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려상 수상자 김소희
▲ 장려상 수상자 김소희
꿈자리가 뒤숭숭해도 이 자리에 오지 않는다. 도시락밥도 4주걱은 담지 말란다. 아침 일찍 여자의 방문은 금한다. 출근길 아녀자가 가로질러 가면 그날은 일찍 퇴근을 서두른다. 또 남편의 신발은 항상 방 안쪽으로 향하게 놓는다. 어떤 힘든 일이 있어도 아내의 아침 잔소리는 절대적 부정을 낳으니 가능하면 웃는 얼굴로 배웅을 하여야 한다.

탄광촌 광부들의 생활 금기 사항들이다. 언제 지하에 묻힐지 모르는 앞날의 운명을 어떤 보이지 않는 힘에 의지해보려는 뜻이기도 하다. 이 항목들이 있기에 그들에겐 위로가 되었는지 모른다. 다행히 장애물을 겪지 않으면 분명 안전한 하루가 될 것이란 기대를 가질 수 있으니까.

또 힘의 원천이 되었을 것 같다. 서로서로 조심하는 자세는 물론이려니와 액을 막아 보겠다는 도전과 억제 정신은 용기와 인내를 낳을 수도 있다. 특히 여자에게 적용되는 요구가 많은 만큼 아내로서의 내조 역할을 게을리할 수 없는 막중한 책임이 따르기도 한다. 어찌 보면 여자의 자리가 그만큼 크다는 의미이기도 하겠다. 여성이 불운의 대상이기 이전에 남성들에게 잠재된 보호본능 의식이 작용했으리라는 생각도 든다. 즉 엄마들이 가지고 있는 모성애, 그 가치가 모든 위기 대처에 필수적인 요소로 나타날 것이란 기대심리일 수도 있겠다 싶다.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들다는 높고 험한 고개로 불리는 문경새재 ‘은성석탄 박물관’에서 우리 경제발전의 원동력이었던 석탄산업과 그날의 광부들 삶을 만나고 있다. 오랜 세월 연료로 쓰였던 19공탄이 이곳에서 생산되었구나 생각하니 아련한 향수와 애틋한 그리움도 밀려온다. 한밤중 시린 손 녹이며 연탄 갈던 기억도 새롭다. 집게로 꼭꼭 집어 올리며 어떻게 크기가 같은 구멍을 만들었을까 궁금해하며 따뜻한 겨울을 나게 해주던 연탄에게 고마워했고 탄광촌 광부들이 참 보고 싶기도 했다.

지금껏 탄광촌 생활상은 교과서나 TV를 통해서만 보아왔다. 그 현장을 오늘에야 만났으니 감회가 새로울 수밖에 없다. 광부들의 모습을 재현해둔 채탄장에 들어서니 금기 사항들을 지킬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심중을 헤아릴 수 있었다. 800m란 지하 깊숙한 곳에서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갱 속의 두려움은 민간신앙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당시의 상황이 능히 이해가 갔다.

그들은 늘 석탄가루에 묻혀 살았다. 한 자락 햇살과 한 줄기 바람도 없는 동굴 속에서 하루가 시작되고 끝이 난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피부는 광부라는 직업 속에 묻어버려야 한다. 무슨 옷과 신발이 유행을 하는지 지상의 영화는 그들에겐 무관한 세상이었다. 그저 검은 가루에 물들은 옷만이 최신 감각으로 여기며 천직의 옷걸이로 생각하고 이곳을 지켜왔었다.

가족들은 어떠했겠는가. 남편의 신발을 방 안쪽으로 향하게 두는 일은 무사히 귀가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사고에 노출되어 있는 가장이 현관에 들어섰을 때만이 안도의 숨을 쉴 수 있으니까. 이런 점만 보아도 그들의 생활이 얼마나 위험부담을 안고 산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지금도 석탄 캐는 소리가 갱 안을 울리는 것 같다. 가루가 풀풀 날리는 현장을 평생 직업으로 여기며 이 나라 에너지 확보를 위해 땅속 끝을 찾아 누비고 또 누볐었다. 따뜻한 아랫목을 누릴 사람들을 생각하며 이 세상 최고 산업역군으로서의 긍지를 가지기도 하였지 싶다. 열악한 작업환경의 불만은 저 멀리 물려 놓은 채 묵묵히 일하는 기쁨만이 자신들의 행복이었으리라. 임금인상 요구니, 노동현장 개선이라는 광부들의 데모 대열은 별로 본 적이 없다. 지하에서 살아가는 그들에게 지상의 화려함은 사치로 여겼을 수도 있겠다. 정말 그랬다면 얼마나 순수한가. 자신에게 주어진 것에 만족하며 탐욕에 연연하지 않는 자세가 말이다. 언제 위험이 닥칠지 모르는 상황에도 늘 의연한 자세로 직분을 다했음은 붕락 현장을 보면서 크게 느껴졌다.

붕괴 직전을 알리는 굉음과 붕락을 알리는 광원들의 고함소리를 재현해둔 현장이 당시의 실정을 잘 알려 주고 있다. 버팀목을 부여잡고 살려달라는 절규를 외치다 돌 더미에 묻힐 수밖에 없었던 그날의 모습도 눈앞에 펼쳐졌다. 그들의 목숨은 찰나 간이다. 오직 땅속에서 자신의 삶을 일구어내고 마지막 생을 지하에서 마감하는 경우가 그들의 운명이다. 생존경쟁의 현장으로서는 이만큼 열악한 환경도 지상에는 잘 없지 않을까 싶다.

진폐 순직자 위령비 앞에 서니 지난 광부들의 생활상이 더욱 처절하게 다가섰다. 석탄가루에 검게 절여버린 폐를 안고 얼마나 큰 고통에 몸부림쳤을까. 가래와 기침으로 날밤을 지새우며 갑갑한 숨을 몰아쉬는 숨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오는 듯하다. 앙상하게 뼈만 남은 가장 곁에서 스러져 가는 영혼을 붙잡고 통곡하는 가족들의 절규는 이 세상 어떤 슬픔도 대신할 순 없었으리라. 지금껏 석탄에 절인 제복과 얼굴이 남편과 아버지의 모습이었고 끝내는 검은 가루에 생명을 바치고 마는 불쌍한 가장이었다. 하지만 주어진 일 앞에 그 누구를 원망하고 책망할 힘도 가져보지 않았다. 광부라는 직책이 누런 도시락에 찬밥 한 덩이 얻을 수 있다면 큰 다행으로 여겼으니까.

돌아섰다. 빨리 귀가하여 그 옛날 19공탄의 기억을 살려보고 싶었다. 편리화 된 도시가스의 따뜻한 방에 누워 지난날 역사의 한 지점에 다시 서보고 싶은 것이다. 1938년부터 총연장 길이 400km 자리에서 무려 4천300명이나 종사한 은성 탄광촌의 의미를 깊게 새겨보고 싶은 것이다. 한때 이 나라 에너지의 생산지였고 경제 발전을 가져오기도 했던 곳인 만큼 지나온 세월과 함께 우리의 삶을 반추해야겠다.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더냐” 어느 시인의 글귀처럼 우리는 광부들의 희생적인 삶에 단 한번이라도 뜨거운 애정을 보낸 적이 있었던가! 아픈 영혼에 편안한 안식을 위해 기도해 본 일은 있는지. 만감이 교차하는 이 시점에서 우선 나 자신에게 크게 꾸짖어본다.

지금부터라도 뜨거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라고….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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