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운석

패밀리협동조합 이사장

브래드 피트가 주인공으로 활약한 2013년 개봉 영화 월드워Z(감독 마크 포스터)는 좀비 바이러스를 다룬 블록버스터이다. 현실세계의 코로나19처럼 바이러스가 얼마나 빠르게 전세계를 잠식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영화다. 이 영화에서 이스라엘은 좀비 바이러스가 확산되고 있다는 보고를 받고는 국경 폐쇄를 결정, 전염병으로부터 살아남은 국가가 됐다. 이스라엘이 국경폐쇄를 결정한 이유는 ‘열 번째 사람 독트린’ 때문이었다.

‘열 번째 사람 독트린’은 똑같은 정보를 접한 열 명 중 아홉 명이 하나의 동일한 결론을 내리더라도 열 번째 사람은 거기에 반대하는 게 의무라는 뜻에서 나온 말이다. 아홉 명의 결론이 아무리 옳다고 보이더라도 열 번째 사람만은 그들이 틀렸다는 가정에서 생각해야 한다는 의미다.

1973년 10월 제4차 중동전쟁 당시의 일이다. 이스라엘 군은 이집트와 시리아 병력들이 국경 쪽으로 이동하는 이상징후를 발견했다. 이 상황을 보고받은 군 수뇌부는 통상적인 군사훈련으로 판단하고 별다른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 하지만 곧 두 나라는 수에즈 전선과 골란고원 양 전선에서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했고 이스라엘은 전쟁 초기 막대한 피해를 입어야만 했다.

이 일을 계기로 이스라엘 군은 달라졌다. 전략회의에서 열 명 중 아홉 명이 전략실행에 찬성할 때 나머지 한 명은 의무적으로 반대의견을 내도록 했다. 물론 찬성한 아홉 명은 반대한 한 명의 의견을 반드시 경청해야 했다. 이것이 바로 ‘열 번째 사람 독트린’이다. 아랍국가들로 둘러싸인 작은 나라인 이스라엘을 4만 달러가 넘는 GDP에다 노벨상 수상자만 12명을 배출시킨 강국으로 이끈 배경이다. 모두가 찬성해도, 여기에 휩쓸리지 않고 당당하게 반대 의견을 내는 ‘열 번째 사람’으로 이뤄진 레드 팀(Red Team)을 만든 것이다.

레드 팀은 결국 기업(조직)과 CEO에게 ‘쓴소리(직언)’를 제공하는 그룹이다. 미국도 9·11테러 이후 레드 팀을 도입했다. 레드 팀은 미국 육군에서 아군인 블루 팀(Blue Team)의 승리를 돕기 위해 운용된 가상의 적군이다. 레드 팀의 역할은 블루 팀 자신들이 생각하지도 못한 허점을 철저히 파고듦으로써 블루 팀의 전략을 더 탁월하고 완벽하게 만들어내는 일이다.

군대에서 레드 팀이 성과를 내기 시작하자 글로벌 기업들도 조직과 반대 의견을 내고 비판하는 기능을 가진 레드 팀을 적극 활용하기 시작했다. 이들 기업의 CEO들은 성공하고 싶다면 반드시 레드 팀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마존, 구글, 넷플릭스 뿐 아니라 FBI에서도 레드 팀을 통해 치명적인 약점을 발견해내고 이를 보완해 새로운 길을 찾아내 성공으로 이끌었다.

이런 역할의 레드 팀을 우리나라 정부가 벤치마킹했으면 한다. 의도적으로 반대의견을 내지는 않더라도 지금은 ‘예스맨’이 아니라 최고결정권자에게 쓴 소리를 할 수 있는 ‘노맨’이 필요한 시점이다. 아니, ‘노맨’까지는 아니더라도 사안마다 정확한 상황판단 아래 사실대로 이야기해줄 사람이 필요하다. 코로나19로 인한 전국민재난지원금 지급에도 재정건전성을 들어 반대의견도 당연히 내야하고 13세 이상 모든 국민에게 통신비 2만 원을 일괄 지급하기로 한 정책에도 반대의견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법무부장관 아들의 군 복무시절 특혜 의혹 사건에서도 정부여당에서 모두 감싸고 돌더라도 누군가는 ‘열 번째 사람’이 돼 원칙에 따른 수사를 들고 나와야 하는 것이다.

정부여당에서 대통령의 눈치를 살피고 감히 반대의견을 낼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열 명 모두 찬성만 한다면 어떻게 될까. 냉철하게 현실을 돌아보는 사람이 없다면 잘못된 결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편향과 착각, 잘못된 확신은 NO라고 말하지 않는 한 갈수록 더욱 견고해질 수밖에 없다.

이 글의 제목인 ‘왜 아무도 NO라고 말하지 않는가’는 제리 하비 미국 조지워싱턴대 경영학과 교수가 쓴 책이다. 그는 이 책에서 “NO라고 말하지 않는 것은 치명적인 독약이 될 수 있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반대전담팀(레드 팀)을 두고 항상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1986년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챌린저호 폭발도 소수의 반대의견을 묵살함으로써 촉발된 것임을 명심할 일이다.



김지혜 기자 hellowis@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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