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새가 될 수 있다면/ 나무가 새가 될 수 있다면/ 돌멩이가 새가 될 수 있다면/ 땅 따먹힌 땅이 새가 될 수 있다면/ 검은 비닐이 새가 될 수 있다면/ 오색 풍선이 새가 될 수 있다면/ 구름이 새가 될 수 있다면// 자유가 자유를 그리워하듯/ 그대가 눈물뿐인 사랑을 끌어안듯/ 새가 비로소 새가 되듯

「대구문협대표작선집」(2013)

새의 메타포가 무엇인지 숙고해보는 일이 ‘새가 되고 싶은 나’를 감상하는 첫걸음이다. 인간은 날 수 없다. 물에선 수영도 하고 잠수도 할 수 있지만 하늘을 나는 일은 오랫동안 이룰 수 없는 꿈이었다. 하늘을 나는 새는 적어도 부러운 존재였다. 그리스신화에도 하늘을 날고자 하는 시도가 나타난다. 다이달로스가 날개를 만들어 아들 이카로스에게 달아주지만 태양에 가까이 갔다가 바다로 추락하고 만다. 하늘을 나는 꿈이 산산이 부서졌다. 현실적으로 먹을 것 걱정 없을 새가 목가적이고 고고한 존재로 여겨졌다.

새는 숭배의 대상이었다. 이는 시공을 초월한다. 신약성서에선 비둘기를 성령에 비유했다. 새는 하늘과 땅을 중재하는 거룩한 존재였다. 밤에 나는 새는 악령의 심부름꾼이나 사악한 세력과 결탁한 무리라 생각하기도 했다. 고대 이집트에서도 새는 영물이었다. 특히 큰 새는 태양신, 천둥의 신, 바람의 신 등으로 숭배 대상이었다. 새의 머리를 한 신들이 등장하는 점에서 새는 지혜와 지성을 상징하는 듯하다. 남미의 콘도르는 영혼을 신과 이어주는 신성한 존재다.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고 창공을 날아오르는 콘도르는 영적 세계에 도달하고 싶은 잉카인의 염원이었다. 티베트에는 시신을 독수리에게 주는 천장 풍습이 있다. 독수리가 시신을 먹고 그 영혼을 하늘로 인도하면 영혼이 승천하거나 부귀한 집안에서 환생한다고 한다. 윤회사상이다.

새는 흔히 누구도 구속하지 못하는 자유를 상징한다. 새는 창공을 훨훨 날아올라 제 가고 싶은 곳으로 마음먹은 대로 날아간다. 땅에서 떨어질 수 없는 인간에게 새는 자유의 상징으로 동경의 대상이었다. 새가 자유로운 영혼으로 자리매김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다. 주인에게 매인 노예나 일상의 구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새는 억압을 떨치고 거리낌 없이 비상하는 말 그대로 자유의 우상이다. 새에게 주어진 자유는 신화와 역사의 기저에 잠복된 메타포라 할 수 있다.

꽃이 새가 될 수 있다면 꽃으로 남을 꽃이 과연 얼마나 될까. 꽃 없는 삭막한 세상은 슬프지 않을까. 벌과 나비 또한 배곯을 사정이 훤하다. 식량위기가 닥치고 생명체가 멸종할지 모른다. 나무가 새가 될 수 있다면 묵묵히 녹음을 지키며 산소와 피톤치드를 듬뿍 나눠줄 나무가 무척 그리울 것이다. 돌멩이가 새가 될 수 있다면 새가 하늘에 가득한 세상이 자유로운 모습일지 의문이다. ‘땅 따먹힌 땅’이 새가 될 수 있다면 지구가 새가 될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검은 비닐이 새가 될 수 있다면 세상은 깨끗하게 될 것이지만 ‘알프레드 히치콕’의 공포가 현실이 될 수도 있다. 오색 풍선이 새가 될 수 있다면 아이들이 무척 섭섭해 할 일이다. 구름이 새가 될 수 있다면 비가 오지 않아 사막이나 황무지가 지구를 뒤덮을 것이다. 꽃, 나무, 돌멩이, 땅 따먹힌 땅, 검은 비닐, 오색 풍선, 그리고 구름 등은 각각 제자리에 있을 때 ‘자유가 자유를 그리워하듯’ 자유롭고 값지다. ‘그대가 눈물뿐인 사랑을 끌어안듯, 새가 비로소 새가 되듯’ 자유는 제약을 아울러 내포하는 법이다. 오철환(문인)



김지혜 기자 hellowis@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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