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철환

객원논설위원

차별과 차이는 비슷하면서도 다르게 쓰이는 말이다. 국어사전을 보면 차별은 ‘둘 이상의 대상을 각각 등급이나 수준 따위의 차이를 둬서 구별함’이라고 풀이돼 있고 차이는 ‘서로 같지 아니하고 다름 또는 그런 정도나 상태’라고 설명돼 있다. 단순히 사전적 의미로 이 두 단어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긴 어렵다. 그 용례를 살펴보면 그 이해가 빠를 수 있다. 차별은 성차별, 인종차별, 적서차별 등으로 쓰이고, 차이는 학력차이, 빈부차이, 세대차이 등으로 활용된다.

차별은 다른 것을 구별해 다르게 대하는 것으로 부정적인 가치판단이 개재된 뉘앙스를 지닌다. 반면 차이는 내재적 성질이나 피상적 특성을 다르게 인식하는 정도나 상태로 가치판단이 배제된 사실판단에 근접한 편이다. 차별은 전근대적인 역사적 유산으로 청산해야할 대상이고 차이는 관찰의 산물이거나 인식의 결과물로 합리적으로 활용해야 할 현상이거나 개념이다. 그 구별 기준과의 연관성이 없고 부당한 대우와 긴밀히 연결된 차별은 피해 당사자의 반발을 불러오지만 그 격차에 상응하는 보상이 주어지는 차이는 정당한 인센티브다. 이렇게 보면 차별과 차이는 확연하게 구분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상황에 접하면 헷갈리기 십상이다.

부자와 빈자는 재산의 다과로 분류되는 구분이다. 부자와 빈자를 아무런 근거도 없이 그 대우를 달리 한다면 차별이다. 그렇지만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열려있는 조건에서 돈을 남보다 더 벌었다고 해서 그게 부당한 건 아니다. 단순한 차이다. 대가를 치르고 필요한 것을 살 수 있는 시스템에서 그에 상응하는 재화를 희생하고 좋은 물건을 남보다 더 많이 획득하는 일은 정당하다. 부자가 큰집에서 비싼 옷을 입고 맛난 음식을 먹는 것을 부당하다고 비난할 순 없다. 배가 아플 수 있겠지만 그걸 차별이라고 항의할 순 없다.

그렇다면 정당하게 재화를 축적한 부자가 편리하고 살기 좋은 곳에 땅을 사고 집을 사는 것이 비난받을 패악질이고 적폐일까. 이와 반대로 자유시장질서 하에서 돈 버는 재주가 부족해 불편하고 조악한 곳에 보금자리를 갖는 것이 떳떳하지 못하고 부끄러운 일일까. 양자 모두 최선을 다한 결과라면 비난받거나 부끄러운 일은 결코 아니다. 남보다 더 노력한 사람이 위치 좋고 살기 좋은 집을 선점하는 시스템은 모두가 합의한 체제다. 자유시장경제체제는 인류가 경험한 가장 합리적인 제도로 알려져 있다. 더 나은 체제가 나오기 전까지는 최선이라 할 수밖에 없다.

부자가 많은 돈을 치르고 편리하고 살기 좋은 땅을 선점하다보면 특정지역에 부자들이 모여들게 마련이다. 이러한 현상이 다시 부유층을 모여들게 하는 유인으로 작용한다. 빈자는 아무래도 자금력이 부족하다보니 불편함을 감수하고 싼 집을 선호한다. 그래도 자기 조건 내에서 최선의 선택을 한다. 그 결과 빈자는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비슷한 지역에 모여든다. 주거이전의 자유와 계약의 자유가 보편적으로 보장된 사회에서 누구나 자기 형편에 맞는 곳을 용케 찾아낸다. 또 유유상종이 대개 살기 편하다. 이렇게 부촌과 빈촌이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된다. 이러한 경향은 우리만의 고유한 현상이 아니고 어디에서든지 거의 비슷하다. 부자와 빈자를 차별하고 이에 부당한 자격을 부여한 건 아니다. 차별이라기 보단 사회적 현상이다.

한때 부자와 빈자의 위화감을 완화시키고 함께 어울려 사는 사회를 만든다는 취지로 아파트단지에 큰 평수와 작은 평수를 섞어 시공하도록 강제한 적이 있다. 그렇게 하고보니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발생했다. 큰 평수에 사는 사람과 작은 평수에 사는 사람 간의 위화감이 오히려 악화된 것이다. 주말이면 골프를 치러가는 사람과 방콕하는 사람이 옆에서 빤히 바라보는 것은 서로를 불편하게 할 뿐이다. 이러한 부작용은 어린이들의 민감한 감성을 자극하고 교우관계에까지 영향을 미쳐 교육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았다. 이른바 섞어찌개 규정은 슬며시 자취를 감췄다.

하지만 아직도 그러한 잔재가 공공주택 건설이나 재개발 허가 조건에 남아 있는 것 같다. 재개발 임대비율 30% 상향조정에 반발하는 움직임이 보인다. 합리적인 규제인지 의문이다. 부자와 빈자 양자 모두 싫어하고 불편해 하는 부자연스러운 상황을 모르는 모양이다. 주거의 선택은 개인의 자유로운 영역으로 남겨두는 것이 맞다. 굳이 부추길 필요는 없지만, 자유로운 선택의 결과로 자연스럽게 부촌과 빈촌이 생긴다면 그게 차별의 징표이거나 부끄러운 모습은 아니다. 형편이 좋아지면 누구나 언제든지 말을 바꿔 탈 수 있다.



김지혜 기자 hellowis@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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