곧 돈방석에 앉을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에 빠져 있을 때 쯤 연락이 끊어졌다. 믿었던 친구에게 사기를 당한 것이었다. 친구도 잃고 돈도 잃었다. 날아간 돈보다 친구에 대한 배신감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구증구포 홍도라지 조청
고향으로 들어 왔으나 할 일도 없고,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 또다시 남들이 좋다고 하는 말만 믿고 꾸지뽕을 심었으나 아무런 소득도 내지 못했다.
한의사 친구가 도라지 조청을 권했다. 도라지가 호흡기 질환과 미세먼지에 좋기 때문에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생강과 모과 등 아홉 가지 약제를 배합한 화제(和劑)를 지어주고 구증구포(아홉 번 찌고 아홉 번 볕에 말린다) 방법을 알려졌다.
도라지도 구증구포를 하면 약효가 높아진다. 인삼보다 홍삼의 약효가 높은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나 구증구포는 쉬운 일이 아니다.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만 했다.
물기를 가득 머금은 도라지는 감당하기 어려운 중노동이었다. 그러나 누군가가 이 조청을 먹고 건강해 진다는 생각에 즐거웠다. 품질이 좋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고객은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긴 시간 보리를 띄워 엿기름을 만들고 홍도라지를 만들어 조청을 달이면서 지난날의 아픔도 삭였다. 그 덕분에 몸도 마음도 건강해졌다.
◆힘이 되는 전화 한통
“이 여사 고맙네. 내가 오랜만에 잠을 푹 잤네. 밤마다 기침 때문에 잠을 못 잤는데 그 조청이 특효약이었어. 내가 선전 많이 해줄게.”
그날 이후 단골로 자리 잡았고, 홍도라지 초청을 선전하는 홍보대사가 되었다. 노부부는 가는 곳마다, 만나는 사람마다 홍도라지조청을 홍보한다. 부부가 함께 먹는다면서 매달 2병씩을 구입한다. 매월 정기적으로 구입을 하기 때문에 대구에 나갈 일이 있을 때 직접 방문해서 전달해 준다.
◆특허 받은 참외 피클
세계 어디나 절임식품은 많다. 동양대표가 장아찌라면 서양대표는 피클이다. 제조방법이 유사하다. 최근에 이 대표가 참외피클을 개발했다. 성주에서 참외는 흔하디흔하다. 무한정으로 널린 참외를 활용하는 방법을 찾다가 참외피클을 생각했다.
염도가 낮으면 쉽게 물러지고, 높으면 아삭한 맛은 있으나 짠맛이 강하다. 두 가지 조건을 충족할 수 있는 적정 염도에서 24시간 절이고 식초와 한약재로 만든 양념장과 배합을 해야 한다. 1~2개월 동안 짠맛을 제거하는 과정을 거친다.
참외피클은 완숙참외를 사용한다. 통상적으로 미성숙 참외로 만드는 장아찌와는 다르다. 이렇게 만든 참외피클은 2년 이상이 지나도 아삭한 맛이 유지된다. 이런 기술력을 바탕으로 올해 특허를 받았다.
◆진하지만 부드러운 조청개발
옛날에는 가정에서 조청을 직접 만들었다. 이젠 주거환경의 변화로 조청을 만드는 가정은 드물다. 누구나 만들 수 있지만 누구나 만들기 어려운 것이 조청이다. 좋은 조청을 만들기는 더더욱 어렵다.
정성과 끈기가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가마솥에서 나오는 조청 양만큼의 땀을 흘려야 만들어진다. 그래서 조청은 땀으로 만드는 것이라고도 한다. 이 대표는 요즘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농도는 진하면서 점도는 낮은 부드러운 조청을 만드는 것이다. 언 듯 보면 이율배반적 발상이다.
또 특허 받은 참외피클의 양산체제를 구축해 소득 향상과 지역 특산물인 참외의 새로운 판로를 개척하는데 일조를 하겠다고 한다. 정성과 끈기로 만들어 가는 고띄마실의 앞날에 기대를 걸어본다.
글·사진 홍상철 대구일보 객원편집위원
경북도농업기술원 강소농 민간전문위원
김종엽 기자 kimjy@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