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현

지성교육문화센터 이사장

문화혁명의 광기가 중국을 휩쓸고 있을 때 이성적 판단이나 합리적 반론은 설 자리가 없었다. 왕년의 자본가와 지주만이 반혁명 분자로 몰려 홍위병(紅衛兵)에게 조리돌림 당한 것은 아니었다. 지식인도 마오쩌둥에게 무조건 충성하지 않으면 모조리 인민재판을 받았다. 그들은 집단 구타를 당하고는 목에 죄인 명패를 달고 동네를 여러 바퀴씩 돌아야 했다. 그러다가 죽은 사람도 수없이 많다. 살아남은 지식인들도 정신 개조를 위해 농촌으로 하방(下放)돼 강제 노동에 투입됐다. 천하의 덩샤오핑도 하방됐다.

병원에서도 난리가 났다. 의사 대부분이 반혁명분자로 낙인찍혀 진료 자체가 불가능해졌다. 급한 수술 환자가 있을 경우 문제가 심각했다. 그런데도 홍위병들은 이렇게 외쳤다. “모든 것은 정신이 좌우한다. 정신이 곧 홍(紅)이다. 전문지식, 뭐 전(專)? 그까짓 얄팍한 지식과 기술쯤이야 공산당 사상에 투철하면 누구나 습득할 수 있다. 보라, 동쪽 하늘에 떠오르는 저 붉은 태양 동방홍(東方紅), 우리 마오 동지! 그의 어록을 밤낮으로 가슴에 품고 달달 외고 철저히 이해하면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 안 그런가, 동무들! 우리는 홍위병, 마르크스·레닌 공산주의와 마오 사상(紅)을 지키는(衛) 혁명 전사(兵)!” “옳소, 옳소! 중국공산당 만세, 마오 주석 만세! 우리는 홍위병!” 수술 환자를 두고 홍위병은 소리쳤다. “왕(王) 간호사, 반혁명분자 조(助) 의사가 수술하는 것 봤지?” “네...” “당장 수술해!” “저...” “아직 정신 무장이 안 됐구먼, 자아비판부터 해 볼까?” “아닙니다. 할 수 있습니다!” 간호사가 데굴데굴 구르는 환자의 배를 북 갈랐다. 피가 쏟아지고 내장이 와르르 흘러나왔다. 그다음부터 간호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공포에 질려서 울기만 했다. 환자는 바로 죽었고, 얼마 후 죄 없는 간호사도 반혁명분자로 몰려 맞아 죽었다. 중국통 친구가 들려준 문화혁명 때 있었다는 이야기다.

“배우기만 하고 생각해 자기 것으로 소화하지 않으면 얻음이 없고, 생각만 하고 보편적인 학문을 배우지 않으면 독단에 빠져 위태로워지기 쉽다(학이불사즉망學而不思則罔, 사이불학즉태(思而不學則殆)”

‘논어’의 ‘위정편’에 나오는 말이다. 설익은 지식으로 나서서 떠들면 갈피를 잡지 못해 헤매게 되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객관적 안목이 없는 우물 안 개구리와 같아 독선에 빠져 독단을 일삼게 된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과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지나치게 높다. 전문 지식과 누적된 경험으로 해결책을 찾아야 하는 사회적 이슈에 비전문가의 개입이 도를 넘는 경우가 너무 많다. 그들(특히 생각이 짧지만 배우려 하지 않는 사람)의 주장이 터무니없고 함성이 너무 위압적이다 보니 전문가 집단은 말도 안 되는 논란에 휘말리지 않으려고 대부분의 경우 침묵한다. 그러나 인내의 한계를 넘어서면 단호한 태도로 사생결단의 저항을 하게 된다.

모든 직종에는 물을 흐리는 사람이 있다. 소수의 행위나 처신을 문제 삼아 다수의 선량한 사람까지 공격할 때 그 직종 종사자의 사기는 떨어지고 발전은 지체된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특정 정치인이나 정당만을 맹목적으로 지지하고 상대편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을 때 그 사회는 퇴보할 수밖에 없다. 이런 분위기가 지배적인 곳에서는 생산적인 토론이나 상호 존중에 입각한 양보, 배려, 합의는 설 자리가 없다.

건강한 식견과 상식을 존중하는 다수의 국민들은 지금 ‘공공 의대’ 설립 등의 문제를 두고 전개되는 극단적인 의·정 대치를 착잡한 심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정부는 코로나19 퇴치에 앞장선 의사들의 노고를 인정하고 열린 마음으로 다가가야 한다. 코로나와 사투를 벌여야 하는 상황에서 의사들을 사리사욕만 채우려는 이기주의자로 몰아붙여서는 안 되며 국민도 편향된 시각으로 그들을 폄훼하며 함부로 돌을 던져서는 안 된다. 의사들도 어떻게 해야 국민적 지지를 받으면서 국민 건강 증진과 의학 발전에 기여할 수 있을지를 깊이 성찰해야 한다. 의·정은 모든 논의를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라. 정부 당국은 그 과정에서 나오는 쌍방의 주장을 소상히 공개해 모든 국민이 분명히 알게 하라.



김지혜 기자 hellowis@idaegu.com
저작권자 © 대구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